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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만들기 어려운 차였다”…제네시스 GV90, 30개 신기술의 비밀

B필러 없애고도 차체 강성 12% 높여
3800만건 사고 분석해 세계 최초 루프 에어백 적용
울산 EV공장 신설…생산 공정까지 새로 설계

“GV90은 단순히 새로운 스포츠유틸리티차(SUV)를 개발하는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에 의문을 던지는 과정이었다.”

 

만프레드 하러 현대자동차그룹 연구개발(R&D)본부장 사장은 20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팰리스 오브 파인 아츠’에서 열린 제네시스 GV90 테크 브리프에서 이같이 말했다.

제네시스 GV90 테크 브리프에서 만프레드 하러 현대차그룹 R&D본부장 사장이 발표하고 있다. 현대차 제공
제네시스 GV90 테크 브리프에서 만프레드 하러 현대차그룹 R&D본부장 사장이 발표하고 있다. 현대차 제공 

제네시스가 첫 초대형 플래그십 전동화 스포츠유틸리티차(SUV) GV90을 만들면서 기존 자동차 개발의 ‘상식’부터 다시 들여다봤다는 의미다. 플래그십은 브랜드가 축적한 기술과 디자인, 상품성을 집약한 상징적 모델로, 제네시스는 GV90에 30개가 넘는 신기술을 적용하며 차체와 안전, 주행성능부터 이를 생산하는 공장까지 사실상 새로 설계했다.

 

하루 전날 열린 GV90 월드 프리미어가 디자인과 상품성을 처음 공개하는 자리였다면 이날 행사는 차량 개발을 담당한 연구진이 직접 무대에 올라 “왜 이런 기술을 만들었고 어떻게 구현했는지”를 설명하는 자리였다. 허광훈 제네시스개발담당 상무는 GV90을 “제네시스가 지금껏 만든 차 가운데 가장 어려운 차였다”며 “플랫폼과 배터리, 전원 체계, 차체 구조, 인포테인먼트 시스템뿐 아니라 차량을 생산할 공장까지 새로 만들었다. 거의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설계했다”고 말했다.

제네시스 GV90 테크 브리프에서 허광훈 제네시스개발담당 상무가 발표하고 있다. 현대차 제공
제네시스 GV90 테크 브리프에서 허광훈 제네시스개발담당 상무가 발표하고 있다. 현대차 제공

◆B필러 없앴는데 더 단단해져

 

제네시스의 고민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기술은 GV90 네오룬의 ‘네오룬 아치 게이트’다.

 

앞뒤 문이 서로 마주 보며 열리는 이른바 ‘코치도어’ 방식 자체는 기존 고급차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GV90 네오룬은 한발 더 나아가 차체 중앙 기둥인 B필러를 외부에서 완전히 없애면서도 앞뒤 문을 순서에 관계없이 각각 독립적으로 열고 닫을 수 있도록 했다.

 

B필러는 자동차 지붕과 바닥을 잇는 기둥으로 측면 충돌 충격을 견디고 차체의 뒤틀림을 막아주는 핵심 골격이다. B필러를 없애면 차체 강성이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 자동차 설계의 오랜 상식이었다.

제네시스 GV90의 제조 과정을 담은 영상 ‘완벽함이 빚어지는 곳(Sanctuary of Fineness)’의 한 장면. 현대차 제공
제네시스 GV90의 제조 과정을 담은 영상 ‘완벽함이 빚어지는 곳(Sanctuary of Fineness)’의 한 장면. 현대차 제공

제네시스는 B필러의 역할을 문과 차체 내부로 옮기며 ‘없앤 것처럼 보이도록’ 했다. 뒷문 안쪽에 1.8GPa급 초고강도 스틸 구조물을 수직·수평으로 넣어 충돌 충격을 차체로 분산시켰고, 차체 내부에는 경주용 자동차의 ‘롤케이지’ 원리를 적용해 탑승 공간을 감싸는 별도의 골격을 숨겼다. 약 70kg에 달하는 뒷문을 독립적으로 열기 위해 ‘듀얼 모션 힌지’도 새로 개발했다. 뒷문이 먼저 바깥쪽으로 이동한 뒤 회전하면서 열리는 방식으로 앞문이 닫혀 있어도 뒷문을 따로 열 수 있다.

 

결과적으로 개방감을 키우면서 차체는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이대희 제네시스바디설계 실장은 “일반 스윙도어를 적용한 GV90도 경쟁차를 앞서는 차체 강성을 확보했지만, GV90 네오룬은 이보다 12% 더 높은 강성을 확보했다”며 “개방감을 얻기 위해 안전과 타협한 부분은 없다”고 강조했다.

 

◆3800만건 사고 분석…‘세계 최초 루프 에어백’ 탑재

 

안전 기술도 GV90 개발 과정의 핵심 과제였다.

 

제네시스는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의 실제 사고 데이터 약 3800만건을 분석한 뒤 사고 빈도 자체는 높지 않지만 발생했을 때 탑승객의 중상 위험이 큰 전복 사고에 주목했다. 그 결과 차량의 지붕 유리(선루프) 전체를 덮는 ‘루프 에어백’을 세계 최초로 적용했다.

 

이 기술은 차량이 전복되는 순간 에어백이 차량 후면에서 펼쳐져 내부 지붕 전체를 덮는다. 탑승자가 차량 밖으로 튕겨 나가는 것을 막고, 머리가 지붕이나 내장재에 부딪히거나 깨진 유리가 차량 안으로 들어오는 위험을 줄여준다.

