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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 에너지고속도로… ‘12조 청구서’ 수렁이냐 미래 성장 지름길이냐 [심층기획-‘에너지전환 청구서’ 팩트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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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전력망이란 비용

국가전력망 조기개통 가능성 속
경제성 면밀 검토 필요성 지적
전기료 5% 인상땐 GDP 2.2조↓
기업 고용 위축 악순환 우려도

출력제어 줄여 전기 폐기 감소
생산·일자리 창출도 무시 못해
전력산업 해외진출 기반 확보도
반발 최소화한 ‘재원 조달’ 관건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사업이 국민 부담 증가로 이어질 것이다.”

 

이재명정부 출범 직후 치러진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정치권은 이 같은 우려를 제기했다. 정부가 국가 전력망 사업의 일환인 서해안 초고압직류송전(HVDC)의 조기 개통 가능성을 내비치자, 투자비 회수 방안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속도전만 강조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제기였다. 비슷한 시기 원전 학계 일각에서도 “비용을 고려하면 앞뒤 따지지 않고 할 일은 아니다”라며 사업의 경제성을 면밀히 따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인공지능(AI) 시대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는 일이 국가적 과제로 떠오른 지금, 이러한 질문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졌다. 향후 십수년간 70조원 넘게 투입될 전력망 구축 비용이 전기요금에 전가돼 국민 부담으로 되돌아올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막대한 사업비에 시선이 쏠려 전력망 구축이 가져올 직·간접적 경제효과는 상대적으로 덜 조명됐다고 지적한다. 인프라 투자에 따른 생산·고용 유발과 수출 경쟁력 강화 효과 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종합하면 국민 부담 측면에서도 비용보다 편익이 클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전기요금 인상 땐 GDP·고용 감소… 감수해야 할 ‘비용’

 

서해안 HVDC 건설은 실제 국민 부담 증가로 이어질까. 관건은 약 12조원에 이르는 사업비가 전기요금에 얼마나 반영될지다.

 

전기요금은 원가뿐 아니라 물가와 경제 상황, 국민 부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되는 만큼 전력망 투자 확대가 곧바로 요금 인상으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한국전력의 재무 여건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서 대규모 전력망 투자가 추가적인 요금 인상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18일 한전에 따르면 올 상반기 연결기준 총부채는 210조7000억원이다. 2021년 145조8000억원과 비교해 5년 만에 1.4배 넘게 불었다.

 

한전은 ‘11차 송·변전설비 재원 조달계획’에서 전력망 투자비를 “경영효율화와 적정한 전기요금 운영을 통해 투자재원을 자체 조달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력망 구축 비용 일부가 전기요금에 반영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그렇다면 실제 전기요금이 오를 경우 국민경제가 치러야 할 비용은 어느 정도일까.

 

최근 요금 조정 사례와 비슷한 5% 인상을 가정해 영향을 따져봤다. 2023년 5월 전기요금은 약 5.3%, 2024년 10월 산업용(갑) 요금은 5.2% 인상됐다.

 

우선 가계가 체감하는 물가 부담이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전기료의 소비자물가지수 가중치는 16.1이다. 주택용 전기요금이 1% 인상될 경우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0.0161%포인트 끌어올리는 효과가 발생한다는 뜻이다. 5% 인상 시에는 0.0805%포인트 높아져 가계 부담은 더욱 가중된다.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은 기업의 생산과 고용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전기요금 인상이 국내총생산(GDP)·고용 등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직접 분석한 연구는 많지 않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2013년 발간한 ‘전력요금 변화가 거시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산업용 전기요금이 5% 오를 경우 첫해 실질 GDP는 0.094%, 취업자 수는 0.034%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를 지난해 한국 경제 규모에 단순 대입하면 실질 GDP는 약 2조2000억원, 취업자 수는 약 9800명 줄어드는 수준이다. 다만 2002년 2분기부터 2012년 4분기까지 전력요금과 GDP·물가·고용·설비가동률 등 과거 거시경제 자료를 토대로 한 추정치인 만큼 현재 경제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생산 유발, 출력제어 감소… 얻게 될 ‘편익’

 

반대로 전력망을 구축하면서 생기는 경제적 편익도 만만치 않다.

 

대규모 국가기간 인프라는 건설 단계에서 생산과 고용을 늘리고, 완공 후에는 전력 공급을 통해 첨단산업 투자를 뒷받침한다. 현재 서해안 HVDC 4개 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협의 중이어서 정부가 비용 대비 편익(B/C)을 공식 산출한 결과는 없다. 다만 최근 대형 회계법인이 1단계 사업의 경제적 효과를 분석했다.

 

김진일 EY한영 상무는 지난 6월 한국해상그리드산업협회가 주관한 국회 세미나에서 총 2조8000억원이 투입되는 1단계 사업이 14조6000억원의 생산유발 효과를 낼 것으로 추산했다. 건설 단계에서 5조7000억원, 완공 후에는 5년간 운영 매출 등을 통해 8조9000억원의 생산유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봤다. 또 건설 과정에서 1만8816명의 고용이 창출된다고 전망했다.

 

과거 청와대에서 기후·에너지 정책을 담당했던 염광희 독일 비영리 싱크탱크 아고라 에네르기벤데 선임연구원은 “송전망 투자는 고속도로 건설과 비슷하다”며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막대한 재정이 투입됐지만 이후 물류·유통 산업이 활성화되고 새로운 부가가치가 창출된 것처럼 송전망 역시 건설비뿐 아니라 전기화를 통한 온실가스 감축, 지역 균형발전 등 송전망을 통해 발생하는 직·간접적 경제효과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버려지는 전기’도 줄일 수 있다.

