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고 커피 마셨는데 5만원이네?”
친구와 저녁을 먹고 카페에 들르면 3만~5만원이 금세 빠져나간다. 술 한잔까지 곁들이면 지출은 5만원을 훌쩍 넘는다. 요즘 청년들에게 이 5만원은 단순한 모임 비용이 아니다. 친구를 만날지, 약속을 다음으로 미룰지를 가르는 기준선에 가깝다.
구인·구직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천국이 최근 Z세대 6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3.0%는 물가 상승으로 친구와의 만남이나 모임 비용이 부담스러웠던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한 번에 3만~5만원…5만원부터 망설였다
‘자주 있다’는 응답이 49.1%, ‘가끔 있다’는 답변이 43.9%였다. 대다수가 친구를 만날 때 비용 부담을 경험한 셈이다.
한 번 만날 때 쓰는 금액은 ‘3만원 이상 5만원 미만’이 39.4%로 가장 많았다. 이어 5만원 이상 7만원 미만 22.1%, 1만원 이상 3만원 미만 22.0% 순이었다.
부담을 느끼기 시작하는 금액으로는 ‘5만원 이상’이 33.4%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평소 가장 많이 쓰는 금액대의 바로 윗선에서 지갑을 닫기 시작하는 것이다.
가장 부담스러운 항목은 식사비였다. 식사비를 꼽은 응답자가 78.4%로 가장 많았다. 커피·디저트비 40.1%, 주류비 29.7%, 생일·기념일비 25.8%가 뒤를 이었다. 비싼 여행이나 공연보다 밥값과 커피값처럼 만날 때마다 반복되는 지출이 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메뉴보다 약속을 줄였다
비용 부담은 실제 만남 감소로 이어졌다. Z세대 응답자의 71.2%는 최근 1년 동안 친구와의 만남이나 모임에 쓰는 돈을 줄였다고 답했다.
이들이 가장 많이 택한 방법은 저렴한 메뉴를 고르는 것이 아니었다. 지출을 줄였다고 답한 사람 가운데 83.9%가 만남이나 모임 횟수 자체를 줄였다.
외식비를 줄였다는 응답은 27.3%, 음주비 축소는 18.9%였다. 공연·전시 등 문화생활비를 줄였다는 응답은 13.1%, 생일·기념일 비용을 줄였다는 답변은 12.4%였다. 지출 항목을 하나씩 조정하기보다 약속을 덜 잡는 방식을 택한 이들이 많았다.
누구와의 만남부터 줄였는지를 묻자 88.8%가 동창이나 동기 등 친구와의 만남을 꼽았다. 썸이나 연인을 포함한 이성 친구와의 만남을 줄였다는 응답도 19.2%였다.
친구 만남 빈도는 ‘월 1회 미만’이 20.8%로 가장 많았다. 월 2회 18.0%, 월 1회 13.8%, 주 1회 13.3%, 월 3회 12.0% 순이었다. 주 1회 미만으로 만난다고 답한 비율을 모두 더하면 64.6%에 달해, Z세대 10명 중 6명 이상은 친구를 일주일에 한 번도 만나지 않는 셈이다.
이 같은 현상은 Z세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같은 조사에서 M세대 544명 가운데 90.8%도 친구를 만날 때 비용 부담을 느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소득 줄었는데 월세는 두 자릿수 상승
청년들이 친구와의 약속부터 줄이는 배경에는 빠듯해진 가계 사정이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지난 6월 7일 발표한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 39세 이하 가구주의 월평균 명목소득은 539만5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 감소했다.
같은 기간 40대 가구주의 소득은 7.7% 늘었다. 50대와 60세 이상도 각각 0.3%, 5.4% 증가했다. 연령대별로 보면 39세 이하 가구주의 소득만 뒷걸음질했다.
반대로 월세 등 주거비 부담은 커졌다. 39세 이하 가구주의 월평균 실제주거비는 21만2400원으로 1년 전보다 11.6% 증가했다. 실제주거비는 전세보증금을 제외하고 가구가 월세 등으로 실제 지출한 금액이다.
39세 이하 가구주의 실제주거비 증가율은 지난해 3분기 11.9%, 4분기 12.8%, 올해 1분기 11.6%를 기록했다. 세 분기 연속 두 자릿수 상승세다.
소득은 줄었지만 매달 고정적으로 빠져나가는 주거비는 늘었다. 외식이나 모임처럼 당장 조정할 수 있는 지출부터 줄이는 청년들이 많아진 배경이다.
◆외식 대신 공원·집…‘무지출 만남’ 확산
비슷한 변화는 미국에서도 나타난 바 있다. 미국 온라인은행 앨리뱅크가 지난해 7월 발표한 ‘The Friendship Tab’ 조사(Z세대·밀레니얼 세대 1000명 대상)에 따르면 응답자의 44%는 비용 때문에 주요 사교 행사에 참석하지 않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59%는 친구와 어울리는 데 쓰는 돈이 저축이나 부채 상환 등 자신의 재무 목표에 영향을 준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친구 관계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응답자의 23%는 돈을 쓰지 않고 친구와 시간을 보내는 ‘노 스펜드 행(No Spend Hang)’을 실천하고 있다고 답했다. 식당이나 술집 대신 집에서 영화를 보거나, 공원을 함께 걷거나, 각자 음식을 준비해 만나는 방식이다.
친구와 한 번 만날 때 가장 흔한 지출액은 3만~5만원이지만, 5만원은 이미 부담을 느끼기 시작하는 금액이다. 밥 한 끼와 커피 한 잔에도 계산기를 두드려야 하는 상황에서, 청년들은 친구를 만나는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