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이 같이 오셨는데, 어머님 괜찮겠어요? 저희 공연 수위가 높은데, 내용 알고 오신 거죠?”
지난 15일 서울 마포구 메타코미디클럽 홍대. 150여명의 관객으로 가득 찬 공연장 무대에 오른 코미디언 손동훈이 객석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가족·연인·지인과 함께 온 관객을 확인하던 그는 여성 두 명으로 이뤄진 일행에게 관계를 물었고, “엄마와 딸”이라는 답이 돌아오자 공연 수위를 언급하며 재차 확인했다. 이후 그는 어머니의 반응을 확인하며 딸의 연애와 관련해 수위를 높여가는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딸은 거침없이 답변을 이어갔고, 옆에 앉은 어머니는 당황한 듯 웃기만 했다. 어머니의 ‘고장난 반응’에 관객석에서는 폭소가 터졌다.
정해진 대사나 역할도 없고, 화려한 무대장치도 없이 마이크 하나 든 코미디언의 ‘개인기’만으로 관객과 소통하며 즉흥적인 대화로 웃음을 이끌어내는, 스탠드업 코미디의 정석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날 무대에 오른 손동훈을 비롯한 김주환·김종찬·송하빈·이제규는 정치·종교·사회·문화·성(性) 등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풀어냈다. 성인 관객을 대상으로 한 공연인 만큼 표현 수위도 높았다. 특히 광복절이라는 당일의 맥락을 농담에 끌어들이고 최근 논란이 된 친일파 배우 문제 등도 소재로 활용했다. 객석에서는 즉각적인 웃음과 호응이 나왔다.
이처럼 방송의 제약에서 벗어난 스탠드업 코미디가 홍대 공연장과 유튜브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시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방송사 공채 중심의 코미디언 등용문이 좁아진 가운데, 유튜브와 쇼트폼 플랫폼이 새로운 홍보·유통 창구로 자리 잡고 소규모 공연장이 늘어나는 등 여러 조건이 맞물린 결과다.
대표적인 곳이 메타코미디다. 메타코미디는 홍대에 코미디 전용 공연장을 열고 ‘스탠드업 어셈블’과 ‘만담 어셈블’ 등을 정기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방송에서 접하기 어려운 소재와 표현, 관객과의 즉흥적인 호흡을 앞세워 오프라인 공연 수요를 끌어내고 있다.
개그맨 이상준도 방송에서 쌓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스탠드업 공연 시장으로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 관객과의 대화와 즉흥 애드리브, 일상적인 소재를 앞세운 ‘이상준쇼’를 통해 지난해 전국 10개 도시에서 약 1만8000명의 관객을 모았고, 올해는 국내 17개 도시와 미국·캐나다·일본·호주 등 해외 12개 도시를 도는 월드투어를 진행 중이다.
스탠드업 코미디의 특징은 코미디언의 개인적 경험을 무대의 핵심 소재로 삼는다는 점이다. 일상의 고립감, 연애와 인간관계, 직장과 계층, 문화적 차이 등 구체적인 삶의 감각이 웃음으로 이어진다.
KBS 공채 개그맨 출신 김병선은 ‘코미꼬’라는 이름으로 멕시코에서 각국의 문화적 차이와 선입견을 농담으로 풀어내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의 높은 자살률을 언급하면서 슬픈 척을 하다가 순식간에 멕시코의 높은 살인율로 분위기를 반전시켜 관객들을 당황하게 하거나, 자신을 중국인이라고 부르는 멕시코 관객에게 “과테말라에서 왔냐”고 되묻는 식이다.
이들을 관객과 연결하는 데에는 온라인 플랫폼의 역할이 크다. 유튜브 쇼츠와 인스타그램 릴스에 올라온 짧은 공연 영상이 코미디언을 알리는 일종의 예고편 역할을 한다. 짧은 농담을 접한 이용자가 코미디언의 화법과 캐릭터에 관심을 갖고 공연장을 찾는 식이다. 과거 국내 스탠드업 코미디의 선구자로 꼽히는 자니윤의 방송 토크쇼가 지상파라는 한정된 무대에 머물며 다양한 형태로 확장되지 못했던 것과 다른 환경이 만들어진 셈이다.
이런 환경은 방송사 공채를 거치지 않은 신인 코미디언들에게 새로운 활동 기반이 되고 있다.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한 스탠드업 코미디언 원소윤도 홍대 코미디클럽 등 오프라인 무대를 중심으로 경험을 쌓아왔다. “서울대는 들어갔는데 클럽은 못 들어갔다”는 자조적 농담이 유튜브에서 확산되면서 이름을 알렸고, 자신의 이력과 사회적 어색함을 결합한 이른바 ‘고학력 농담’으로 관객층을 넓히고 있다.
유튜브를 통해 코미디언의 화법과 수위를 미리 접한 관객들은 공연장에서 다소 센 농담이 나와도 이를 장르의 문법으로 받아들이며 적극적으로 호응한다. 다만 정치·성·인종 등 민감한 소재를 다루는 경우가 많은 만큼 표현의 자유와 함께 혐오·편견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영준 메타코미디 대표는 “미국에서 시작된 힙합이 국내에 들어온 뒤 오랜 시간 발전하며 한국 힙합의 기조를 구축했듯, 스탠드업 코미디 역시 국내 정서와 언어 구조에 맞는 한국식 셋업과 펀치라인을 계속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며 “독자적인 형식과 경쟁력을 갖추고 팬층을 넓혀 간다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