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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전기 먹는다”…전선·변압기 업계 ‘역대급 실적’ 터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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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산과 노후 전력망 교체, 재생에너지 투자가 맞물리면서 국내 전선·전력기기 업계가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LS전선 주요 자회사들이 올해 상반기 나란히 최대 실적을 기록한 데 이어 대한전선과 일진전기도 역대급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LS제공
LS제공

전력 사용량이 많은 AI 데이터센터가 세계 곳곳에서 늘어나면서 발전소에서 데이터센터까지 전력을 보내는 변압기와 케이블, 배전 설비 수요가 동시에 증가한 영향이다. 여기에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노후 전력망 교체와 재생에너지 투자가 확대되면서 국내 기업들의 해외 수주도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LS전선 계열에서는 가온전선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가온전선은 올해 상반기 연결 기준 매출 1조6330억원, 영업이익 64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보다 각각 27.3%, 41.8% 증가하며 반기 기준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매출보다 이익 증가 속도가 빨랐다.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상반기 약 3.5%에서 올해 3.9%로 0.4%포인트 높아졌다. 미국 AI 데이터센터와 태양광 발전단지, 전력망 투자가 늘면서 배전 케이블과 버스덕트 공급이 확대된 영향이다.

 

해외 수주도 이어지고 있다. 가온전선은 미국 빅테크 기업의 발전소 구축 사업에 약 500억원 규모 배전 케이블을 공급하기로 했으며, 싱가포르 육상교통청 도시철도 전력망 구축 사업에도 약 600억원 규모 제품을 공급하며 해외 사업을 넓히고 있다.

 

LS에코에너지도 상반기 매출 6358억원, 영업이익 454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보다 각각 32.8%, 16.5% 증가한 반기 기준 최대 실적이다. 영업이익률은 7.1%에 달했다.

 

유럽향 초고압 케이블과 AI 데이터센터용 버스덕트 등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높은 제품 판매가 실적을 끌어올렸다. 상반기 매출만 지난해 연간 매출 9601억원의 약 66%에 달해 연간 매출 1조원 돌파 가능성도 커졌다.

 

해저케이블 시공을 담당하는 LS마린솔루션 역시 성장세를 이어갔다. 상반기 연결 기준 매출 1482억원, 영업이익 103억원, 순이익 131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각각 약 33%, 61%, 217% 증가했다. 영업이익률도 5.7%에서 7.0%로 높아졌다.

 

대만 해상풍력단지 해저케이블 매설과 아시아·태평양 지역 해저 통신케이블 설치 사업 등이 실적에 반영됐다. 수주잔고는 약 6600억원으로 지난해 연간 매출의 약 3배 규모다.

 

가온전선과 LS에코에너지, LS마린솔루션 3사의 상반기 실적을 합치면 매출은 약 2조4170억원, 영업이익은 약 1197억원이다. 케이블 생산에서 해외 판매, 해저·지중 시공까지 이어지는 LS전선의 전력 인프라 사업이 동시에 성장한 셈이다.

 

호황은 LS 계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한전선도 올해 1분기 매출 1조834억원, 영업이익 604억원으로 분기 최대 실적을 기록한 데 이어 2분기에는 매출 1조1987억원, 영업이익 608억원으로 다시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상반기 두 분기를 합하면 매출 약 2조2821억원, 영업이익 1212억원에 달한다. 2분기 말 수주잔고도 처음으로 4조원을 넘어섰다.

 

미국과 싱가포르 등에서 초고압 전력망 프로젝트 매출이 본격적으로 반영된 데다 AI 데이터센터 관련 수주도 확대되고 있다. 대한전선은 지난 7월 호주 AI 데이터센터에 330㎸급 전력 인프라를 구축하는 사업을 수주해 설계부터 시공까지 턴키로 수행한다고 밝혔다. 해저케이블 생산 설비와 포설선 투자도 확대하며 육상에서 해저까지 사업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일진전기의 성장 속도도 가파르다. 일진전기는 올해 상반기 매출 1조1435억원, 영업이익 1227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약 17%, 71% 증가했다. 상반기 기준 역대 최고 실적이다. 2분기만 보면 매출 6374억원, 영업이익 720억원으로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1% 뛰었다.

 

일진전기는 미국 노후 전력망 교체와 유럽 재생에너지 투자, 글로벌 데이터센터 건설 증가에 따른 변압기와 전선 수요 확대를 실적 개선 배경으로 꼽고 있다. 상반기 말 수주잔고는 19억4000만달러, 약 2조7000억원 규모로 이 가운데 해외 비중이 76%에 달했다.

 

실제 올해 캐나다 데이터센터용 초고압 변압기 1200억원 규모를 수주했고, 싱가포르 전선 공급 계약 1086억원, 말레이시아 전선 공급 계약 621억원, 영국 초고압 송전망 사업 845억원 등 해외 수주를 잇달아 확보했다.

 

업계의 실적 개선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과거 전선업체의 실적이 구리 가격과 건설 경기 등 경기 변동에 크게 흔들렸다면 최근에는 초고압 케이블과 변압기, 해저케이블, 데이터센터용 배전설비 등 고부가 전력 인프라가 성장의 중심으로 올라서고 있다.

 

특히 AI 데이터센터는 단순히 서버와 반도체 수요만 늘리는 것이 아니다. 대규모 전력 공급을 위해 발전·송전·변전·배전 설비를 함께 확충해야 해 케이블부터 변압기까지 전력 산업 전반에 신규 수요를 만들어낸다.

 

미국의 노후 전력망 교체와 유럽의 재생에너지 확대도 국내 업체들에 기회다. 일진전기 역시 미국 노후 전력 인프라 교체와 유럽 신재생 발전 확대를 상반기 실적 성장 배경으로 제시했다.

 

이에 따라 국내 전력업계의 경쟁도 ‘얼마나 많이 생산하느냐’에서 ‘고부가 제품을 얼마나 확보하고 해외에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공급·시공할 수 있느냐’로 옮겨가는 모습이다.

 

LS전선은 가온전선과 LS에코에너지의 제조·판매망에 LS마린솔루션의 해저·지중 시공 역량을 결합하고 있다. 대한전선 역시 해저케이블 생산과 포설 역량을 강화하며 턴키 사업을 확대하고 있고, 일진전기는 초고압 변압기와 전선을 함께 공급하는 구조를 앞세워 해외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와 재생에너지, 노후 전력망 교체라는 세 가지 수요가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력 인프라 업계의 수주 경쟁도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실적의 다음 관전 포인트는 쌓인 수주잔고가 실제 매출과 이익으로 얼마나 빠르게 전환되느냐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