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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프리즘] 조현병의 눈물, 누가 닦아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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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낙인·제도 공백 탓
환자가족이 치료·돌봄 떠맡아
관련법 국회 표류… 고통 여전
지역 기반 조기개입 정책 시급

며칠 전 일본에서 제작된 다큐멘터리 ‘어떻게 해야 했을까’를 보았다. 조현병을 앓는 누이를 둔 동생, 후지노 도모아키 감독이 25년 동안 가족의 삶을 기록한 작품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함과 분노를 억누르기 어려웠다. 왜 이상한 증상을 보이는 딸을 병원에 데려가 치료받게 하지 않고, 집 안에 가둔 채 시간을 흘려보냈을까. 영화 제목은 그 가족이 가장 오래 붙들고 있던 질문이었다.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그 질문은 그 집만의 것이 아니다.

조현병은 대개 청년기, 가족이 가장 많은 기대를 품는 시기에 찾아온다. 영화 속에서 평범한 삶을 꿈꾸던 누이의 소망은 요원해졌고, “약은 먹지 않겠다”고 고집부리고, 부모는 남몰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가족은 누이를 사랑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보호하려다 가두고, 가두려다 죄책감에 무너진다. 상담할 창구도, 잠시 머물 곳도, 당사자와 가족을 함께 앉힐 사람도 없다. 결국 집 안에서 조용히 곪아간다.

권준수 한양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 석좌교수
권준수 한양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 석좌교수

이 풍경은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에서도 조현병 가족들은 같은 굴레를 안고 산다. 환자가 약을 끊으면 증상이 재발하고, 가족은 매번 새 발병기를 함께 견뎌야 한다. 부모는 일을 그만두고, 형제자매의 관계는 흔들린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고통의 대부분은 끝내 가족의 몫이다. 몇 년 사이 정신의료기관에서 환자가 같은 병실의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들이 잇따라 보도됐고, 시설 내 강박 같은 보호조치가 환자 안전을 충분히 담보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첫째는 병식(病識)의 결여다. 조현병 환자의 상당수는 발병 초기에 자신의 증상을 병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신증상을 보이고 치료받기까지의 기간이 길수록 경과가 나쁘고 만성화된다는 연구는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그래서 조기 발견과 조기 치료가 세계적 흐름이다. 둘째는 낙인이다. 정신과 진료를 받는 사실만으로도 가족은 “무슨 집안이냐”는 시선을 두려워한다. 영화 속 부모도 그 시선을 피해 딸을 숨겼다. 다만 과거에 비해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상당히 완화된 것으로 보인다.

셋째는 제도의 공백이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한국의 정신건강정책은 2017년 (구)정신보건법이 정신건강복지법으로 전면 개정되며 지역사회 회복을 목표로 전환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가족이 마주하는 첫 관문은 여전히 입원이다. 2024년 기준 비자의 입원 중 약 74%가 보호의무자 동의 입원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보호자가 사실상 치료의 1차 책임자처럼 자리매김된 셈이다. 이 제도들은 가족 한가운데 놓인 무게의 중심을 바꾸지 못하고 있다.

보호의무자 입원 폐지 법안은 국회에서 표류 중이고, 정부가 발표한 제3차 정신건강복지기본계획(2026~2030)에 보호의무자제도 개선 과제가 포함됐지만 구체적 실행 일정은 불투명하다. 가족 교육 참여자는 여전히 적고, 위기 대응 인력의 규모와 역량은 자치구마다 편차가 크며, 회복기 사례 관리의 사각지대도 그대로 남아 있다. 보호의무자제도 아래에서 정작 보호받지 못하는 가족이 등장하는 모순이 지속되고 있다.

질문은 “가족이 왜 무너졌느냐”가 아니다. 그 질문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다. 답은 환자만이 아니라 가족, 지역사회와 국가가 함께 만들어야 한다. 첫째, 발병 초기부터 병원, 가정, 그리고 사회서비스가 한 팀이 되는 지역 기반 조기 개입 체계가 자리 잡아야 한다. 아울러, 자라나는 시기부터 학교 교육 등을 통해 정신건강과 정신질환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넓혀 나가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둘째, 가족 고립을 깨는 상담과 교육이 보편적 서비스로 제공돼야 하며, 보호의무자 입원 폐지 이후에는 행정입원과 입원적합성심사가 촘촘히 연결되어야 한다. 셋째, 가족이 죄책감 속에서 선택지를 홀로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필요하다. 그것이 영화가 우리에게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정신질환 가족의 고통은 우리 모두의 거울이다. 다큐 한 편이 던진 질문, “어떻게 해야 했을까”에 우리 사회가 답하기 시작할 때 어둠 속에 홀로 남겨진 가족들의 밤은 비로소 짧아질 것이다.

 

권준수 한양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