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사람을 하나로 묶기도 하지만 때로는 가장 높은 벽을 만들기도 한다. 같은 신을 믿으면서도 교파가 다르다는 이유로 갈라지고, 교리가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배척한다. 하물며 서로 다른 종교가 만나 마음을 열고 대화하기란 더욱 어렵다. 그래서 종교 간 화합은 말하기는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렵다. 한국 현대 종교사에서 이 벽을 허물기 위해 오랜 세월 현장을 뛰어다닌 사람이 있다. 이재석 전 한국종교협의회 회장이다.
1933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난 그는 중앙대 법학과에 진학해 법관을 꿈꾸며 고등고시를 준비하던 청년이었다. 1956년 대학 3학년 때 우연한 계기로 통일교를 접하면서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 이듬해에는 천안 개척전도에 나섰다. 그의 초기 신앙생활은 뜨거웠다. 1957년 여름 1주일 금식을 마친 뒤 천안으로 내려가 10개월 동안 골목골목을 돌며 전도했다. 당시 기성교회와 통일교의 관계는 적대적이었다. 장로교회를 찾아가 목사와 교리를 놓고 토론하다 “이단이 들어왔다”는 호통과 함께 교회 밖으로 쫓겨난 일도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그 경험을 했던 사람이 훗날 기성교회와 통일교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에 자신의 삶을 걸었다는 사실이다. 전환점은 1966년이었다. 서울 제3교회를 담임하던 이재석은 개신교 목사들과 함께 연합부흥회를 열기 시작했다. 그해 11월에는 기성교회 목사 5명과 함께 ‘기독교초교파운동본부’를 창립했다. 첫 사업으로 마련한 서울 시내 교역자 간담회에는 예상을 뒤엎고 27개 교파, 180명의 목사가 참석했다. 교파를 초월해 만나보자는 시도에 적지 않은 목회자들이 호응한 것이다. 이러한 행보는 개인적인 열정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이는 인류의 평화와 화합을 지향하는 통일교의 초교파·초종교 정신과도 맞닿아 있었다.
그러나 벽은 높았다. 초교파운동본부가 통일교와 관련된 단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개신교계의 반발이 거세졌다. 예정된 연합부흥회가 무산되고, 함께 일하던 목회자들이 자리를 떠나는 일도 이어졌다. 당시 이재석이 남긴 한마디는 지금 읽어도 의미심장하다. 한국 교계가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누가 하느냐’에 관심이 더 큰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의 가치보다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소속을 먼저 따지는 현실을 절감한 것이다. 일이 풀리지 않을 때면 남몰래 눈물을 흘릴 만큼 힘겨웠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그 벽을 넘기 위해 당시 한국 개신교계를 대표하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강원용 목사에게 직접 대화를 청했다. 이재석은 “통일교회는 이미 외면할 수 없는 현실적인 존재”라며, 무시하거나 반대하기보다 “상호 이해하고 협력하는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호소하고 싶었다. 그러나 워낙 바쁜 강 목사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다음 날 부산에 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재석은 아예 부산행 비행기표를 샀다. 김포공항에서 강원용을 만난 그는 “비행기 안에서라도 말씀을 드리려고 나왔다”며 같은 비행기에 올랐다.
그 집념은 마침내 결실로 이어졌다. 1968년 9월 서울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서 기성교회 지도자 30명과 문선명을 비롯한 통일교 관계자 10명이 마주 앉았다. 홍현설 감리교신학대 학장이 기도하고 강원용이 개회사를 했으며, 문선명이 인사하고 유효원 협회장이 통일원리를 강의한 뒤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비록 이 만남이 지속적인 대화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통일교를 배척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직접 만나 서로의 이야기를 들었다는 사실 자체는 주목할 만하다.
이재석의 발걸음은 교파 간 대화를 넘어 범종교적 화합으로 확장됐다. 가톨릭 박양운 신부, 성공회 조광원 신부 등이 참여한 한국종교문제연구원을 통해 교류를 넓혔고, 1970년에는 통일교가 여덟 번째 종단으로 한국종교인협회(현 한국종교협의회)에 가입하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기존의 7대 종단(가톨릭·성공회·불교·유교·천도교·원불교·대종교)과 함께 대화와 협력의 장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가 1988년 종협 회장을 맡아 종교 간 화해를 이끈 것은 이러한 신앙적 실천의 결실이었다.
당시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과 평가는 종교적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그의 삶에서 분명하게 읽히는 것은 끝까지 대화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종교화합은 서로의 교리가 같아지는 일이 아니다.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이웃으로 만나 공동선을 위해 손을 잡는 일이다. 오늘 우리 사회 역시 종교와 정치, 이념과 세대를 둘러싼 갈등의 벽이 높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대화하기보다 상대가 어느 편인가를 먼저 따지는 풍토도 강하다.
반세기 전 이재석이 발견한 한국 교계의 모습, ‘무엇을 하느냐’보다 ‘누가 하느냐’를 먼저 따지는 풍토가 과연 사라졌는지 돌아볼 일이다. 통일교라는 소수종교의 신앙인이었던 이재석의 삶을 다시 들여다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가 걸었던 초교파·초종교의 길은 한 개인의 집념인 동시에, 신앙적 이상을 종교 간 대화와 협력으로 구체화한 여정이기도 했다. 한 종교의 사회적 가치는 무엇으로 평가될까. 사회의 벽을 낮추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며 살아온 이재석에게 그 질문의 답은 ‘대화’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