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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정민 윤 “사랑하기 때문에 세상은 더 나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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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우리를 짐승이라 말할 때’ 한국어판 출간
“냉소하기는 쉽다. 사랑을 말하는 것이 더 어렵다.”

22일 화상으로 만난 에밀리 정민 윤(사진) 시인은 한국어로 직접 옮긴 시집 ‘내가 우리를 짐승이라 말할 때’(자음과모음)를 설명하며 여러 차례 ‘사랑’이라는 키워드를 꺼냈다. 그가 말하는 사랑은 낭만적 감정이라기보다 윤리에 가깝다. 사랑하는 존재와 함께 살아갈 세계가 더 나은 곳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의식이다. 인간의 잔혹함을 바라보면서도 냉소로 끝내지 않는 것. 서로 다른 주제의식을 담은 시편들이 한 권 안에 배치되며 이러한 의미를 만들어낸다.

 

전작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역사적 폭력과 인간의 잔혹함을 응시했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시선의 범위를 인간 바깥으로 넓혔다. 말(馬), 장미목도리앵무, 땅다람쥐, 그린란드상어 등이 주요한 시어로 등장한다. 한국어판 제목에 쓰인 ‘짐승’은 비난의 말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시선을 뒤집어 인간을 다른 생명과 같은 자리에 놓는 말이다. 

하와이에서의 삶이 이러한 시인의 시선에 영향을 미쳤다. 한국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성장한 그는 미국 뉴욕과 시카고에서 공부한 뒤 현재 하와이대 마노아 캠퍼스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북미대륙 ‘본토’를 떠나 하와이의 식생을 마주하며 자신이 선 땅을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졌다. ‘사랑하는 모든 것을 만져볼 필요는 없다’, ‘회색 지대’ 등의 시에서 이러한 시선을 특히 잘 엿볼 수 있다. 그는 “정말 어렵지만 앞으로 더 탐구하고 싶은 영역”이라고 밝혔다.

 

이번 시집은 번역가로서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김수영·최승자·김혜순 등의 시를 영어로 옮겨온 그가 자신의 영어 시를 한국어로 옮겨 시집으로 만든 것. 두 언어 사이 간극은 새로운 시적 가능성을 낳았다. ‘우리를 나아가게 하는 것’의 첫 행 “First, there was a horse”를 “태초에 말이 있었다”로 옮긴 것이 대표적이다. 원문에서는 담담하고 구어적인 문장이지만, 한국어로 옮기며 성서의 문장을 떠올리게 하는 중의성이 생겼다. ‘美를 그리기 위해 눈을 감는다’에서는 영어 ‘pain-gain’의 운율을 ‘독-득’으로 옮겼다. 적확한 번역이 떠오를 때의 기분을 그는 “좋은 시를 썼을 때만큼 짜릿했다”고 돌아봤다.

 

그는 다음 달 서울국제작가축제 참석을 위해 한국을 찾는다. 독자들과 북토크도 예정돼 있다. 그는 “앞으로도 영어와 한국어, 두 언어로 창작을 병행하고 싶다”며 “한국 독자들과 만남이 정말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