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못 보는 사람에게 모국어를 안 가르치면 이중의 불구가 돼 생활을 못하는 것이외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후 일제의 탄압은 날로 심해졌고 식민 통치하에서 조선어 교육을 없애려는 움직임마저 나타났다. 조선총독부가 당시 조선인 유화정책으로 설립한 시각장애인 학교(제생원 맹아부)에 교사로 근무 중이던 송암 박두성(1888∼1963·사진) 선생이 이렇게 말했다.
맹인 교육에 진력하던 박 선생은 1913년 8월14일 한국 최초로 일본어 점자 교과서를 출판했고, 이 과정에서 우리말 점자가 없다는 데 무엇보다 안타까움이 컸다. 박 선생은 건강이 악화되고 수차례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1926년 11월4일 마침내 시각장애인의 등불이 된 6점식 한글점자 ‘훈맹정음’을 완성했다.
올해 반포된 지 100주년이 된 훈맹정음을 창안한 박 선생의 63주년 추도식이 25일 그의 생가를 복원한 인천 강화군 교동면 상용리에서 열렸다. 이날 가까운 혈육들과 박두성기념관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