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K9 자주포, 美 육군에 수출길 뚫었다… 방위산업 새 역사

입력 :
수정 :
폰트 크게 폰트 작게
한화에어로 시제품 공급 계약

한국전쟁 당시 화포 지원 받던 한국
76년 만에 美 포병 현대화 지원 ‘감격’
‘미국통’ 김승연, 자주국방 도전 결실

차륜형 K9MH 시제품 6문 우선 공급
향후 12문 추가 인도… 3700억원 규모
‘미국 현지 생산 및 공급망 전략’ 주효
“실패해도 좋습니다. 자주국방을 위한 한화의 기술은 남을 것입니다.”

 

2000년대 초반, 한화그룹 경영진은 전술다련장체계 ‘천무’에 대한 선행투자를 제안한 방위사업청의 요구에 고심했다. 국내 첫 무기체계 독자개발이라는 부담과 개발 실패 시 회사가 껴안아야 할 손실도 천문학적 수준이었다. 하지만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방산은 글로벌 수출산업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며 경영진에게 도전의식을 주문했다. 그렇게 대한민국 방산의 기술 자립을 상징하는 천무가 탄생했다.

 

김 회장의 이런 자주국방을 위한 ‘담대한 도전’이 결실을 맺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차륜형 K9 자주포(K9MH)가 진입장벽이 가장 높기로 정평난 미국 완성무기체계 시장을 뚫어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에서 자주포를 지원받았던 한국이 76년 만에 미국 포병의 현대화를 지원하는 신호탄을 쏘면서 방위산업의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19일 미 육군의 기동전술화포(MTC) 사업에서 단독 시제품 공급업체로 선정돼 K9MH 시제품 6문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향후 12문을 추가로 인도할 계획인데, 시제품 제작사업 비용만 총 2억6290만달러(3716억원)다.

 

4년 동안 시제품 인도와 성능 실험을 거치면 양산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향후 양산 규모는 최대 500문(1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이번 시제품 제작사업에서 쟁쟁한 글로벌 방산 기업을 제치고 단독 선정된 만큼 미국 측이 시제품에 만족한다면 양산 계약도 유력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번 사업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외에 유럽 최대 규모의 지상 무기 제조업체인 독일의 라인메탈을 비롯해 미 육군의 주력 장갑차인 스트라이커를 생산하는 제너럴 다이내믹스, 글로벌 방산·항공우주 기업인 영국 BAE 시스템즈, 전자전 분야의 최강자인 이스라엘 엘빗 시스템즈가 도전장을 냈다. 미 육군은 복수의 업체를 선정해 경쟁 평가를 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단독 시제품 사업자로 최종 선정했다.

 

미 육군은 K9MH가 가진 압도적인 성능과 전 세계 10개국 이상에 수출되며 검증된 대량생산 능력 및 풍부한 운용 데이터에 높은 점수를 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앨라배마주 공장 임대 및 탄약 공장 투자 제안 등 미 육군이 가장 중시한 ‘과감한 미국 현지 생산 및 공급망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MTC 사업은 현재 미 육군이 운영하고 있는 ‘M777 155㎜’ 견인포를 대체할 새 무기체계를 도입하는 사업이다. 자체 동력이 없어 견인차를 대동해야 했던 견인포보다 기동성이 높은 차륜형 자주포를 확보하겠다는 게 미 육군의 목표다.

 

이번 K9MH의 미국 진출은 한국전쟁 당시 미국으로부터 자주포를 지원받았던 한국이 미국의 포병 전력 현대화 지원에 나선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당시 한국군은 자주포는커녕 제대로 된 곡사포 하나 없이 전쟁을 맞았지만, 미군이 공급해 준 포병부대의 M7 자주포로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냈다. 미군에 무기를 지원받아 나라를 지켰던 한국이 이제는 미군의 화력을 책임지는 핵심 공급처로 발돋움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