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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부위만 금빛으로 닳아버린 관광지 동상…사람들이 만지는 숨은 심리

프랑스 가수 달리다 흉상, 3000유로 들여 복원했지만, 보름 만에 다시 금빛
뿔·고환 만지면 재물복이?…월스트리트 황소 동상에 몰린 관광객
전문가들, “평소에 만지기 어려운 부위 만져 희소한 가치인 ‘행운’을 바라는 것”

유독 색이 다른 동상의 ‘특정 부위’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에서는 흉상의 가슴을 만지는 행위를 둘러싼 성차별 논란이 일고 이탈리아 베로나에서는 관광객들의 손길이 이어지면서 줄리엣 청동상의 가슴에 구멍이 뚫리기도 했다.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에서는 황소 동상의 특정 부위들을 만지려는 방문객들로 두 갈래의 긴 줄이 늘어선다.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에서 비롯한 동상에 얽힌 이야기와 심리학적 배경을 살펴봤다.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에 있는 프랑스 가수 ‘달리다’의 흉상과 2012년 7월5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설치된 ‘돌진하는 황소’ 동상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조각가 ‘아르투로 디 모디카’. 암스테르담에 있는 해당 동상은 월스트리트에 있는 황소 동상과 동일하다. 파리=EPA연합뉴스, 암스테르담=EPA연합뉴스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에 있는 프랑스 가수 ‘달리다’의 흉상과 2012년 7월5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설치된 ‘돌진하는 황소’ 동상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조각가 ‘아르투로 디 모디카’. 암스테르담에 있는 해당 동상은 월스트리트에 있는 황소 동상과 동일하다. 파리=EPA연합뉴스, 암스테르담=EPA연합뉴스

◆ 기억하는 방식 vs 성차별적 행위…‘달리다’ 흉상 둘러싼 갑론을박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에 있는 프랑스 국민가수 ‘달리다’의 청동 흉상은 가슴 부분을 만지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속설로 관광객의 손길이 늘 이어진다.

 

관광객들의 반복된 행동에 가슴 부분만 금빛으로 변하자 파리시는 지난달 25일 약 3000유로(한화 약 490만원)를 들여 흉상을 어두운색으로 복원했다. 그러나 복원 보름 만에 가슴 부분이 다시 금빛을 띠기 시작했다. 관광객들이 계속해서 흉상의 가슴을 만지면서 새로 입힌 표면의 녹청이 빠르게 벗겨졌고, 특유의 금빛이 다시 드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달리다의 본명은 ‘이올란다 크리스티나 지글리오티’다. 이탈리아계 프랑스 가수 겸 배우인 달리다는 이집트 카이로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1950~80년대 프랑스 대중음악계를 이끌었다. 1987년 사망 직전까지 25년간 몽마르트르에 거주했던 그는 이 지역을 각별히 아낀 것으로 전해졌다. 몽마르트르의 상징적인 존재가 된 달리다의 10주기를 맞아 파리시는 1997년 4월 생전 주거지 인근에 프랑스 조각가 아슬란이 제작한 청동 흉상을 세웠다.

 

흉상 만지는 관행을 둘러싸고 여러 의견이 엇갈린다. 일부 여성단체와 녹색당 정치인들은 이를 성차별적이고 모욕적인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행동이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도록 만든다는 지적이다. 지난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에는 한 예술가가 해당 관행에 항의하는 의미로 달리다 흉상에 흰색 코르셋을 입히기도 했다.

 

반면에 달리다의 남동생이자 가수 겸 배우 올랜도는 “이 가슴을 만지는 행위에서 어떠한 불경함도 느끼지 못한다”며 달리다를 계속 기억하게 하는 행동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지난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에 코르셋을 입힌 달리다 흉상. 함부로 손대지 못하도록 압정이 박혀 있다. 표지판에 적힌 글씨는 불어로 ‘당신들은 우리가 갑옷을 입게 만든다(vous nous obligez à sortir les armures)’. 인스타그램 계정 ‘luzlibrevent’ 캡처
지난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에 코르셋을 입힌 달리다 흉상. 함부로 손대지 못하도록 압정이 박혀 있다. 표지판에 적힌 글씨는 불어로 ‘당신들은 우리가 갑옷을 입게 만든다(vous nous obligez à sortir les armures)’. 인스타그램 계정 ‘luzlibrevent’ 캡처

 

◆ ‘사랑의 행운’ 빌다 결국 구멍 뚫린 줄리엣 동상

 

이탈리아 북부 도시 베로나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영국 소설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주인공 ‘줄리엣’을 형상화한 청동상의 오른쪽 가슴에는 구멍이 눈에 띈다.