제네시스 GV90의 제조 과정을 담은 영상 ‘완벽함이 빚어지는 곳(Sanctuary of Fineness)’의 한 장면. 현대차 제공
제네시스 GV90의 제조 과정을 담은 영상 ‘완벽함이 빚어지는 곳(Sanctuary of Fineness)’의 한 장면. 현대차 제공

이날 현장에서는 시속 110km로 달리던 GV90이 경사로를 타고 넘어가 전복되는 시험 영상이 공개됐다. 차량이 뒤집히자 루프 에어백을 포함한 12개의 에어백이 순식간에 작동해 탑승 공간을 감쌌다.

 

이승목 통합안전개발실 상무는 “안전 평가는 정해진 조건 안에서 이뤄지지만 고객이 실제 도로에서 겪는 사고는 훨씬 다양하고 예측하기 어렵다”며 “정해진 시험을 통과하는 것을 넘어 고객이 실제로 맞닥뜨릴 순간까지 대비하는 것이 제네시스가 생각하는 안전”이라고 말했다.

 

◆전용 플랫폼에 123.5kWh 배터리…350kW 급속충전도

 

전동화 플래그십에 걸맞게 구동계와 배터리도 새롭게 개발했다. GV90에는 전륜 240kW, 후륜 250kW의 신규 모터가 적용돼 합산 최고출력 490kW, 최대토크 800Nm를 낸다. 현대차그룹 전기차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의 출력이다. 

 

배터리 용량도 123.5kWh로 현대차그룹 전기차 가운데 최대 수준이다. 고밀도·고출력 설계와 무선 배터리관리시스템(BMS) 등을 적용해 에너지 효율을 높였다. GV90은 350kW급 DC 급속충전도 지원한다.

 

개발진은 강력한 출력뿐 아니라 플래그십에 걸맞은 주행 안정성과 승차감에도 주목했다.

제네시스 GV90 테크 브리프에서 발표자들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현대차 제공
제네시스 GV90 테크 브리프에서 발표자들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현대차 제공

정성기 제네시스시험1실 실장은 “플래그십 차량이라면 역동적인 주행 성능과 안정감, 편안한 승차감을 동시에 갖춰야 한다”며 “이를 위해 일반적으로 고성능차에 많이 사용되는 전자식 차동제한장치(e-LSD)를 앞뒤 바퀴에 모두 적용했다”고 말했다. 이는 코너를 돌거나 미끄러운 길을 달릴 때 좌우 바퀴에 전달되는 힘을 조절해 차체를 안정적으로 잡아주는 기술이다.

 

정 실장은 “어떤 노면과 상황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여유로운 주행을 제공하는 것이 제네시스가 생각하는 진정한 럭셔리”라고 강조했다.

 

안세진 제네시스프로젝트2실 상무는 “고객이 불편이라고 인식하지 못했던 순간까지 덜어내는 것이 제네시스가 정의하는 럭셔리”라며 “고객이 자동차를 타면서 지금까지 당연하게 감수해왔던 작은 불편까지 기술로 없앴다”고 설명했다.

제네시스 GV90 테크 브리프에서 안세진 제네시스프로젝트2실 상무가 발표하고 있다. 현대차 제공
제네시스 GV90 테크 브리프에서 안세진 제네시스프로젝트2실 상무가 발표하고 있다. 현대차 제공

GV90에는 별도의 시동 버튼이 필요 없는 전원 체계와 환기·공조 시스템 등을 도입했고, 주행 상황에 따라 차체 높이와 승차감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에어 서스펜션도 적용했다. 1열과 2열 탑승객이 서로 마주 볼 수 있는 좌석 구성과 한국의 온돌에서 착안한 복사열 난방 시스템 등은 차량을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닌 ‘움직이는 프라이빗 라운지(전용 휴식공간)’로 만들기 위한 기술이라고 제네시스 측은 설명했다.

 

◆“차 만들 공장까지 새로 지었다”…울산 EV공장 공개

 

제네시스는 GV90 생산을 위해 울산에 새로운 전기차 전용 공장도 건설했다. 이날 행사에선 울산 EV공장에서 GV90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은 영상이 처음 공개됐다.

 

특히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받은 GV90의 유려한 차체 곡면을 구현하기 위해 프레스 공정에는 6800톤급 서보 프레스를 도입했다. 알루미늄 비중이 높은 차체를 견고하게 연결하기 위해 알루미늄과 스틸 등 서로 다른 소재를 결합하는 4가지 신규 접합 공법도 적용했다.

 

사람 눈으로는 잡아내기 어려운 차체 표면의 미세한 결함도 자동으로 검사한다. 카메라와 패턴 조명을 이용해 15㎛ 이하의 표면 이상까지 찾아낸 뒤 자동 사상 공정에서 다시 표면을 다듬는다.

제네시스 GV90의 제조 과정을 담은 영상 ‘완벽함이 빚어지는 곳(Sanctuary of Fineness)’의 한 장면. 현대차 제공
제네시스 GV90의 제조 과정을 담은 영상 ‘완벽함이 빚어지는 곳(Sanctuary of Fineness)’의 한 장면. 현대차 제공

생산 마지막 단계에서는 실제 도로 주행 환경까지 공장 안에 옮겨놨다.

 

도로의 요철을 재현한 롤러 위에서 차량을 움직이고 최대 시속 160km의 바람을 불어넣으면서 차량 안팎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진동과 소음을 검사한다. 실제 시험로는 날씨와 노면 상태에 따라 조건이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생산되는 모든 GV90을 같은 조건에서 검증하기 위해서다.

 

허 상무는 “GV90에 담긴 기술은 연구개발뿐 아니라 상품기획과 생산, 품질, 판매까지 전사가 새로운 기준을 세우며 함께 완성한 결과”라며 “고객의 기대를 뛰어넘는 것을 개발 목표로 삼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