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dak 필름 한 롤 서른여섯 번의 셔터를 누르며 사진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카메라에 표시된 필름 카운터가 25 정도가 되면 고민이 시작됐다. 필름을 새걸로 갈아야 하나 남은 거로 찍어도 될까? 제한된 서른여섯 번의 셔터를 누르는 순간의 신중함과 긴장감, 설렘은 지금의 디지털카메라 시대에는 느낄 수가 없는 감정이다.
사진기자는 본인이 취재했던 사진을 나름의 방식으로 보관한다. 개인의 차이는 있지만 나는 사진의 중요도를 떠나 보관을 많이 하는 사진기자이다. 역사의 중요했던 순간도 있었고, 상황이 기억도 없는 시답지 않은 사진도 있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담은 기념사진도 있고 취재와 출장 중에 보이는 나의 모습도 있다.
아주 먼 옛날의 모습은 아니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열어본 나의 외장하드를 독자들과 같이 꺼내보고 추억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1998년 4월 14일, 고교 야구의 경기가 한창인 서울 동대문야구장 관중석의 모습이다.
취재 당시 데스크의 지시가 또렷하게 생각난다. 당시 IMF 실직자들이 충격받을 가족들에게 실직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여느 때와 같이 출근한다며 집에서 나와 갈 곳이 없으니 야구장, 등산로, 공원 등에서 시간을 때우다 퇴근시간에 집으로 간다 하니 직장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취재하라는 지시로 기억난다. 야구장 관람석의 모습을 담은 평범한 사진이었지만 지금 다시 보니 가슴 아픈 사진이었다. 피사체가 야구 경기가 아니고 흰 셔츠를 입은 남자들이다.
평일 낮 시간인데도 관중석 곳곳에 야구를 보러 온 시민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학부모, 직장인으로 보이는 흰 셔츠의 남자들, 햇볕을 피하려 모자를 쓴 어르신들과 머리에 천을 두른 관중까지 그 모습도 다양하다. 지금처럼 핸드폰으로 경기 영상을 보거나 전광판을 바라보는 사람도 없다. 모두 그라운드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지금은 사라진 당시 동대문야구장은 고교 야구와 대학야구, 실업야구 등 아마추어 야구의 중심 무대였다. 프로야구가 인기를 끌던 시절에도 아마 야구의 중요한 경기는 이곳에서 열렸다. 사진을 다시 꺼내보니 선수들보다 관중석의 풍경에 먼저 눈길이 간다. 노란색 의자와 초록색 인조잔디, 관중석과 그라운드를 가로막은 높은 철망도 그 시절 동대문야구장의 익숙한 모습이다.
동대문야구장은 한국 야구의 역사와 함께했던 곳이다. 수많은 고교 야구 스타들이 이곳에서 이름을 알렸고 청룡기, 황금사자기 등 전국 대회가 열릴 때면 관중석을 가득 채운 학교 응원전도 볼거리였다. 특히 전국 고교야구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학교의 명예를 걸고 뛰는 선수들과 응원단, 관중들이 한데 어우러졌다. 훗날 한국 야구를 대표하게 된 많은 선수들도 동대문야구장 그라운드를 거쳐 갔다.
오랜 세월 야구인들의 추억이 쌓였던 동대문야구장은 서울시의 도심 재개발 계획에 따라 야구인들과 체육계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2007년 12월 철거 작업이 시작되었고, 2008년 3월 폭파 해체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들리던 “깡 깡” 경쾌한 알루미늄 배트의 타격 음과 목청 높여 외치던 단체 응원 소리도 사라졌다.
한국 야구 팬들의 기억 속에서 동대문야구장은 단순한 체육시설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의 아픔부터 해방 이후 한국 야구의 부흥기, 그리고 프로야구의 태동까지 대한민국의 현대 스포츠사를 같이한 역사의 현장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의 현장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더는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