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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신저와 반백년 해로한 부인 낸시, 92세 일기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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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당시 국무장관이던 키신저와 결혼
“평생 키신저에게 가장 믿을 만한 조언자”
‘남편 모욕한 여성 몸으로 제지’ 에피소드

헨리 키신저(1923∼2023) 전 미국 국무부 장관과 50년 가까이 해로한 부인 낸시 키신저가 9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21일(현지시간) AP 통신에 따르면 낸시는 코네티컷주(州) 켄트에 있는 자택에서 전날(20일) 숨을 거뒀다. 사망 원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고인은 미 수도 워싱턴 인근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혀 있는 남편 옆에 안장될 예정이다.

헨리 키신저(1923∼2023) 전 미국 국무부 장관과 부인 낸시 키신저(1934∼2026). 방송 화면 캡처
헨리 키신저(1923∼2023) 전 미국 국무부 장관과 부인 낸시 키신저(1934∼2026). 방송 화면 캡처

낸시는 1934년 뉴욕 맨해튼에서 활동하던 부유한 변호사의 딸로 태어났다. 키신저와 결혼하기 전 성(姓)은 ‘매기네스’였다. 키가 여성으로서는 상당히 큰 183㎝나 되는 그는 어디를 가든 눈에 확 띄는 외모의 소유자였다.

 

1950년대에 대학을 졸업한 낸시는 자선 사업으로 유명한 록펠러 가문의 정치인 넬슨 록펠러(1908∼1979) 밑에서 보좌관으로 오래 일했다. 록펠러는 공화당 소속으로 1958∼1973년 뉴욕 주지사를 지내고, 1974∼1977년 당시 제럴드 포드 대통령 밑에서 부통령을 역임한 정계 거물이다.

 

낸시는 록펠러 가문 사람들이 자선 사업을 위해 만든 ‘록펠러 브라더스 기금’에 근무하며 뉴욕 자선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키신저와 처음 대면한 것은 1960년대 중반이다. 1974년 두 사람이 부부가 됐을 때 키신저는 51세, 낸시는 40세로 열 살 넘게 차이가 났다. 명문 하버드대 출신 국제정치학자인 키신저는 당시 리처드 닉슨 행정부의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거쳐 국무장관으로 재직 중이었다.

2019년 9월 백악관에서 당시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의 미국 방문을 환영하는 만찬이 열린 가운데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부 장관(왼쪽)이 부인 낸시 키신저와 함께 만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때 키신저는 96세, 낸시는 85세였다. AP연합뉴스
2019년 9월 백악관에서 당시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의 미국 방문을 환영하는 만찬이 열린 가운데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부 장관(왼쪽)이 부인 낸시 키신저와 함께 만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때 키신저는 96세, 낸시는 85세였다. AP연합뉴스

닉슨 대통령이 부당한 권력 남용을 저지른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하고 부통령이던 포드가 대통령에 오른 뒤에도 키신저는 국무장관 직무를 계속 수행했다. 그는 1976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포드가 민주당 후보 지미 카터에게 패하고 이듬해인 1977년 카터 행정부가 출범하기 전에야 공직에서 물러났다. 그 뒤 키신저 부부는 워싱턴을 떠나 뉴욕 맨해튼과 코네티컷 켄트 두 곳의 집을 오가며 살았다.

 

키신저 부부의 지인들은 “낸시는 키신저에게 가장 소중하고 또 믿을 만한 조언자였다”며 “키신저가 낸시를 얼마나 존중하고 사랑했는지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고 술회했다. 일례로 1982년 미국의 어느 공항에서 키신저에게 자꾸만 모욕적인 질문을 던지는 여성을 곁에 있던 낸시가 몸으로 제지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급진 좌파 단체의 행동가로 알려진 해당 여성은 낸시를 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법정에서 낸시는 “남편이 속상해하지 않도록 보호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진술했다. 판사는 “불쾌한 질문에 대한 자발적이고 다소 인간적인 반응으로 평가된다”며 낸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023년 11월 100세를 일기로 별세한 키신저를 추모하는 공식 행사가 낸시 등 유족의 주도로 2024년 1월 열렸다. 당시 유족의 초청을 받은 정몽준 아산정책연구원 명예이사장이 행사에 참석해 키신저의 타계를 애도하고,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낸시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