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너무 힘듭니다, 간부님.”
지난 3월9일 강원 철원군 육군 15사단 체력단련실. 팔굽혀펴기를 하던 한 병사가 여러 차례 중단을 호소했지만 운동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간부는 병사의 등을 누르고 활동복 상의를 움켜잡아 들어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하며 팔굽혀펴기를 계속하게 했다.
결국 이 병사는 100회에 가까운 팔굽혀펴기를 했고 이후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다. 이틀 뒤에는 두 팔을 들어 올리기조차 어려웠고, 소변은 콜라색으로 변했다. 검사 결과 근육효소(CK·크레아틴키나아제) 수치가 정상 수치의 수백 배까지 치솟았다. 2주간 입원 뒤 퇴원했지만 후유증 우려로 여전히 치료를 받고 있다.
◆ “깔짝이지 말고 내려가”…등 움켜잡고 강제 팔굽혀펴기
피해자 측에 따르면 사건은 지난 3월9일 오후 15사단 체력단련실에서 벌어졌다. 당시 피해 병사인 A 상병은 동료 병사와 함께 50회씩 번갈아 가며 팔굽혀펴기를 하려 했다. 앞서 체력단련 시간에 중대장으로부터 뜀걸음과 팔굽혀펴기 100회를 한 뒤 자유롭게 체육활동을 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A 상병은 50회를 먼저 마친 동기에 이어 팔굽혀펴기에 나섰는데, 15회를 했을 때쯤 지나가던 B 중사가 체력단련실로 들어왔다. B 중사는 눈이 마주친 A 상병을 향해 “그렇게 깔짝이지 말고 내려가라”고 말한 뒤 팔굽혀펴기를 강제로 반복하게 한 것으로 파악됐다. B 중사는 힘들어하는 A 상병에게 무릎을 대고 하라며 지시했고 지시에 따라 팔굽혀펴기를 해내려는 A 상병의 다리를 발로 툭툭 치며 “차라리 정자세로 해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극심한 신체적 한계를 느낀 피해 A 상병은 “저 너무 힘듭니다. 간부님”,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라며 여러 차례 멈춰달라고 요청했으나 B 중사는 멈추지 않았다. A 상병은 가까스로 50회를 채웠지만 이후 다시 강제 팔굽혀펴기가 이어졌고 “힘들어서 못 할 것 같다”는 호소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A 상병이 100회에 가까운 팔굽혀펴기를 이어가다 호흡이 급격히 거칠어지는 상태에 이르러서야 강제 팔굽혀펴기가 끝난 것으로 알려졌다.
◆ 이틀 뒤 콜라색 소변…CK 수치 정상의 수백배
팔굽혀펴기를 마친 뒤 A 상병은 양팔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당일 밤에는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고, 다음 날에는 팔의 통증이 더욱 심해졌다. 처음에는 심한 근육통 정도로 생각했지만 이튿날에는 두 팔을 들어 올리는 것조차 어려워졌다고 한다.
A 상병은 3월11일 소대장에게 상황을 보고한 뒤 의무대를 찾았다. 당시 아침부터 소변을 보지 못했던 그는 링거를 맞은 뒤 소변을 봤는데, 색깔은 콜라색에 가까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국군포천병원으로 후송돼 받은 혈액검사에서 CK 수치는 약 4만까지 올라 있었다. 이후 가족의 요구로 민간 대학병원에서 다시 검사한 결과 수치는 7만7380까지 치솟았다.
A 상병은 근육이 녹아버리는 중증 ‘횡문근융해증’ 진단을 받고 약 2주간 입원해 수액과 이뇨제 등의 치료를 받았다. 간 수치도 크게 상승하고 신부전증과 부정맥 소견까지 나타났다는 게 피해자 가족 측 설명이다. 횡문근융해증은 강한 운동이나 외상 등으로 근육세포가 손상되면서 근육 속 성분이 혈액으로 흘러나오는 질환이다. 심한 경우 신장 손상 등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증세가 호전돼 퇴원했지만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다. 무리한 근력운동을 피해야 하고 후유증 우려로 신장 기능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한 상태로 알려졌다. 퇴원 뒤에도 콜라색 소변이 나타나 병원 내원을 반복하는 등 치료를 받고 있다고 가족 측은 전했다.
