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23년 차에도 꾸준히 사랑을 받는 가수가 있다. 3살 때 입양돼 9남매의 막내로 자라며, 지독한 가난과 학창 시절의 시련 속에서도 음악이라는 꿈을 품었던 가수 겸 제작자 김재중이다. 방송과 연기, 기획사 운영까지 전방위로 활약 중인 그가 20일 새 싱글 앨범 ‘더 웨이브(The Wave)’의 타이틀곡 ‘투나잇(Tonight)’으로 1년 3개월 만에 컴백했다. 굴곡진 삶을 딛고 효도와 열정으로 롱런을 일궈낸 김재중의 발자취가 재조명되고 있다.
◆ 8명 누나들의 헌신과 사랑으로 자란 어린 시절
KBS 2TV ‘신상출시 편스토랑(편스토랑)’에 따르면 어릴 적 몸이 유독 약했던 김재중은 3살 때 충남 공주의 한 가정으로 입양됐다. 누나만 8명이 있는 다복한 집안이었으며, 첫째 누나와는 스무 살 차이가 났다. 여덟 번째 누나와는 나이 차이가 1년이 채 나지 않아 같은 학년으로 학교를 다녔는데, 누나는 동생의 입양 사실이 알려질까 학창 시절 내내 자신의 진짜 생일을 숨기며 배려하기도 했다.
‘재중(在中)’이라는 이름은 ‘어디에 있든지 가운데에 우뚝 서라’는 뜻으로 양아버지가 지어줬다. 양어머니는 김재중을 처음 만나 안은 순간, 자신을 “엄마”라 부르며 목을 끌어안던 어린아이를 보고 ‘내가 지금부터 너를 내 아들로 키워야겠다’고 결심했다.
어릴 적 김재중은 고개를 푹 숙이고 울음이 많던 아이였다. 급하게 밥을 먹다 토하기 일쑤였고, 이틀에 한 번씩 코피를 흘리기도 했다. 몽유병을 앓아 아파트 10층 난간에 매달리거나 피부병을 앓던 그를 위해 누나들은 고름을 닦아주며 엄마처럼 보살폈다.
가족들의 보살핌과 사랑으로 점차 몸과 마음을 회복한 김재중은 밝은 모습으로 지낼 수 있게 됐다. 더불어 가족들은 김재중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모르도록 배려해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 김재중은 이를 전혀 모른 채 자라다 데뷔 후 뮤직비디오 촬영 중 친모의 연락을 받고 뒤늦게 알게 됐다.
그는 ‘편스토랑’에서 37년 만에 누나들과 입양 당시의 얘기를 나눴다. 김재중은 “(입양됐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현재가 더 중요하고 지금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굉장히 소중하다”고 말해 감동을 안겼다. 입양 사실을 알린 후에는 입양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며 따뜻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 빚더미와 시련 속에서 피워낸 가수의 꿈
그의 성장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운수업으로 유복했던 아버지가 지인들의 사업 제안에 큰돈을 투자했다가 1980년대 당시 1억원이라는 막대한 빚더미에 앉았다. 큰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신병(신내림을 받기 전에 앓는 병)까지 걸려 결국 한동안 절에서 생활했다.
홀로 9남매를 키우게 된 어머니는 인삼, 과자, 귤 등 온갖 행상을 하며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우연히 시누이에게 물려받은 족발집이 입소문을 타며 1년 만에 빚을 청산했지만, 어머니가 숙식하며 일하느라 11살의 김재중은 스스로 끼니를 챙겨야 했다. 학창시절에는 하얗다는 이유로 폭력과 시비를 당해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피하게 됐다.
그때 그를 새로운 길로 인도한 것은 노래였다. 누나들이 듣던 ‘서태지와 아이들’ 등의 음악을 접하며 당시 상황에서 벗어나 더 큰 세상으로 나가겠다는 꿈을 품었다. 16살 때 ARS 오디션에 합격하자 다섯째 누나가 서울행 버스비를 쥐여주고, 넷째 누나가 고시원 방세를 몇 달 간 지원했다. 방세 11만원을 내지 못해 갈 곳이 없었을 때는 시어머니와 함께 살던 첫째 누나가 집에서 묵게 해줬다. 누나들에게 짐이 되기 싫었던 열일곱 살 소년은 신문 배달, 식당 아르바이트, 껌팔이 등을 하며 버텼고, 마침내 2003년 그룹 동방신기로 데뷔하며 가요계의 문을 열었다.
◆ 20년 롱런 레전드…‘국민 효자’이자 어엿한 제작자로
데뷔 후 동방신기는 2000년대 가요계 최초로 정규 앨범 4연속 30만장 돌파, 한국음반산업협회 연간 판매량 1위를 연이어 기록하며 K팝 역사를 썼다. 그룹 활동 변화 속에서도 솔로 아티스트로서 일본 오리콘 및 빌보드 재팬 등 현지 주요 차트 상위권에 꾸준히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에는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디시트렌드의 K팝 남자 가수 부문에서 최초로 일간 30관왕을 돌파하며 20년이 지나도 건재한 팬덤 파워를 입증했다.
가수로 성공한 뒤 그는 사업가로서도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2023년 종합 엔터테인먼트사 ‘인코드(iNKODE)’를 설립해 CSO(최고전략책임자)를 맡았으며, 신인 걸그룹 ‘세이마이네임’을 제작했다. 서울 마포구 사옥과 일본 도쿄 시부야 소재 빌딩 등 국내외 자산과 네트워크를 발판 삼아 글로벌 경영인으로서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같은 화려한 성공 속에서도 그의 마음에는 늘 가족이 자리잡고 있었다. 김재중은 ‘편스토랑’에서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부모님께 크고 좋은 집을 해드리고 싶었다”는 오랜 소망을 밝힌 바 있다. 실제로 그는 부모님의 편의를 고려해 가정용 엘리베이터와 맞춤형 주방을 갖춘 60억원대 단독주택을 직접 설계해 선물했다. 2024년 유튜브 채널 ‘동네친구 강나미’에서는 “누나가 8명이 있어서 부모님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한다”며 “뵐 때마다 500만원씩 용돈을 드린다”고 깊은 효심을 전하기도 했다.
가족의 헌신과 혹독한 시련을 자양분 삼아 성장한 김재중은 이제 후배를 양성하는 리더이자 롱런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20일 신곡 ‘투나잇’으로 1년3개월 만에 가요계로 돌아온 그는 오는 29~30일 단독 콘서트를 열고 팬들과 마주하며 또 한 번의 뜨거운 도전을 이어갈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