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미국에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오디세이’를 보러 극장에 갔는데, 밤 10시 상영편이었음에도 대형 아이맥스 극장의 거의 모든 자리가 꽉 차 있어 놀랐다. 미국에 온 이후 몇 번 영화관에 갔지만 이렇게 꽉 찬 영화관은 처음이었다. 들으니 미국에서 개봉한 지 한 달이 넘어가는 지금도 주말 상영 회차는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영화가 개봉한 뒤 흥행을 이어가고 있지만, 미국에서 오디세이의 흥행은 사회·문화적으로 한국에서보다 더 큰 파급력을 보이는 듯하다.
먼저 ‘책 읽는 문화’를 오랜만에 소환했다. 지난달 말 영화를 본 뒤 지역 공공도서관 연합인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카운티 도서관 시스템에서 오디세이를 검색했더니 수백 권의 오디세이 소장본이 모두 대출된 데다 각 소장본에 대기자 명단도 몇십 명씩이었다. 개봉 한 달이 넘은 지금도 오디세이는 미국 전체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올라 있다.
미국인들에게 오디세이는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한 번쯤 접하는 고전문학이다. 어렸을 때 읽은 기억이 있거나, 원작을 완독하지 않았더라도 교과서에 실린 발췌문 등을 통해 접한 이들이 많다. 이들이 영화의 흥행을 계기로 이 방대한 서사시를 직접 찾아 읽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오디세이를 함께 읽는 독서 모임부터 수천 명의 뉴스레터 구독자와 함께 작품을 읽어나가는 온라인 독서 공동체까지 다양한 사례를 전했다. 이들의 관심은 오디세이뿐 아니라 ‘트로이’, ‘오이디푸스 왕’ 등 관련 고전, 오디세이로부터 영향을 받은 현대 문학으로까지 넘어가고 있다. 서점 체인 ‘반스앤드노블’은 오디세이에서 영감을 받은 여러 문학작품의 컬렉션을 따로 만들어 놓을 정도다.
오디세이가 고전을 잘 재현한 영화 정도라면 미국 사회에서 이 정도의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영화 오디세이는 고전을 빌려 현대 사회, 특히 현대 미국의 문제를 반추하도록 만든다.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것은 이민 문제다. 현재 나와 있는 영어판 오디세이 가운데 가장 현대적인 문체로 꼽히는 번역본을 쓴 에밀리 윌슨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공영방송 PBS 인터뷰에서 “오디세이는 계속해서 좋은 주인이란 무엇인가, 좋은 손님이란 무엇인가, 낯선 사람에게 우리는 어떤 의무가 있는가를 묻는 작품”이라며 “오늘날의 이민(immigration)과 이주(migration)의 문제와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오디세이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크세니아’(Xenia·손님에 대한 환대)를 오늘날의 이민 문제와 연결해 해석한 것이다. 미국에서 현재 이민이 얼마나 정치적이고 민감한 주제인가를 감안하면 매우 현대적이면서 사회적인 해석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지식인들은 이 영화를 놓고 현대 미국 사회의 가치에 대한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 에즈라 클라인은 원작에서 영웅의 덕목으로 찬양받았던 오디세우스의 기만과 책략이 영화에서는 전쟁의 상처와 죄책감의 원천으로 재해석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클라인은 이를 기존의 규범을 깨뜨리고 힘과 승리를 중시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부상과 연결하면서, 놀런 감독의 오디세이가 이와 대조적으로 낯선 사람에 대한 환대와 연민, 인간의 존엄이라는 자유주의적 가치를 강조한다고 주장했다.
WP의 퍼리드 저카리아는 클라인의 해석에 반박하지 않으면서도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미국인들이 트럼프를 비롯한 포퓰리즘 우파와 일부 테크 억만장자들이 대표하는 힘과 승리, 지배 등 ‘고대의 가치’에 매력을 느끼는 데에는 현대 미국의 자유주의가 잃어버린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인터넷 개발과 달 착륙 등 미국이 이룬 성과를 예로 들면서, 목표를 향해 위험을 감수했던 야망과 자신감을 미국의 자유주의가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받아들이는 오디세이는 결국 오늘의 미국이다. 이방인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지, 힘과 승리를 어디까지 추구할 것인지, 인간의 존엄과 공동체를 어떻게 지킬 것인지, 3000년 전 오디세우스가 마주했던 질문들은 2026년 미국의 질문과 닮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