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둔 어느 날,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인근 영등포의 한 유세장으로 향하던 버스 행렬이 돌연 행선지를 바꿨다. 당시 1호 차에는 새천년민주당의 추미애 비상대책위원장이 보좌진과 함께 탑승하고 있었다. 2호 차에 몸을 실은 신문·방송 취재진 수십명이 웅성거리기 시작한 건 이즈음이었다. 예정된 지원유세가 사전예고 없이 취소된 탓이다. ‘시간 부족’이 이유였다. 당시 영등포 유세장에서 추 위원장을 기다리던 이는 김민석 후보였다.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을 탈당해 정몽준 후보 측 ‘국민통합21’에 합류했다가 복당한 김 후보에게 미운털이 박힌 것 아니냐는 얘기가 돌았다. 김 후보는 재선에 성공했던 영등포을 대신 ‘험지’인 영등포갑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상태였다. 선거 결과는 낙선(3위). 당시 해프닝을 두고 정치권에선 두 정치인의 앙금으로 해석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2. 2017년 7월 당시 추미애 민주당 대표의 행보는 논란에 불을 댕겼다. 국민의당을 향해 ‘머리 자르기’ 발언을 하며, 청와대와 같은 당 원내대표에 대해서도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통상 위기 국면에서 꾸리던 혁신위를 대선 승리 직후 꺼내 들면서 당권 장악에 나섰다는 지적도 받았다. 추 대표는 전당대회에서 친문(친문재인)계의 지원을 얻어 당선됐지만 여전히 지지기반은 미약한 상황이었다. 당·청 갈등 돌출 직후에는 물밑에서 친문과 86그룹을 중심으로 권력구도 재편 움직임이 감지되기까지 했다. 86그룹의 선두주자로는 송영길·우상호·이인영·우원식 등이 꼽혔다. 이들과 청와대의 연결고리로는 같은 86그룹인 임종석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 등이 거론됐다. 이때 추 대표를 도운 사람은 당시 김민석 민주연구원장이었다. 두 사람의 공조를 토대로 추 대표는 당내 구심력을 키울 수 있었다.
◆1990년대 ‘DJ 키즈’…2000년대의 시련
더불어민주당의 8·17 전당대회가 김민석 신임 당대표의 승리로 막을 내린 가운데 경선 과정에서 표출된 김 대표와 추미애 경기도지사 간 정치적 애증(愛憎) 관계가 관심을 끌고 있다.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영입으로 같은 시기 정계에 입문한 ‘DJ 키즈’이자 30년지기 동지가 전대를 둘러싸고 엇갈린 행보를 보인 때문이다.
추 지사는 김 전 대통령 서거 17주기인 18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전날 막을 내린 전당대회를 평가했다. “내부를 향한 공격과 적대시는 제 몸을 향해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과 같았다. 권력 수렴식 단합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당권을 쥐며 당·청 공조와 내부 단합을 강조한 김 신임 대표를 향해 다시 견제구를 날린 것으로 풀이된다.
두 사람의 인연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1996년 제15대 총선(서울 영등포을)을 통해 32세의 나이로 금배지를 단 김 대표와 판사 출신으로 1995년 김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정계에 입문한 추 지사는 당대 민주당을 대표하는 30대 소장파의 선두주자이자 ‘DJ의 젊은 피’였다.
2000년대 들어 두 사람의 정치적 궤적은 갈라졌다. 김 대표는 2002년 서울시장 선거 패배 후 대선을 앞두고 정몽준 후보의 ‘국민통합21’로 당적을 옮겼다. 이후 긴 야인 생활과 정치적 시련을 겪었다. 반면 추 지사는 노무현 대선후보 캠프의 핵심 인사로 활동했다. 2003년 민주당 분당과 열린우리당 창당 국면에선 동교동계 구민주당에 남아 노무현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등 파란만장한 정치적 시련을 공유했다.
