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만남 가능성을 직접 거론하면서 북·미 대화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다만 북·미 정상 간 직접 소통이 먼저 이뤄질 경우 협상 초기 국면에서 한국이 논의 과정에서 다소 배제되는 ‘코리아 패싱’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북한이 한국과의 대화에는 선을 긋고 미국과의 관계에는 여지를 남기는 상황에서 당분간 북·미 간 직접 소통이 남북 대화보다 앞서갈 가능성이 거론된다.
북한은 지난 19일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의 담화에서도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건조 추진과 한·미 연합훈련을 비난했다.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재정립한 직후 한국에는 대화의 조건 자체를 제시하지 않는 강경한 태도가 이어지는 모양새다. 이 같은 태도는 북·미 대화 국면이 열려도 북한이 한국을 협상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키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겨냥해 한·미 연합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습을 대폭 축소하는 등 대화 재개를 위한 여건 조성에 골몰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입장이 제대로 고려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부는 북·미 대화가 진행되면 한국이 한반도 평화 문제의 당사자로서 협상 과정에 참여한다는 입장이지만, 불확실성이 큰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과 최종 결정이 최고지도자에게 집중된 북한의 권력 구조 등을 감안하면 한국이 북·미 대화 과정에서 소외될 수 있다.
반면 한국의 역할이 자연스레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평화체제 구축 등 한국이 직접 참여해야 하는 현안이 있다는 것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북·미 대화 초기에는 한국이 조금 배제돼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대화가 진척되면 한국이 자연스럽게 개입하게 된다”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해 북·미 대화가 재개될 경우를 고려해 한국의 입장을 트럼프 행정부에 전달하고 소통할 수 있는 방안을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는 당장 한국의 참여 여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북·미 간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을 우선 지원하고, 이후 논의를 남북·미·중으로 확대하는 데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취재진과 만나 “북핵 중단을 위한 첫 관문은 북·미가 만나는 것이며 우리는 (북·미 대화 재개를) 열심히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장관은 “지금은 북·미의 시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시간”이라며 “북·미의 시간이 잘 궤도에 올라타서 남북·미·중의 시간으로 확장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재명 대통령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북 대화 의지를 평가하며 북·미 대화를 뒷받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전날 엑스(X)에 올린 글에서 “이미 수차 밝힌 것처럼 저는 트럼프 대통령님의 피스메이커 활동을 촉진하고 기여하는 페이스메이커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결단에 경의”, “피스메이커”, “존경한다” 등의 표현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치켜세우며 한·미 동맹 현안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협력 의지를 나타냈다.
호르무즈해협에서의 자유 통항과 관련해선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적극 동참할 것을 밝힌 바 있다”며 “우리 정부는 이를 위해 대한민국 법령과 기본정책상 감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여러 실질적 기여 방안에 대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미 측과 계속 긴밀하게 소통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이 이란 비핵화 노력 동참 요구를 거절했다는 취지로 언급한 데 대한 설명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머지않아 미국에서의 존경하는 트럼프 대통령님과의 재회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통일부도 이날 김 부장의 발표에 대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할 것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끝내고 서로 싸울 필요가 없는 평화체제를 만드는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통일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연합연습 축소는 한반도에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대화를 시작하려는 결단”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통 큰 결단이 금년 내 북·미 정상 간 대화 재개와 한반도의 안정적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평화의 역사로 이어질 수 있도록, 북측도 이 기회에 동참하기를 기대한다”고 촉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