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18일 사직서를 제출했다.
정 장관은 사직서에서 건강상 이유와 함께 "검찰개혁 관련 주요 입법이 마무리됐다"는 취지로 사퇴 이유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인 정 장관은 지난 1년여간 검찰청 폐지와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신설 등 검찰개혁을 주도해왔다.
다만 검사의 보완수사권까지 전면 폐지하는 방안에는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히며 여당과 일부 이견을 드러내기도 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정 장관은 이날 오후 청와대와 인사혁신처 등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는 사직서에 "새로운 형사사법 체계는 새로운 리더십 아래에서 완성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도 담은 것으로 전해졌다.
◇ 취임 첫날부터 '수사·기소 분리'…검수원복 시행령도 되돌려
지난해 7월 21일 제71대 법무부 장관으로 취임한 정 장관은 취임 직후부터 검찰개혁에 속도를 냈다.
첫 업무 지시부터 직무대리 신분으로 다른 검찰청 사건 재판의 공소 유지에 관여해온 검사들을 전수조사하고 원소속 청으로 복귀시키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했다.
수사를 담당한 검사가 기소 이후 재판에까지 관여하는 관행을 손질해 현행법 내에서부터 수사와 기소의 기능적 분리를 추진하겠다는 취지였다.
취임 직후 단행한 첫 검찰 고위 간부 인사에서는 윤석열 정부에서 중용됐던 특수·기획통 간부들이 대거 교체됐다.
이어진 중간 간부 인사에서도 대검찰청과 법무부, 서울중앙지검의 주요 보직을 대폭 새 얼굴로 바꿨다. 검사들의 외부 기관 파견을 줄이는 조치도 함께 이뤄졌다.
같은 해 8월에는 윤석열 정부에서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를 확대한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 복구) 시행령을 개정하라고 지시했다.
정 장관은 당시 "검찰이 수사 권한을 갖는 것은 안 된다는 확고한 입장을 갖고 있다"며 수사·기소 분리와 검찰의 직접 수사권 폐지가 개혁의 원칙이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검찰 조직 자체를 폐지하는 입법도 정 장관의 재임 기간 이뤄졌다.
지난해 9월 국회에서는 검찰청을 폐지하고 검찰의 수사와 기소 기능을 각각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으로 분리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중수청은 행정안전부 장관, 공소청은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두는 내용으로, 1948년 출범한 검찰청은 오는 10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 대장동 항소 포기로 檢과 충돌…'검사장 강등' 논란도
개혁 과정에서 검찰 내부와의 충돌도 이어졌다.
지난해 11월에는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 1심 판결에 대한 검찰의 항소 포기를 둘러싸고 거센 후폭풍이 일었다.
정 장관은 당시 "항소를 안 해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며 대검에 여러 사정을 고려해 신중히 판단해달라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정 장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검사장 18명과 대형 지청장 8명 등이 검찰 지휘부에 항소 포기 경위와 법리적 근거를 밝히라는 집단 성명을 내면서 갈등은 확산했다.
이후 법무부가 집단 반발에 참여한 검사장들을 평검사 보직으로 이동시키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강등 인사' 논란도 불거졌다.
지난해 12월 법무부는 검찰청 폐지와 대장동 항소 포기 등 주요 현안에서 공개적으로 비판 목소리를 내온 정유미 당시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을 대전고검 검사로 전보했다.
대검검사급(검사장) 보직에서 고검검사급(차장·부장검사) 보직으로 옮긴 것을 두고 검찰 안팎에서는 사실상 강등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정 장관은 당시 검사장 보직 변경에 대해 "인사권자의 재량 범위"라는 입장을 밝히며 맞섰지만, 정 검사장은 이에 불복해 정 장관을 상대로 인사명령 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법원은 지난 6월 해당 인사가 인사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한 처분이라며 인사명령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법무부는 판결 닷새 뒤 "인사권자의 재량을 과도하게 제약하는 결정"이라며 항소했다.
◇ 공소청·중수청 입법 마무리…보완수사권 놓고 與와 이견
올해 들어서는 검찰청 폐지 이후 들어설 새 형사사법 체계를 구체화하는 작업에 주력했다.
정부는 지난 1월 공소청법과 중수청법 제정안을 입법 예고한 뒤 의견 수렴과 수정 작업을 거쳐 3월 정부안을 확정했고, 두 법안은 같은 달 국회를 차례로 통과했다.
정 장관은 이 과정에서 검찰의 직접 수사개시권을 없애고 수사와 기소 기관을 분리하는 데는 일관되게 찬성했지만, 검사의 보완수사권까지 전면 폐지하는 방안에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특히 지난 6월에는 "검찰을 폐지해서 피해자가 더 보호된다고 하면 반대할 이유가 없겠지만 그렇게 말할 수 없다. 경찰에 수사를 다 맡길 수는 없다"며 사실상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여당 강경파들은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위해서는 보완수사권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결국 검사의 직접 보완수사를 전면 금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정 장관은 법 통과 이후 "이렇게 빛의 속도로 형사소송법이 개정된 것은 처음"이라며 "부작용이 생긴다면 빨리 고쳐야 할 것"이라고 우려를 거듭 표했다.
검찰권 남용 의혹을 되짚는 작업도 추진했다.
법무부는 지난 6월 검찰권 행사 과정에서 인권침해나 권한남용 의혹이 제기된 사건을 조사하는 검찰인권존중미래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미래위는 쌍방울 대북송금과 대장동,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등을 1차 조사 대상으로 선정한 데 이어 최근 성남FC 후원금 사건 등 12건을 추가로 조사 대상으로 정했다.
◇ 거듭 사의 밝혔지만, 靑 만류…법무·검찰 '수장 공백' 상황으로
정 장관은 검찰개혁 입법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직간접적으로 여러 차례 사퇴 의사를 밝혀왔다.
지난달 2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 회의에서도 거취를 묻는 말에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지 않겠나"라고 답하며 사퇴 의사를 재확인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당시 "사의를 공식적으로 표명한 것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고, 이틀 뒤 홍익표 정무수석은 "공소청 출범과 안착까지는 봐야 한다"며 정 장관이 오는 10월까지 역할을 계속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도 이달 4일 비공개 국무회의에서 정 장관에게 "잘 버티세요"라고 말하면서 사실상 사퇴를 다시 만류한 것으로 해석됐다.
그런데도 정 장관이 이날 결국 사직서를 제출한 데에는 검찰개혁 관련 입법이 마무리되면서 자신의 역할이 사실상 끝났다는 판단과 함께, 본인이 공개적으로 반대해온 검사의 보완수사권 폐지가 결국 관철된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정 장관이 물러나면 법무부는 당분간 이진수 차관의 장관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될 전망이다.
대검찰청 역시 지난달 31일 구자현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형사소송법 개정안 통과에 책임을 지고 사직서를 제출한 뒤 박규형 대검 기획조정부장이 '대행의 대행' 역할을 하는 수장 공백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오는 10월 2일 검찰청이 폐지되고 중수청과 공소청이 새로 출범하는 만큼, 법무·검찰 지휘부 임시 체제는 새 형사사법 체계 출범 때까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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