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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모의 한국인 탈무드] 정몽주가 오늘의 외교관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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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서 발견한 약소국의 지혜로 위기 모면
초당적 협력 끌어내는 ‘내수외교’ 본받아야

한국인 가운데 정몽주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를 배우며, 고려 말 지식인들이 선택한 서로 다른 길을 이야기한다.

흥미로운 것은 정몽주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방원조차 왕위에 오른 뒤 그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충신의 표상으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정몽주는 ‘고려의 신하’로 남기를 원했지만, 조선 왕조는 오히려 그의 충절을 기리고 ‘포은집’을 14차례 간행했다.

박현모 세종국가경영연구원 원장
박현모 세종국가경영연구원 원장

이번에 ‘포은집’을 다시 읽으며 새롭게 눈에 들어온 것은 그의 폭넓은 외교 활동이다. 정몽주는 36세인 1372년부터 51세인 1387년까지 여섯 차례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고, 41세 때에는 일본에도 갔다. 당시 동아시아는 중국의 원·명 교체와 일본의 남북조 내란이 겹친 격변기였다. 그는 명나라와 새로운 관계를 세우고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위험한 사행길에 올랐다.

1372년 첫 명나라 사행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바다 한가운데서 폭풍을 만났다. 배가 침몰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정몽주는 표류하며 13일을 버틴 끝에 가까스로 구조되었다. 다시 남경으로 돌아간 그는 이듬해 7월에야 고려 땅을 밟았다. 그 참혹한 기억을 안고도 1377년 다시 일본 사행을 맡아 목숨을 걸고 대한해협을 건넜다.

정몽주는 무엇을 위해 위험한 길을 마다하지 않았을까. ‘포은집’에 실린 ‘겨울밤에 ‘춘추’를 읽다’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공자가 필삭(筆削)한 의리 정미하여 / 눈 오는 밤 푸른 등불 아래 세밀히 음미할 제 / 일찍이 내 몸 중국에 나아갔건만 / 곁의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오랑캐 땅에 산다고 하네.”

이 시는 흔히 중화사상에 경도된 변방 지식인의 자의식으로 해석된다. 자신은 ‘춘추’의 깊은 뜻을 깨달아 이미 중화 문명에 들어섰는데도, 중국인들은 여전히 변방 출신으로 낮추어 본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시는 외교적 의미에서 해석해야 한다. “내 몸 중국에 나아갔다”는 말에는 실제로 중원을 여러 차례 오간 외교관의 경험과, 유교 성리학으로 고려를 혁신하려는 지식인의 포부가 함께 담겨 있다. 더욱이 명나라 황제를 설득하려면 그가 공유한 문명의 언어와 논리를 깊이 이해해야 했다. 그에게 ‘춘추’는 숭배의 대상이기에 앞서 나라를 지키는 외교의 언어였다.

세종 때 편찬된 ‘치평요람’을 보면, 정몽주가 짊어진 시대적 책임이 얼마나 막중했는지 알 수 있다. 1388년(우왕 14) 2월, 명 태조 주원장은 철령 이북이 본래 원나라의 영토였으므로 요동에 귀속시키겠다고 통보했다. 고려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우왕과 최영은 이를 주권과 영토에 대한 침략으로 규정하고, 요동을 선제공격해 국경을 바로잡겠다며 전국에서 군사를 징발하는 등 전쟁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정몽주가 보기에 명과의 전쟁은 곧 자멸의 길이었다. 어떻게든 상대의 논리를 읽고 설득하여 전쟁을 막아야 했다.

그보다 10여년 전에도, 정몽주는 외교가 나라를 흥하게도, 망하게도 할 수 있음을 보았었다. 권신 이인임 등이 원나라와 손잡고 명나라에 맞서려 하자, 그는 “하찮은 적과의 싸움을 막으려다가 천하의 군사와 전쟁을 벌이게 된다”고 상소했다. 이 일로 유배되었지만, 고려는 전란의 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

정몽주가 ‘춘추’에서 발견한 약소국 외교의 지혜는 무엇일까. 첫째는 회맹(會盟), 곧 연대의 전략이다. 춘추시대 약소국들은 강대국을 홀로 상대하지 않고 여러 나라와 규칙과 약속을 만들어 대응했다. 오늘날의 다자 협력망과 같은 전략이다. 둘째는 내수(內修), 곧 나라 안을 먼저 바로잡는 일이다. 외교력은 바깥에서의 과시가 아니라 국가의 기강과 국민적 지지에서 나온다. 혼란한 고려 조정에서 정몽주가 가장 절실하게 여긴 것도 이 점이었다. 셋째는 가치의 힘이다. ‘춘추의 필법’이 상징하듯 강대국의 힘은 당대를 압도할 수 있어도 옳고 그름까지 결정하지는 못한다.

국가 간 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한 오늘날, 한국 외교가 지향할 길은 무엇일까? 어느 강대국의 ‘작은 동맹국’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주변국과의 협력망을 굳건히 하는 것, 무엇보다도 초당적 협력을 끌어내는 내수외교. 그것이 정몽주의 ‘춘추 외교’에서 배울 지혜가 아닐까.

 

박현모 세종국가경영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