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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전 김수환 추기경의 반성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천주교 하면 서울대교구, 부산교구, 군종교구 등 ‘교구’(敎區)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는 가톨릭 교회를 지역적으로 구분하는 단위로 보통 주교(主敎)가 교구장을 맡아 관리한다. 그런데 대목구(代牧區)라는 용어도 있다. 정식 교구가 아니고 바티칸 교황청이 직접 관할하는 일종의 준(準)교구를 뜻한다. 1831년 당시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은 한반도에 중국 청나라와 분리된 ‘조선대목구’(오늘날 천주교 서울대교구 전신)를 설치했다. 제국주의 일본의 조선 국권 강탈 이듬해인 1911년 ‘경성대목구’로 이름이 바뀌었다. 현재의 서울대교구란 명칭은 광복 후 10여년이 흐른 1962년에야 생겨났다.

김수환(1922∼2009) 추기경. 세계일보 자료사진
김수환(1922∼2009) 추기경. 세계일보 자료사진

프랑스 신부 뮈텔 주교는 1890년부터 1911년까지 조선대목구장, 1911년부터 1933년 선종(善終)할 때까지 경성대목구장을 차례로 지냈다. 무려 43년간 한국 천주교의 최고 어른으로 군림한 셈이다. 하나 뮈텔은 한국인을 위한 사목(司牧)보다는 한국을 식민지로 거느린 일본 측에 아부하는 데 급급했다. 뮈텔이 남긴 일기와 편지 등을 분석한 학자들은 그가 한국인에 대해 ‘미개한 민족’이란 편견을 평생 지녔다고 지적한다. 뮈텔은 독립운동가들의 목숨을 건 항일 투쟁에도 매우 부정적이었다. 천주교 신자들의 항일 운동을 방해하거나 심지어 일본 당국에 몰래 알린 적도 있었다고 한다.

 

안중근(1879∼1910) 의사는 19세 때인 1898년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 흔히 ‘도마 안중근’이라고 부를 때 도마(토마스)는 안 의사의 세례명이다. 1909년 중국 하얼빈역에서 일본의 한반도 침략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한 뒤 안 의사는 일본 감옥에 갇힌 채 재판을 받았다. 뮈텔은 안 의사를 ‘살인범’으로 규정하고 즉각 일방적인 출교(黜敎) 조치를 내렸다. 일본 법원이 사형을 확정함으로써 순국을 앞둔 안 의사 측은 조선대목구에 “프랑스인 사제를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뮈텔은 이를 차갑게 거절했다. 자발적으로 안 의사를 찾아간 대목구 소속 프랑스 선교사는 훗날 뮈텔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기 기일이던 2010년 3월26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안중근 토마스 의사 순국 100주년 추모 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왼쪽 벽에 내걸린 한자 글씨는 안 의사의 유묵 ‘天堂之福 永遠之樂’(천당지복 영원지락: 천당의 복은 영원한 즐거움이다)을 형상화한 것이다. 연합뉴스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기 기일이던 2010년 3월26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안중근 토마스 의사 순국 100주년 추모 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왼쪽 벽에 내걸린 한자 글씨는 안 의사의 유묵 ‘天堂之福 永遠之樂’(천당지복 영원지락: 천당의 복은 영원한 즐거움이다)을 형상화한 것이다. 연합뉴스

지금으로부터 꼭 33년 전인 1993년 8월21일 한국 천주교가 안 의사를 천주교 신자로 공식 복권시켰다. 당시 김수환 추기경은 ‘안 의사 추모 미사’를 집전한 자리에서 “일제강점기 제도 교회가 그분의 의거와 정당방위에 그릇된 판단을 내리는 오류를 범했다”고 비판했다. 순국 후 무려 83년간 안 의사가 천주교 밖에서 방치된 점에 대해 김 추기경은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연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반성했다. 천주교 교리에 따르면 조국와 민족의 방어를 위한 전쟁 도중 일어난 살상 행위는 단죄의 대상이 아니고 정당방위로 인정된다고 한다. 많이 늦어지긴 했으나 안 의사 복권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