◆2016년 ‘가을 전어’ 합당과 야권 통합의 동반자
멀어졌던 두 사람을 다시 묶어준 계기는 2016년 당대표와 원외 정당 대표로 만난 야권 통합 국면이었다. 2016년 8월 민주당 대표로 선출된 추 지사는 전통의 ‘민주당’ 약칭을 되찾기 위해 원외 정당이던 이른바 ‘마포 민주당’의 김 대표와 흡수 합당을 추진했다.
2016년 9월18일, 해공 신익희 선생 생가에서 열린 합당 선포식에서 추 지사는 “집 나간 며느리를 돌아오게 하는 가을 전어의 역할을 하겠다”며 김 대표를 끌어안았고, 김 대표 역시 “공감할 게 많다”며 화답했다.
이 합당으로 더불어민주당은 ‘민주당’이라는 정통성 있는 약칭을 회복했고, 이어진 촛불 정국과 2017년 대선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 2017년 당시 추미애 당대표 체제에서 김 대표는 민주연구원장으로 기용돼 당의 전략과 정책 고도화를 함께 이끄는 끈끈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올해 전당대회서 검찰개혁 방향성 두고 이견?
올해 8·17 전당대회는 10년간 이어져 온 두 사람의 공존 체제에 균열을 가했다.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김민석 후보와 정청래 후보가 치열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추 지사가 정 후보를 향해 사실상 공개 지지 의사를 표명하면서다.
추 지사는 수도권 경선을 앞둔 지난 9일 정 후보의 SNS에 “마무리 짓지 못한 개혁 과제들이 많다. 개혁의 일관성과 진심을 믿는다”며 응원 댓글을 남겼다. 이어 11일에는 “지난 1년 대표적 개혁 과제인 검찰개혁의 순서를 뒤바꾸고 거꾸로 개혁 대상을 모아 개혁 TF를 꾸려 프로세스를 지체시킨 좌고우면 태세로는 개혁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김 후보를 겨냥해 포문을 열었다. 국무총리로서 총리실 산하 검찰개혁 TF를 이끌었던 김 후보의 행적을 ‘개혁 지연’으로 규정한 셈이다.
이에 당시 김 후보 측도 좌시하지 않았다. 김 후보 측은 추 지사가 경기도 재정을 ‘사실상의 부도 상태’로 선언한 점을 고리로 재정 난맥상에 부정적 태도를 드러냈다. 김 후보는 경기도를 찾은 자리에서 “추 지사의 재정 부담을 함께 덜어주겠다”며 유연성을 보였으나, 친명(친이재명)계 강성 지지층에선 추 지사가 이재명 전 지사 시절의 재정 문제를 부각해 김 후보에게 타격을 주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두 사람 사이의 감정 골이 깊어졌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일부 정치평론가들은 “여당이 전대 이후 통합과 화합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전망을 하고 있다.
◆‘개혁 적자’ 명분 쌓기와 향후 역학관계
정치권에선 이번 전당대회에서 추 지사가 보여준 행보를 두고 단순한 후보 지지를 넘어선 ‘차기 대권 및 강성 개혁 세력 구심점 구축’ 전략으로 분석하고 있다. 김 신임 대표가 친명계와 이재명 정부와 안정적인 국정·당정 공조를 중시하는 ‘권력 수렴형’ 지도부를 구축하자, 추 지사는 ‘원칙적 개혁 선명성’을 기치로 내걸며 당내 개혁 세력의 적자(嫡子) 자리를 선점하려 했다는 평가다.
김 대표가 당권을 거머쥐었지만, 경기도라는 거대 광역 지자체를 이끄는 추 지사와의 정책 경쟁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30년 전 ‘DJ 키즈’로 출발해 야권 통합의 동반자로 협력했던 두 정치 거물이 이제는 당권을 쥔 당대표와 지방행정을 호령하는 잠룡으로 만나 여권의 향후 행보를 좌우할 애증의 정치를 이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