축구를 오랫동안 사랑한 팬이지만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마음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 사람들이 축구라는 게임에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공정성이다. 각 팀당 11명의 선수가 경기장에 들어가 정해진 규칙에 따라 경쟁하면서 놀라운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인구 50만 남짓한 카보베르데라도 축구의 최강국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대등하게 겨룰 수 있는 ‘아름다운 게임’이기 때문이다.
규칙의 공정성을 담보하려면 룰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면 곤란하다. 어느 게임에서나 전통이 중요한 이유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에서 축구는 망가졌다. 게임 도중에 광고를 넣기 위해 억지로 휴식 시간을 만들었고 그것도 모자라 결승에서는 쇼를 집어넣으려고 30분씩이나 경기를 중단했다.
축구를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팬들의 주머니를 최대한 털기 위해 월드컵 참여국의 숫자도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늘리면서 게임 수가 대폭 증가했다. 그 결과 예선과 본선의 차이는 사라졌다. 이런 추세라면 아예 예선이 없어지면서 100개국이 넘게 참여하는 본선이 치러질지도 모르고, 4년에 한 번이 아니라 매년 월드컵을 보게 될 수도 있다.
이 모든 변화를 주도해 온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총재는 누가 봐도 어울리지 않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평화상’을 수여하면서 아부를 떨었고,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한 미국 선수의 판정을 번복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인판티노의 치명적 실수는 월드컵 수익을 관리하는 과정에 외부 자본의 참여를 도입하는 제도 개혁이었다. 천문학적 돈이 오가는 이권을 송두리째 자신이 선정한 회사로 넘기려 했다.
당연히 유럽과 북중미, 아시아 연맹이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고, 유럽축구연맹(UEFA)의 경우 만장일치로 월드컵을 보이콧하겠다고까지 위협했다. 반면 가난한 축구연맹이 많은 아프리카는 FIFA에서 더 많은 자금을 지원하겠다는 유혹에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렇다면 유럽연맹은 축구의 순수성과 미래를 생각해서 이렇게 강력하게 반대했을까.
유럽연맹은 그들 나름대로 유럽에서 돈벌이에 눈이 멀었다. 2018년 유럽은 네이션스 리그라는 대회를 만들어 인기가 적은 친선 게임은 없애고 모든 시합을 리그의 순위에 계산하는 게임으로 대체했다. 이 와중에 죽어나는 것은 선수들이다. 일 년 내내 쉬지 않고 소속팀과 국가대표로 경기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리는 것은 팬들이다. 경기 입장권의 가격은 치솟고 보고 싶은 게임은 한없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유럽에는 도시에 뿌리를 내린 많은 클럽과 팬들이 있었으나 이제는 지역 정체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국제적 자본이 기업을 인수하듯 클럽을 사버리면 그만이고, 돈이 많으면 감독부터 선수까지 좋은 자원을 확보해 경쟁할 뿐이다. 독점을 지향하는 모노폴리와 같은 부동산 게임과 다르지 않은 돈놀이일 뿐이다.
물론 축구도 프로스포츠인 만큼 자본을 빼고 말하기는 어렵다. 경기장도 지어야 하고 선수 월급도 줘야 하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앞뒤가 한참 바뀌었다. 순수한 열정을 느낄 수 있는 게임으로 다시 나려면 FIFA부터 대륙별 연맹 그리고 각국 협회까지 바뀌어야 한다. 선수와 팬들의 목소리가 중심이 되는 민주적 거버넌스로 신선한 축구의 판을 새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