 

호남권은 재생에너지 설비가 빠르게 늘었지만 생산된 전기를 수송할 지역 내 송·배전망과 장거리 간선망 확충은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이 때문에 발전 출력을 일시적으로 낮추거나 멈추는 출력제어 조치가 반복되고 있다. 호남과 수도권을 잇는 HVDC가 건설되면 남는 전력을 타 수요지로 보내 출력제어에 따른 손실을 줄일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지혜 의원실이 기후에너지환경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6월 호남권 출력제어는 8만4784㎿h(메가와트시)였다. 태양광이 47회(5만110㎿h)로 제어량이 가장 컸고, 원전 22회(1만5405㎿h), 풍력 55회(7363㎿h) 등 출력제어가 이뤄졌다.

 

출력제어로 활용되지 못한 전력의 경제적 규모를 정확히 산출하기는 어렵지만 대략적으로 가늠해볼 순 있다.

 

출력제어는 태양광 발전이 집중되는 낮 시간대에 주로 발생한다. 반도체 등 24시간 가동 업종을 제외하면 산업용 전력 역시 주간 사용 비중이 높은 만큼, 산업용 전력 판매단가를 기준으로 환산해볼 수 있다. 지난해 산업용 평균 판매단가는 ㎾h당 182원이었다. 이를 올해 상반기 호남권 출력제어량 8만4784㎿h에 단순 적용하면, 활용되지 못한 전력의 판매가치는 약 154억3000만원으로 추산된다.

 

◆세계는 지금… 5조원 비용 부른 ‘망 부족’

 

HVDC를 비롯한 전력망 확충은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독일의 사정도 비슷하다. 풍력·태양광 단지가 모인 북부에서 생산되는 전기를 남부로 옮기기 위해 송전망 확충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약 2000㎞의 송전선로를 새로 승인했고, 현재도 쥐트링크(SuedLink), 쥐트오스트링크(SuedOstLink), 울트라넷(Ultranet) 등 4개의 대형 HVDC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알베르트 모저 독일 아헨공과대 전기공학·정보기술학부 교수가 지난달 7일 자신의 연구실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알베르트 모저 독일 아헨공과대 전기공학·정보기술학부 교수가 지난달 7일 자신의 연구실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알베르트 모저 독일 아헨공과대 전기공학·정보기술학부 교수는 “지난해 출력제어된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약 9.4테라와트시(TWh)로 전체 재생에너지 발전량의 3.5% 수준이었다”며 “이로 인해 독일 송전계통운영자(TSO)들이 계통 혼잡을 관리하는 데 부담한 비용이 약 31억유로(약 5조1000억원)에 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전력망을 다소 과잉 구축했을 때 발생하는 국민경제적 손실보다 전력망 부족으로 인한 손실이 더 크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송전망 사업 인허가와 규제를 담당하는 독일 연방네트워크청은 전력망을 충분히 확충하면 재급전(re-dispatch) 비용을 완전히 없앨 수 있다고 봤다.

 

피테 불프 연방네트워크청 공보실장이 지난달 6일 청사 건물 앞에서 취재진을 맞이하고 있다. 그는 전력망을 충분히 확충하면 출력제어 등 재급전(re-dispatch)에 소요되는 비용을 완전히 없앨 수 있다고 봤다.
피테 불프 연방네트워크청 공보실장이 지난달 6일 청사 건물 앞에서 취재진을 맞이하고 있다. 그는 전력망을 충분히 확충하면 출력제어 등 재급전(re-dispatch)에 소요되는 비용을 완전히 없앨 수 있다고 봤다. 

피테 불프 연방네트워크청 공보실장은 “HVDC는 장거리 송전 시 교류송전보다 전력 손실이 훨씬 적어 현재 4개 대형 노선을 계획해 건설하고 있다”며 “이러한 노력을 통해 이론적으로 재급전 비용을 0에 가까운 수준까지 줄일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세계시장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마켓앤드마켓(MarketsandMarkets)은 세계 HVDC 송전 시장이 2030년에 221억 달러(한화 약 31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 200여 개의 HVDC 설비가 운영 중이며 2036년까지 약 100개가 추가로 건설될 것으로 예상된다.

 

서해안 HVDC 사업을 단순한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넘어 국내 전력산업의 해외 진출 기반을 넓히는 계기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 나오는 이유다. 한 전선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대규모 HVDC 사업을 수행한 실적은 해외에 진출할 때 중요한 경쟁력이 된다”며 “전선·전력기기 업체들이 중요하게 보고 있는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경제 전체가 얻는 편익과 국민이 실제 체감하는 부담을 단순히 ‘일대일’로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다.

 

결국 관건은 12조원에 달하는 서해안 HVDC의 재원을 어떤 방식으로 마련하느냐에 달렸다.

 

정부는 국민성장펀드 등 민간 자본 참여, 한전채 발행을 통한 자체 조달 등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방식은 확정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전력망 확충의 경제적 효과를 극대화하면서도 한전의 재무 부담과 전기요금 인상 압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사업 초기부터 재원 조달 구조를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종배 대한전기학회 회장은 “결국 핵심은 망 구축 비용을 얼마나 낮추고 사업을 얼마나 신속하게 추진하느냐”라며 “송전망을 조기에 구축할수록 송전 혼잡에 따른 비용을 줄여 전력구입비와 전기요금 부담을 낮출 수 있는 만큼 이러한 효과를 종합적으로 따져 사업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기사는 세명대학교 저널리즘대학원의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도움 주신 분들>

 

전영환 전 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 황우현 서울과기대 전기정보공학과 명예특임교수, 염광희 독일 비영리 싱크탱크 아고라 에네르기벤데 선임연구원, 박종배 대한전기학회 회장, 알베르트 모저 독일 아헨공과대 전기공학·정보기술학부 교수, 피테 불프 독일 연방네트워크청 공보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