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남정훈 기자] 48일 만에 이뤄낸 연승을 ‘3’으로 늘리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LG가 선발 투수 매치업 열세를 백투백 홈런으로 극복하는 듯 했으나 불펜진의 제구 난조와 벤치의 아쉬운 투수교체가 맞물리며 KT와의 주중 3연전 스윕 기회를 날려버렸다.
LG는 20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6 KBO리그 KT와의 홈 경기에서 3-7로 역전패했다. 주중 3연전 첫 두 경기를 9-1, 1-0으로 잡아내며 48일 만이자 후반기 첫 연승을 거두며 선두권 추격의 발판을 마련하는 듯 했지만, 이날 패배로 기세가 다소 누그러졌다. LG로선 지난달 16~19일 잠실에서 열린 후반기 첫 4연전에서 KT 당한 4전 4패를 설욕하기 위해선 스윕이 절실했지만, 이날 패배로 위닝 시리즈에 만족해야 했다. 다만 이날 KIA가 한화를 10-6으로 꺾고 주중 3연전을 스윕하는 등 5연승을 달려 59승2무48패, 승률 0.551이 되고, LG가 60승1무49패, 승률 0.550이 됐다. 승차는 없지만, 승률에서 뒤져 KIA가 3위로 한 계단 올라서고 LG는 4위로 내려 앉았다.
이날 경기는 당초 KT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이날 KT 선발이 현역 최고의 사이드암 선발 고영표였기 때문. 올 시즌 고영표는 이날 경기 전까지 20경기 9승6패 평균자책점 3.70. LG를 상대로는 2경기 2승 1.38로 더욱 강했다. 반면 LG의 선발은 2년차 우완으로 최근에 선발 등판의 기회를 받고 있는 박시원. 누가 봐도 선발 투수 라인업에선 KT의 우위였다.
기선을 제압한 것도 KT였다. 1회 선두타자 최원준의 볼넷과 안현민의 몸에 맞는 공으로 만든 1사 1,2루 기회에서 힐리어드의 중전 적시타로 선취점을 뽑았다.
고영표에게 막혀 경기 초반 끌려가던 LG는 4회 대포 두 방으로 단숨에 경기를 뒤집었다. 1사 후 송찬의가 좌전 안타로 출루했고, 이날 6번 타자 3루수로 선발 출장한 문보경이 2B-2S에서 고영표의 5구째 120.2km짜리 커브가 몸쪽 높은 코스에 들어온 것을 잡아당겨 잠실 우측 담장을 넘겼다. 올 시즌 시작 전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대표팀의 주포 역할을 하며 주가를 끌어올렸으나 막상 KBO리그 개막 후엔 부상과 부진으로 팀 내 간판 타자로 올라선 이후 최악의 시즌을 보내던 문보경에겐 단비 같은 홈런이었다. 지난달 29일 시즌 8호 홈런을 때려낸 이후 최악의 타격감을 보이던 문보경은 약 3주 만에 시즌 9호포를 신고했다.
문보경의 깜짝 투런포로 2-1 역전을 일궈낸 LG가 리드 폭을 넓히는 데는 딱 한 타석이 더 필요했다. 문보경에 이어 타석에 들어선 오지환은 0B-2S 불리한 볼 카운트 상황에서 고영표의 122.5km짜리 체인지업이 가운데 낮은 코스에 들어온 것을 걷어 올렸다. 발사각이 42.2도나 됐던 이 타구는 큰 호를 그리더니 잠실 우측 폴대 옆 담장을 살짝 넘겼다.
박시원이 4회 무사 1,2루에 몰리자 염경엽 감독은 박시원을 곧바로 내리며 불펜 모드에 돌입했다. 박시원을 구원한 좌완 이우찬이 연속 삼진과 땅볼로 불을 껐고, 5회엔 김진수가 김현수-안현민-힐리어드로 이어지는 KT 중심타선을 3연속 뜬공으로 처리했다.
6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김진수 선두타자 오윤석에게 안타를 내주자 염경엽 감독은 전날 KBO리그 데뷔전을 치른 대체 아시아쿼터 좌완 불펜 요원 존 케네디를 올렸다. 전날 8회 1사 1루에 마운드에 올라 공 4개로 병살타를 유도하며 KBO리그 데뷔 첫 홀드를 올린 케네디는 이날도 마운드에 오르자마자 위력투를 선보였다. 신장 2m3의 장신이지만 사이드암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낮은 팔각도로 공을 던지는 케네디는 디셉션(숨김 동작)과 장신을 앞세운 리치로 다소 평범한 구위를 상쇄시키는 유형의 투수다. 김진수를 구원해 올라온 케네디는 류현인을 삼진으로 솎아낸 뒤 땅볼 2개로 이닝을 끝마치며 염경엽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그러나 문제는 7회였다. LG 벤치는 6회에 투구수 9개만 기록한 케네디에게 7회도 맡겼다. 선두타자 김상수를 3루 땅볼로 처리한 케네디는 이후 갑작스런 제구 난조에 시달렸다. 좌타 듀오 최원준, 김현수에게 연속 볼넷을 내준 케네디는 우타자 안현민에게도 볼넷을 내주며 기어코 1사 만루 기회를 거저로 헌납했다.
결국 LG 벤치는 참지 못하고 케네디를 내리고 이날 경기 전까지 19홀드로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는 사이드암 우강훈을 투입했다. 타석엔 좌타자 힐리어드이기에 사이드암 우강훈을 올리는 게 다소 의아한 선택이었지만, 김진성이 2군으로 내려간 LG의 헐거운 불펜에서 우강훈 만큼 믿을 만한 투수도 없었다. 그러나 우강훈은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밀어내기를 허용했다. 3-2.
KT 이강철 감독은 오윤석 대신 좌타자 김민혁을 대타로 기용했다. 사이드암 우강훈을 철저히 공략하겠다는 의도였고, 이강철 감독의 작전은 적중했다. 김민혁은 좌중간을 가르는 타구를 날렸고, 좌익수 송찬의의 글러브에 스친 공은 그라운드에 떨어졌다. 그 사이 주자 세 명이 모두 홈을 밟으며 KT가 5-3 역전에 성공했다.
불 붙은 KT 타선은 멈추지 않았다. 류현인의 적시 2루타와 이정범의 희생플라이로 7-3을 만든 KT는 8회에도 힐리어드의 적시타와 류현인의 희생플라이, 이정범의 적시타로 끝내 두 자릿수 득점을 완성했다. 이어진 2사 2,3루에서 김상수의 빗맞은 타구가 신민재의 글러브에 들어갔다가 땅에 떨어지는 행운에 최원준, 김현수의 연속 적시타도 터져나오며 14-3, 10점차 이상으로 리드 폭을 크게 늘리며 승부에 완벽하게 쐐기를 박았다.
전의를 상실한 LG 마운드는 9회에도 처참하게 무너졌다. KT는 장진혁의 적시타와 이정범의 땅볼로 두 점을 추가하며 7∼9회에만 15점을 내는 집중력으로 완승을 거뒀다. 고영표는 6이닝 6피안타 1볼넷 6탈삼진 3실점으로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며 시즌 10승(6패)째를 신고했다. 이날 경기 전까지 96타점으로 LG 오스틴(99타점)에 이어 타점 부문 2위에 올라있던 힐리어드는 이날 3타수 2안타 3타점으로 오스틴과 타점 부문 공동 선두로 올라섰다. 오스틴은 3타수 1안타를 기록했지만, 타점은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