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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백유의스포츠속이야기] 야구 영웅들의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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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야구의 ‘살아 있던 전설’ 백인천 전 MBC 청룡 감독이 광복절인 지난 15일 세상을 떠났다. 그가 떠난 지 정확하게 하루가 지나 메이저리그에서도 토미 존이 영면에 들었다. 83세의 동갑내기인 두 야구인은 그라운드에서 불굴의 투지를 불살랐던 영웅들.

 

백인천 감독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 위해 지난 16일 천안 단국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각계에서 보낸 조화가 가득했지만, 장례식장 분위기는 조용하고 쓸쓸했다. 빈소에는 김소식 장례위원장과 KBO 직원 외에는 문상객을 손에 꼽아야 했다. 프로야구 시즌이 진행 중이니 방문객이 적었으리라.

 

백 감독은 한국 야구에서 불멸의 기록을 남겼다. 그는 프로 원년인 1982년 MBC 청룡의 감독 겸 4번 타자로 뛰면서 시즌 타율 0.412로 타격왕에 올랐다. 그의 나이 39세 때의 일이다. 우타자인 그는 당시 한국 야구에서는 보기 드물게 밀어치기에도 능했다. 백인천의 밀어치기는 그에게 ‘안타 제조기’라는 별명을 얻게 했다.

 

활짝 웃는 백 감독의 영정사진을 바라보다가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코치로 활약 중인 홈런왕 이승엽이다. 백 감독이 삼성 감독으로 부임했던 96년 이승엽은 프로 2년 차 풋내기였다. 경북고 시절 투수 겸 타자로 활약한 이승엽은 팔 부상으로 마운드에서 내려와 타자로 전업했다. 그때는 전형적인 중장거리 타자. 이승엽의 손목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백 감독은 “홈런을 노리고 보다 적극적으로 스윙하라. 삼진을 당해도 좋다”면서 이승엽의 거포 본능을 일깨웠다. 그 뒤 이승엽은 대한민국 부동의 4번 타자로 태어났다. 나는 그 장면을 현장에서 지켜봤던 행운아였다.

 

토미 존 역시 메이저리그의 역사다. 그는 1963년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뒤 100승 고지를 밟은 에이스급 선수였다. 1974년 팔꿈치 부상으로 그라운드를 떠날 위기에 처했을 때 팔꿈치 인대접합수술 후 믿기지 않는 의지로 그라운드를 누비면서 빅리그 통산 760경기, 288승231패의 기록을 남겼다. 팔꿈치 수술은 이제 ‘토미 존 수술’이라고 이름이 붙었을 정도로 야구선수들에게 흔한 수술이 됐다. 류현진(한화)도 이 수술의 혜택을 받아 지금까지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존은 시카고를 거쳐 다저스, 양키스 등을 포함해 총 6개 구단에서 활약했다. 그는 “모두에게 작별 인사를 할 기회를 준 양키스 구단과 26년간 선수 생활을 함께해 준 친구와 팬에게 감사드린다”며 “내가 계속 공을 던질 수 있게 해준 프랭크 조브 박사에게도 감사하다”는 마지막 편지를 남겼다.

 

성백유 대한장애인수영연맹 회장·전 언론중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