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라리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이하 AT마드리드)는 2026 북중미 월드컵을 통해 한국 축구의 에이스 바통을 손흥민(로스앤젤레스FC)으로부터 이어받은 이강인(25)을 기본 이적료 3500만유로에 옵선 500만유로 등 총 4000만유로(약 655억원)의 거액을 들여 영입했다.
오랜 기간 팀 공격의 에이스 역할을 해온 앙투안 그리에즈만(올랜도 시티)이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무대로 떠난 공백을 메우기 위함이었다. 그리에즈만이 달던 등번호 7번을 이강인이 물려받은 것만 봐도 AT마드리드가 이강인을 그리에즈만의 대체자로 생각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에즈만과 플레이 스타일이 완벽히 겹치진 않지만, 이강인은 뛰어난 탈압박을 앞세워 공을 지켜내는 능력에 넓은 시야, 드리블, 패싱력, 강력한 왼발을 앞세운 슈팅까지 어느 위치에 세워도 팀 공격에 기여할 수 있는 기량을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그리에즈만의 이적으로 팀 내 공격진에서 창의성 있는 선수가 부족해진 상황에서 이강인은 번뜩이는 재치로 한순간에 경기 분위기를 바꿔줄 수 있을 것이란 평가였다.
AT마드리드가 655억원을 들인 보람을 느끼기까지 딱 한 경기면 족했다. 이강인이 20일 스페인 마드리드의 리야드에어 메트로폴리타노에서 열린 말라가와 2026~2027시즌 라리가 홈 개막전에서 후반 25분 이적 데뷔골을 폭발시켰다. 선제 결승골을 터뜨린 이강인의 활약으로 AT마드리는 2-0으로 승리했고 경기 최우수선수(MVP)는 단연 이강인의 차지였다. 더 임팩트 있는 데뷔전이 가능할까 정도의 화려한 이적 신고식이자 라리가 복귀전이었다.
지난 세 시즌 동안 프랑스 리그1 파리 생제르맹(프랑스)에서 뛰다 스페인 무대로 돌아온 이강인은 마요르카 시절인 2023년 5월 빌바오전 이후 3년 3개월 만에 라리가에서 득점을 올렸다.
이날 디에고 시메오네 AT마드리드 감독은 팀의 주력 포메이션인 4-4-2 전술을 들고 나왔다.
AT마드리드에 늦게 합류해 아직 2주가 되지 않은 이강인은 그라운드가 아닌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대신 투톱 자리엔 아르나우 오르티스와 아데몰라 루크먼을 기용했다. 측면 공격수로는 로드리 멘도사, 카를로스 마르틴이 나섰다.
아틀레티코는 후반 초반까지 고전했다. 최전방에 공격수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시메오네 감독은 후반 12분에 루크먼만 그라운드에 남기고 이강인과 알렉스 바에나, 줄리아노 시메오네를 동시에 투입해 공격진의 면면을 바꿨다.
이강인은 투입 직후인 후반 14분, 30여m 거리에서 과감한 왼발 중거리슛을 날리며 쾌조의 컨디션을 자랑했다. 후반 20분에는 페널티아크에서 왼발 감아차기 슈팅으로 또 한 번 골문을 겨냥했다.
예열을 마친 이강인의 ‘황금 왼발’은 후반 25분, 경기 양상을 180도 뒤집어놓았다. 오른쪽 측면에서 한츠코의 방향 전환 패스를 받은 왼발로 접고 들어가며 상대 수비 3명을 제쳤다.
페널티 아크 오른쪽에서 슈팅 공간이 열리자 이강인은 주저 없이 벼락같은 왼발 슈팅을 때렸고, 이강인의 왼발에서 떠난 공은 말라가 왼쪽 골대 가장자리에 꽂혔다. 그라운드를 밟은 지 13분 만에 경기를 지배한 이강인의 ‘판타지스타’다운 면모가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AT마드리드는 후반 40분 바에나가 수비벽을 절묘하게 넘기는 프리킥으로 추가 골을 뽑으며 2-0 완승에 마침표를 찍었다.
경기 뒤 이강인은 “월드컵을 마치고 돌아온 선수들이 많아 훈련이 조금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승리할 수 있어서 매우 기쁘다. 계속해서 열심히 노력해 최고의 컨디션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어 “팀 전체가 훌륭한 역할을 해줬다. 교체 투입된 세 명 모두 팀을 돕기 위해 나갔고, 전반전에 먼저 뛰어준 선수들의 노고 덕분에 승리할 수 있었다”고 동료들에게 승리의 공을 돌렸다. 또한 “아직 경기 감각을 더 올려야 하지만, 계속 노력하다 보면 개인으로나 팀으로 모두 더 좋아질 것이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시메오네 감독은 이강인에 대해 “그는 경기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뛰는 선수다. 자신의 팀에 헌신하는 선수”라면서 “그런 모습을 대표팀에서도, 그가 이전에 뛰었던 팀들에서도 봐왔다”고 치켜세웠다.이어 “이강인과 바에나의 골 중 하나를 고르는 건 불공평하다. 둘 다 정말 멋진 골이자 우리에게 필요했던 골들이었다”고 덧붙였다.
스페인 매체들도 이강인에게 찬사를 쏟아냈다. 마르카는 “이강인이라는 새로운 영웅을 발견했다”고 극찬했다. 아스는 1면에 이강인을 대서특필하며 “말라가가 좋은 수비를 펼쳤지만, 7번 유니폼을 입은 이강인이 마치 그리에즈만처럼 멋진 골을 터뜨렸다”고 전했다. 엘 파이스는 “이강인의 득점은 팽팽했던 막판의 불안감을 단숨에 잠재웠다. 그의 어깨에는 모든 이들이 ‘그리에즈만을 잊게 만들어야 할’ 막중한 책임이 주어졌다”고 적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