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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윤의어느날] 이름을 부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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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가 훌쩍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는 길이 좀 걱정이었는데, 아직 여름 더위가 가시지 않아 뒤늦게 산책 나온 사람이 여럿 있었다. 소란한 기운에 돌아보니 예닐곱 명의 사람이 둥글게 서 있었다. 어른과 아이가 적절히 섞인 구성으로, 모종의 모임 끝에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는 모양이었다. 인사가 길어지는지 씽씽카 위에 발을 얹은 아이들이 당장이라도 달려 나갈 기세로 부릉대고 있었다.

“우리 달릴까?”

남자아이 하나가 옆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다섯 살쯤 됐을까, 동그란 머리통 아래로 가느다란 목과 좁은 어깨가 보였다. 씽씽카 손잡이를 움켜쥔 손이 통통하게 부풀어 있었다. 옆의 아이들이 어떤 대답을 했는지 세 아이가 동시에 달려 나갔다. 씽씽카 앞바퀴에서 빨갛고 파란 빛이 요란하게 쏟아졌다. ‘우리 달릴까’라니, 나는 그 정직하고 촌스러운 어감에 웃으며 세 아이의 질주를 구경했다. 보호자 두 명이 아이들을 뒤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정원아! 은지야! 멈춰! 보호자가 다급히 외치며 뛰는 모습을 보며 나는 조금 더 웃었다.

큰 모퉁이를 돌자 그새 잡혔는지 아이 셋이 시무룩한 얼굴로 서 있었다. 큰길을 따라 이삼백 미터쯤 달렸을까, 짧지만 강렬한 탈주극이었다. “깜깜한 데서 무서운 어른이 너흴 데려가면 어떡할 거야? 어른들도 없이 너네끼리 있으면 무서운 사람이 나타난다고 했잖아!” 보호자의 목소리가 정말 공포에 질려 있어 놀랐다. 뒤이어 따라온 다른 보호자가 앞서의 사람에게 지청구를 댔다. “애들 이름을 그렇게 큰소리로 부르면 어떡해? 위험하잖아.” 나는 그들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걸었다. 잠깐이지만 두려움을 맛본 사람들에게 나는 크게 외친 아이들의 이름을 들은, 한밤중에 느릿느릿 걷고 있는 낯선 사람일 테니 말이다. 그래, 아이들은 정말 순식간에 다치고 순식간에 사라지니까. 아이들이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는 정말 두려웠을지 몰랐다.

집까지 얼마 남지 않은 길을 나는 두리번대지 않고 걸었다. 그러고 보니 이름쓰기가 사라진 건 언제부터였더라. 내가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였다)를 다니던 시절에는 한 학급에 아이들이 60~70명 되었다. 다들 비슷한 상점에서 책가방과 실내화 주머니를 샀기 때문에 똑같은 가방이 못해도 스무 개쯤 되던 때였다. 가방이 바뀌지 않도록 보호자들은 책가방 등판이나 어깨, 앞주머니처럼 눈에 띄는 곳에 아이 이름을 커다랗게 써주곤 했다. 신발주머니 안에 담긴 실내화는 학교 앞 문방구에서 삼천오백 원 주고 산 똑같은 것이라 쉽게 바뀌고 쉽게 잃어버렸다. 대부분의 아이가 흰 실내화 앞코와 옆면에 매직으로 써넣은 이름을 달고 걸었다.

그렇게 쉽게 얻어낸 이름을 부르며 아이에게 친근하게 다가가 범죄를 시도한 사례가 뉴스로 여럿 보도되면서 이름쓰기는 자취를 감췄다. 왼쪽 가슴에 달고 다니던 커다란 이름표도 한순간 사라졌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보호자가 실감한 공포의 크기는 단순히 이름쓰기, 부르기를 멈추는 것만으로 사라지지 않았을 터였다. 너무 큰 상처겠구나, 나는 그렇게 중얼대며 밤길을 마저 걸었다.
 

안보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