 

사랑의 행운을 가져다준다며 하루에도 방문객 수백명이 줄리엣 동상의 오른쪽 가슴을 만지기 때문이다. 현지 신문 라레나는 방문객들의 손에서 나온 땀으로 인해 가슴 부위에 작은 구멍이 생긴 것으로 추정했다.

 

동상은 줄리엣이 역경에도 불구하고 로미오와 결혼하겠다고 맹세했다고 설정된 베로나의 ‘줄리엣 집’ 안뜰 발코니 아래에 1972년 처음 세워졌다. 이곳은 베로나시가 희곡 분위기에 맞춰 관광용으로 지정한 장소이며 청동상도 조각가의 상상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2014년 동상 복원과 전시를 위해 이탈리아 카스텔베키오 박물관으로 옮겨졌고 원래 자리에는 ‘가톨릭보험조합(Società Cattolica Assicurazioni)’의 지원금 1만5000유로(약 2433만원)을 들여 제작한 복제품이 대신했다. 하지만 교체된 복제품도 가슴에 구멍이 뚫리는 일을 피하지는 못했다.

 

2024년 3월7일 이탈리아 베로나의 줄리엣 동상. 오른쪽 가슴 부위에 구멍(빨간 동그라미)이 뚫려 있다. 베로나=EPA연합뉴스
2024년 3월7일 이탈리아 베로나의 줄리엣 동상. 오른쪽 가슴 부위에 구멍(빨간 동그라미)이 뚫려 있다. 베로나=EPA연합뉴스

 

◆ ‘부와 복’ 빌며 만지는 3.2t 황소와 대기 줄 두 갈래

 

미국 뉴욕의 금융가 월스트리트에는 ‘돌진하는 황소’ 동상이 있다. 높이 3.4m, 길이 4.9m에 무게는 3.2t인 이 거대한 동상에는 황소의 뿔이나 고환을 만지면 부와 복을 가져다준다는 이야기가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1987년 ‘블랙 먼데이’ 사건으로 미국 주식 시장이 폭락하자 이탈리아 예술가 ‘아르투로 디 모디카’는 미국인들에게 힘차게 전진하는 소처럼 다시 앞으로 나아가자는 희망과 용기를 전해주고자 조각상을 제작해 1989년 설치했다.

 

조각가가 희망의 상징으로 황소를 선택한 배경에는 증권가에서 황소가 가지는 특별한 의미와 관련이 있다.

 

주식 시장에서 황소는 ‘상승장’과 경제적 번영, 곰은 ‘하락장’과 경기 침체를 상징한다. 뿔을 아래에서 위로 받쳐 올리는 황소의 모습은 주가 상승, 발로 위에서 아래로 짓누르는 곰의 모습은 주가 하락에 비유되곤 한다. 이에 주요지수가 전고점 대비 20% 이상 오르면 ‘불마켓(Bull Market)’, 반대로 20% 이상 떨어지면 ‘베어 마켓(Bear Market)’이라 부른다.

 

상승장 기운을 얻고자 황소 동상에는 언제나 긴 줄이 늘어선다. 흥미로운 점은 방문 목적에 따라 황소 머리 쪽을 만지려는 줄과 고환을 만지려는 줄로 나뉜다는 점이다. 연간 수백만 명에 이르는 관광객들이 매일같이 직접 만지다 보니 황소 동상의 해당 부위들은 다른 곳에 비해 유독 금빛을 띠고 있다.

 

뉴욕 월스트리트에 있는 ‘돌진하는 황소’ 동상의 앞모습과 뒷모습. 뉴욕=AP연합뉴스, 유튜브 채널 ‘KBS 트래블-걸어서 세계속으로 2’ 캡처
뉴욕 월스트리트에 있는 ‘돌진하는 황소’ 동상의 앞모습과 뒷모습. 뉴욕=AP연합뉴스, 유튜브 채널 ‘KBS 트래블-걸어서 세계속으로 2’ 캡처

 

◆ 행운을 부르는 ‘터치’…동상 특정 부위에 손길 이어지는 심리

 

전문가들은 관광객들의 행동에 행운이 깃들기를 바라는 기대감이 숨어 있다고 분석한다.

 

임명호 단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나에게도 특별한 행운이 올 것이라 기대하는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인간은 예로부터 무의식적으로 부여한 상징적인 부위를 만져 저마다 바라는 행운을 얻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신체 부위와 연관된 상징이 인간 무의식 속에 자리한다는 심리학자 칼 융의 ‘집단무의식’과도 비슷한 셈이다. 이러한 믿음에서 나온 사람들의 손길은 특정 부위의 색을 변하게 했고 남이 하니 나도 한다는 일종의 동조 현상이 더해져 눈길을 끄는 지금의 모습이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