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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닥치고 공급’ 약속만으론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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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만 고집하지 말고 세종도 있어요.”

지난달 만난 한 정부 관계자는 이렇게 권유했다. 내가 서울에서 등록임대주택에 전세로 사는데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터라 2년 뒤 다시 집을 구해야 한다고 말하자 돌아온 얘기다. 순간 머쓱해졌다. 서울에서 계속 살고 싶다는 마음이 괜한 욕심이자 사치처럼 느껴졌다. 껑충 뛴 집값과 전셋값을 감당하기 어렵다면 상대적으로 주거비가 낮은 지역으로 옮기는 것도 선택지일 수 있겠다. 그러나 출퇴근 시간 등을 감안해 거주했으면 하는 지역에 세입자로라도 들어가 살 수 있는 곳이 없어 멀리 떠나야 하는 건 서글플 수밖에 없다. 나 같은 사례나 유사한 상황에 처해 전전긍긍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신진영 산업부 기자
신진영 산업부 기자

정부는 이런 주거난 해법으로 ‘닥치고 공급’을 외치고 있다. 집을 더 많이, 더 빨리 짓겠다는 거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재명 대통령이 “이재명정부는 ‘집 못 지어서 미쳤나’라는 생각이 들도록 공급대책을 준비하라”고 주문했다는 말까지 전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6월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집을 닥치고 지어야 한다”고 했다. 8·13 대책에서도 정부는 신규 공공택지를 추가로 확보하고 후보지 발표부터 착공까지 걸리는 기간을 기존 68개월에서 37개월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시장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정부의 약속을 반기거나 주거 안정화를 기대하는 모습보다 과연 약속을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 회의적인 기류가 흐른다. 오래전 공급대책으로 추진된 사업들조차 지지부진하고 파열음을 내는 사례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남 복정2지구 신혼희망타운 사전청약 당첨자들도 오랜 시간 속이 새카맣게 탔다. 2021년 사전청약 당시 이들은 2025년 입주를 기대했지만 사업이 거듭 진통을 겪더니 입주 예정 시점이 2030년으로 밀렸다. 당첨자 A씨는 본청약이 두 차례 연기되자 치솟은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해 경기 곳곳의 국민임대주택에 청약했고 겨우 거처를 마련했다. 그는 “복정2 사전청약에 당첨됐을 때보다 국민임대에 당첨됐을 때가 더 기뻤다”고 했다. 다른 당첨자 B씨는 네 식구가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 2년째 함께 살고 있다. 급기야 사전청약제도는 사업 지연 등 여러 문제가 반복되면서 2024년 폐지됐다. 내집 마련의 부푼 꿈을 꾸며 제때 주택이 공급되길 기다리던 사람들의 고통이 얼마나 클지 헤아리기 어렵다.

내게 세종시로 내려오라 했던 정부 관계자는 부동산 정책을 ‘수술’에 비유했다. 장기적으로 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진통(陣痛)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다주택자가 실거주용 외의 주택들을 매물로 내놓고 이를 무주택자가 매입하도록 유도하는 경우 당분간 전세 물량이 줄고 월세 부담이 커지는 사람들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수술을 하면 통증이 뒤따른다. 그렇다고 의사가 환자에게 “수술하고 나면 원래 아픈 법이니 그냥 참아라”라고만 하지 않는다. 좋은 의사는 수술이 잘됐는지 치료 부위를 세심하게 살피고 통증도 가라앉히는 조치를 하면서 환자가 빨리 회복하도록 돕는다. 환자는 당연히 그런 의사에게 신뢰와 안정감을 느낀다. 정부도 그래야 한다. 의사가 부작용을 최소화하도록 정교하게 집도해야 성공적인 수술이 되듯 정부는 세제와 부동산 등 국민 다수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설계할 때 꼼꼼히 준비해야 한다. 주택 공급대책 역시 무엇보다 무주택 서민들의 주거 불안을 최대한 빨리 해소할 수 있도록 확실한 실행력이 담보돼야 한다. 원하는 지역에서 감당할 수 있는 주거비를 부담하며 사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사치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주택정책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