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대법관후보추천위가 노태악 대법관 후임으로 4명을 추천했지만, 이후 각종 변수가 발생하며 결국 4순위였던 손봉기 부장판사만 홀로 살아남은 상황이 됐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17일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손봉기(60·사법연수원 22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제청한 데 대해 한 법원 관계자는 이같이 평했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는 올해 1월 21일 김민기(55·사법연수원 26기) 수원고법 판사, 윤성식(57·24기) 서울고법 부장판사, 박순영(59·25기) 서울고법 판사, 손봉기(60·22기) 대구지법 부장판사 등 4명을 추천했다.
그러나 이후 재판소원법과 내란전담재판부 도입, 선거관리위원회의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등 각종 변수가 줄줄이 발생하며 이번 제청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① 김민기 제청시 吳 재판관, 관련 사건 심리 논란
노 전 대법관의 후임 제청이 7개월간 지연된 배경에는 김 고법판사를 둘러싼 청와대와 대법원간 이견이 원인으로 꼽힌다. 1월 21일 후보추천위의 추천 명단 발표 이후 2월 국회에서 재판소원법이 처리되며 상황이 복잡해졌다. 재판소원법은 헌법재판소가 법원의 확정판결까지 헌법소원의 대상으로 삼아, 일정한 경우 이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김 고법판사의 남편은 이재명 대통령 지명몫으로 임명된 오영준 헌법재판관이다. 법원 내부에서는 부부가 헌법재판관과 대법관으로 나란히 근무하는 것은 전례가 없을 뿐 아니라, 재판소원까지 도입돼 아내 판결을 남편이 뒤집을 수 있는 상황이 된다는 데 대한 문제 제기가 나왔다. 오 재판관은 헌법재판관 후보자 시절 재판소원 도입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다만 헌재 입장에서도 마냥 환영할 수만은 없다는 분석이다. 오 재판관이 배우자인 김 대법관이 관여한 사건을 심리하게 될 경우 제척·기피·회피 문제가 반복적으로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관 9명 중에 한명이 빠진 8명만으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기본권 침해 여부 등을 다루게 되는 상황도 상정 가능하다.
②무작위 추첨에서 내란전담부 재판장된 윤성식
윤 부장판사는 김 고법판사와 같은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그간 사법연수원 24기에서 대법관이 한명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주요 후보로 꼽혀왔다.
그러나 윤 부장판사가 속한 재판부가 2월 5일 은행알 뽑기로 진행된 무작위 추첨에서 서울고법 내란전담재판부 2곳 중 1곳으로 지정되는 변수가 발생했다. 한 부장판사는 “해당 내란전담재판부에 회부된 사건이 잠시 0건일 때가 있었다. 그때 제청을 하는 것도 가능했겠지만, ‘대법원 제청으로 내란재판장을 바꾼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는만큼 대법원장으로서는 선택하기 어려운 카드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③선관위 투표용지 부족 사태 자유롭지 못한 박순영
박순영 고법판사는 김 고법 판사와 마찬가지로 여성이란 점에서 제청 가능성이 거론됐던 인물이다. 그러나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었다는 평가다. 박 고법판사는 2021년 3월 김명수 전 대법원장 지명으로 현재까지 중앙선관위원을 겸하고 있다.
6월 국회 국조특위에 불려나간 박 고법판사는 “투표용지 50% 축소 인쇄에 대해서 12월 24일 회의 때 보고를 받았냐. 투표 전에 알고 있었냐”는 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알고 있었지만 선거 전인지 후인지는 기억이 안 난다”고 답했다.
④ 추천위 재가동해 새 후보 추천 받을 수는 없었나
추천위는 대법원장의 ‘자문 기구’에 불과하다. 추천은 권고 성격일뿐, 강제성이 없다. 이 때문에 조 대법원장이 추천위를 다시 가동해 아예 새로운 후보 4명을 추천받는 것도 가능하다. 추천위의 추천 없이 ‘제3의 후보’를 제청하는 것 역시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 그러나 ‘원칙주의자’로 평가되는 조 대법원장으로서는, 추천위의 추천을 존중해온 기존 관례를 벗어나기는 어려웠을 것이란 시각이 대체적이다.
조 대법원장이 선택할 수 있었던 가장 무난한 카드는 추천위가 이미 추천한 후보 가운데 손 부장판사였다는 것이다. 결국 ‘가장 원했던 후보’라기보다 ‘가장 논란을 피해 갈 수 있는 후보’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해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