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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말을 걸어오는 색 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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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후 미국 미술이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게 된 데에는 추상표현주의의 시작을 연 잭슨 폴록의 공이 컸다. 그 이후의 화가들은 물감을 뿌리고 흘리고 떨어뜨리는 폴록의 방법에 매혹됐고, 자신들만의 작업 방식을 개척해 나갔다. 그중 한 명이 모리스 루이스였다. 루이스는 묽은 아크릴 물감을 캔버스에 부어서 물감이 캔버스 속으로 스며들게 했는데, 자연스러운 물감 자체의 효과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간혹 물감이 스미는 캔버스를 움직여서 물감의 흐름을 조절하고 변화를 연출하기도 했다. 이 그림도 그렇게 탄생했고, 색 면 추상 회화로 불렸다.

‘… 하는 동안(while)’이란 제목을 통해 이 작품의 의미들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작품의 결과물보다 탄생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단순한 색 띠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것들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작가에 의해서 발휘된 변화의 제스처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렇게 탄생한 색 띠와 색 면들이 우리에게 말을 걸고 효과를 발휘하는 과정을 주목해 보자는 의도이다.

모리스 루이스 ‘… 하는 동안(while)’(1960)
모리스 루이스 ‘… 하는 동안(while)’(1960)

1960년대 루이스를 포함한 미국의 색 면 추상 화가들은 색채 평면이 무엇을 서술하거나 은유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있고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입체적 이미지를 연상시키려 한 구상미술과 달리, 가장 회화적인 특성인 평면성과 색의 영역을 강조해서 회화가 평면작업 자체임을 나타내려 했다. 그런 색 면들 스스로 서로 간섭하고 영향을 끼치면서 만들어 내는 효과가 작품의 객관적이며 공적인 의미가 된다는 관점에서였다.

“루이스의 작품들이 한곳에 모인다면, 그 작품끼리 서로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루이스의 예술 세계를 비평가들이 해석하고 설명할 때 주로 사용하는 문장이다. 루이스가 물감을 붓고 캔버스를 흔드는 기법으로 제작한 작품들이 각각 고유한 색채와 형태의 울림을 갖게 되고, 그것들끼리 한 공간에 모이면 서로 대화를 나누듯 시각적인 공명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박일호 이화여대 명예교수·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