◆ “국가 믿고 아들 보냈는데”…피해 병사 가족, 엄벌 탄원
피해 병사 가족은 단순한 훈련 중 사고가 아니라며 B 중사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고 나섰다.
A 상병의 친누나는 지난 5월 엄벌 탄원서를 통해 “국가를 믿고 동생을 군대에 보냈다”며 “힘든 군 생활은 감수해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사건으로 모든 것이 무너졌다”고 밝혔다.
이어 “병원에서 본 죽다 살아난 동생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며 “지금도 동생은 심장과 신장 기능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하며, 외관상 드러나지 않는 통증과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아직 군 복무가 남아있다는 사실이 저희에게는 너무도 큰 불안과 걱정으로 남아있다”며 “거창한 것을 원하는 게 아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라고, 다시는 다른 누군가의 아들과 동생이 같은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고 토로했다.
가족은 군 관련 커뮤니티 등을 통해 가해 간부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였고, 지난 6월24일 국방부를 찾아 온·오프라인에서 모은 4500여명의 서명서와 민원서를 제출했다.
A 상병 어머니는 민원서에서 “국가를 믿고 아들을 군에 보냈고, 국가는 아들을 안전하게 지킬 의무가 있었으나 이번 사건은 그 의무가 현장에서 처참하게 저버려진 결과”라며 “국방부가 사건을 엄중하고 공정하게 처리함으로써 국군이 장병 생명과 인권을 진심으로 보호하는 조직임을 행동으로 보여주기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는 “가해 간부의 행위는 단순한 훈련 지도 과실이 아니라 복합적이고 중대한 위법 행위”라며 “특히 고통 호소를 반복적으로 묵살한 행위는 고의성과 방임을 입증하는 핵심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계속해서 “사건 은폐나 축소 없이 가해 행위 경위와 고통 호소를 묵살한 경위 등 사건 전모를 철저히 수사하고, 피해 병사와 그 가족에게 수사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며 “가해 간부는 군형법상 가혹행위와 형법상 상해죄 등 관련 법령이 정한 최고 수준의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솜방망이 처벌이나 내부 징계로의 축소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B 중사의 사과뿐 아니라 부대 지휘관들의 책임 있는 조치도 요구했다. 아직 A 상병의 군 복무가 남아 있는 만큼 관련자로부터의 완전한 격리와 2차 피해·보복·불이익 방지를 위한 국방부 차원의 보호 조치, 외상 후 스트레스 등 정신건강 회복을 위한 전문 상담 지원 등도 요구했다.
◆ 李대통령도 “군 악습” 점검 지시…‘가혹행위’ 檢송치
B 중사를 비롯해 부대 내 지휘관들로부터도 사과를 받지 못한 A 상병 측은 B 중사를 직권남용 가혹행위와 폭행 등 혐의로 군사경찰에 고소했다.
언론을 통해 사건이 알려진 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6월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최근 경기도 포천 육군 73사단에서 발생한 20대 예비군 사망 사고와 함께 해당 사건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비합리적인 얼차려 같은 구시대적 병영악습이 나타나는 거 아니냐는 국민 우려가 있다”며 군 인권침해 실태에 관한 면밀한 현장 점검을 주문했다.
이와 관련해 당초 육군 3광역수사단 31지구수사대가 맡았던 해당 사건은 사회적 관심과 파장 등을 고려해 6월부터 본부수사팀이 넘겨받아 수사를 진행했다. 수사 결과 군사경찰은 부대 관계자 진술과 피해 병사의 의무기록 등을 토대로 혐의가 있다고 판단, 지난 14일 B 중사를 직권남용가혹행위와 폭행치상 혐의로 육군 검찰단에 송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