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향한 ‘러브콜’을 잇달아 내며 북·미 간 대화 재개 가능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한·미 양국 외교장관이 통화를 통해 관련 사안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양국 장관은 한·미 관계와 한반도 및 세계 정세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긴밀한 소통, 공조를 강조했으나 통화 후 나온 보도자료에 관례처럼 써오던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이 보이지 않는 게 주목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만남을 성사시키기 위해 북핵 보유를 용인하는 듯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미국의 대북정책에 반영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북핵 문제와 관련해 한·미 양국이 공통의 목표, 접근법을 설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5일 외교부에 따르면 조현 외교부 장관과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전날 밤 통화하고 한반도 평화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긴밀한 소통과 공조를 이어가기로 했다. 조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메시지가 북·미 대화 재개와 한반도 평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부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 국무부도 토미 피곳 대변인 명의로 낸 2문장 분량 보도자료를 내 두 장관이 “한·미동맹과 관련된 다양한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주목되는 대목은 통화 결과를 전하는 양측 보도자료에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이 빠졌다는 점이다. 한국 외교부는 “굳건한 한·미 연합방위태세를 유지하는 가운데, 한반도 평화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긴밀한 소통과 공조를 이어나가기로 하였다”고 했고, 미 국무부는 루비오 장관이 “동맹에 필수적인 사안들에 대해 양국이 긴밀한 공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고 전했다.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대화를 염두에 두고 북한이 반발해 온 ‘비핵화’라는 표현을 자제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런 기조가 이어지면 북한의 핵보유를 사실상 기정사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염두에 둔 유화적 조치를 일방적으로 내놓고 있고, 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 기조에 따라 한국 정부를 대화 상대로 일절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운신 폭이 예전에 비해 제한적이라는 점은 이런 우려를 더욱 키우고 있다.
정부는 ‘비핵화’ 표현이 빠진 것과 무관하게 한·미의 비핵화 목표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박두순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한·미 양국은 지난해 11월 한·미 정상회담 공동설명자료에서도 기술되었듯이 한반도 평화·안정과 비핵화 목표를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북·미 대화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미국과 구체적인 ‘북핵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완전한 비핵화를 최종 목표로 두고 우라늄 농축과 핵물질 생산 중단, 핵시설 폐쇄·폐기 등 단계별 조치의 순서를 조율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이행을 검증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 범위와 방식도 사전에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북·미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전력을 중심으로만 협상할 경우, 한국을 겨냥한 단거리 탄도미사일과 전술핵 문제는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는 점에서 핵물질 생산 중단, 핵탄두 감축 등을 어느 단계에서 다룰지 조율해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통화에서 “북·미가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기 전에 비핵화의 단계와 범위를 한·미가 충분히 조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김 위원장을 향한 구애는 계속되고 있다.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대내외적으로 ‘수세’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은 연내에 김 위원장을 만나겠다고 호언하며 반전을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24일(현지시간) 트루스소셜에 과거 김 위원장과 찍은 사진 3장을 게시하며 대화 재개 의지를 재차 드러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정상회담과 2019년 6월 판문점 회동 당시 사진들로 보인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정상회담 사진은 없었다.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해 ‘하노이 노딜’로 불리는 이때의 만남을 상기시키지 않으려는 나름의 배려로 보인다. 당시 김 위원장은 기차를 타고 하노이까지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던 만큼 북한 입장에서는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회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