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에서 의식주는 매우 중요하다. 의식주가 안정돼야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서 18년째 살고 있다. 그동안 기숙사, 단독주택, 아파트 등 다양한 주거공간에서 생활해 보았다. 이 중에서 한국 문화와 한국인의 정을 가장 깊이 느낄 수 있었던 곳은 아파트였다.
4년째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이웃’의 의미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파트에는 수백 세대가 하나의 건물과 공간을 공유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사람, 복도에서 인사를 나누는 사람, 같은 주차장을 이용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아파트에서 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인사’였다. 한국 사람들은 일상이 바쁘다 보니 서로 인사를 자주 나누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런데 우리 아파트에서는 달랐다. 특히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칠 때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같은 동에 사는 이웃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서로에게 관심을 두고 나의 존재를 알아준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해외에 나가 오랫동안 보이지 않으면 걱정해 주시고, 돌아온 후에는 안부를 물어봐 주시는 이웃들도 계신다. 그들은 어느 순간부터 나의 일상을 기억하고 안부를 묻는 ‘이웃’이 되어 있었다. 이러한 작은 관심과 인사가 나에게는 한국에서 느끼는 따뜻한 정이자 공동체의 소속감으로 다가왔다.
같은 층이나 같은 동에 사는 주민들은 서로를 위해 양보하기도 하고, 생활에 필요한 편의시설을 제안하기도 한다. 실제로 우리와 같은 층에 사시는 한 어르신께서 경비실에 날이 어두워지면 우리 동 로비에 불을 켰으면 좋겠다고 요청하신 적이 있다. 그리고 나에게도 그 사실을 알려주셨다. 나는 그 이후 늦은 시간에 귀가할 때마다 로비에 켜진 불빛을 보면서 그분께 감사한 마음을 느낀다. 누군가에게는 아주 작은 요청이었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이웃의 배려와 관심을 느낄 수 있었던 따뜻한 경험이었다.
아파트에서 살면서 일상에서 여유를 느낄 수도 있었다. 우리 아파트 근처에는 유치원이 있는데, 아침마다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파트가 단순히 사람들이 모여 사는 주거공간이 아니라 가족들의 일상이 함께 이루어지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동 앞에는 농구장도 있고, 어르신들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쉼터도 마련되어 있다. 농구장에서는 학생들이 농구하거나 배드민턴을 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어르신들이 운동하거나 산책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바쁜 일상에서도 집 가까이에서 운동하고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그들의 모습이 때로는 부럽게 느껴진다. 나도 언젠가는 시간에 쫓기지 않고 이웃들과 함께 운동도 하고 쉼터에 앉아 이야기도 나누면서 아파트에서의 여유로운 일상을 즐겨보고 싶다.
결국 아파트라는 공간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은 내가 편안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편안함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공동체’란 서로를 아주 잘 아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 서로를 잘 알지 못하더라도 배려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공간인지도 모른다. 아파트에서 느낀 작은 ‘우리’의 감각은 그래서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는다.
사하부트지노바 루이자 조이로브나 남서울대학교 조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