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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시·애경에 막힌 ‘가습기살균제 참사’ 조정…10월 법정배상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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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등 시민단체, 인터폴 적색수배 거라브 제인 전 옥시 대표 소환수사 촉구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구제 제도가 10월 8일부터 국가와 관련 사업자가 함께 책임지는 법정 손해배상 체계로 바뀐다. 기업의 자발적 합의에 기댔다가 무산된 2022년 사회적 조정과 달리, 이번에는 법률이 배상 책임과 재원 조성의 근거가 된다.

 

25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거라브 제인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의 국내 소환과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
25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거라브 제인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의 국내 소환과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환경보건위원회와 환경보건시민센터, 전국가습기살균제참사피해자연대 등은 25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거라브 제인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의 국내 소환과 수사를 촉구했다.

 

제인 전 대표는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옥시 대표를 지냈다. 피해자단체 등은 그가 가습기살균제 안전성을 강조한 광고와 사건 발생 이후 독성시험 대응 과정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제인 전 대표는 2016년 검찰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았고 이후 인터폴 적색수배 대상이 됐지만, 국내 소환은 이뤄지지 않았다. 단체들은 해외 사법당국과 공조해 장기간 중단된 외국인 경영진 수사를 재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옥시·애경 반대로 멈춘 9240억원 조정안

 

이번 기자회견을 계기로 옥시 등 관련 기업의 배상 책임과 과거 무산된 사회적 조정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가습기살균제는 1994년부터 판매됐으며 2011년 피해가 처음 확인됐다.  

 

2022년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이 위원장을 맡은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는 피해자 7000여 명을 대상으로 기업들이 총 7795억~9240억원을 마련하는 최종안을 내놨다.

 

생존 피해자에게는 연령과 피해 정도에 따라 2500만~5억3500만원을, 사망 피해자 유족에게는 2억~4억원을 지급하는 내용이었다. 정부로부터 피해를 인정받지 못했지만 가습기살균제 사용 사실이 확인된 일부 피해자에 대한 지원도 포함됐다. 

 

조정안이 성립하려면 대상 기업 9곳이 모두 동의해야 했다. 7개 기업은 받아들였지만 가장 큰 분담 주체였던 옥시와 애경산업이 재원 분담 규모와 책임 종결 범위 등을 이유로 동의하지 않았다. 피해자 측에서도 보상 수준과 조정 이후 추가 소송 제한을 놓고 의견이 갈렸다.

 

결국 참사 발생 11년 만에 마련된 9000억원대 조정안은 피해자 동의 절차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무산됐다.

 

◆10월 8일부터 ‘임의 조정’ 아닌 법정 배상

 

지난 4월 7일 공포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및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전부개정법률은 10월 8일 시행된다. 제조·판매 사업자 중심의 피해구제 체계를 국가와 사업자가 함께 책임지는 손해배상 체계로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제도 개편에는 국가 배상책임을 인정한 법원 판단도 영향을 미쳤다. 서울고법은 2024년 2월 가습기살균제 피해에 대한 국가의 배상책임을 처음 인정했다. 같은 해 6월 대법원이 양측의 상고를 기각하면서 판결이 확정됐다.

 

개정법에 따라 기후에너지환경부 소속 피해구제위원회는 국무총리 소속 ‘가습기살균제 배상 심의위원회’로 개편된다. 사망 피해에는 유족배상과 장례비·위자료가, 건강 피해에는 치료비와 간병비·휴업손해·장해배상금·위자료가 반영된다.

 

기존 구제급여 수급자는 시행일에 손해배상을 신청한 것으로 간주되지만, 시행 후 6개월 안에 소득과 피해 관련 서류도 제출해야 한다. 신규 신청자도 원칙적으로 2027년 4월 8일까지 신청을 마쳐야 한다.

 

심의위원회의 배상 결정 기한은 신청 후 180일이며 필요하면 30일 연장할 수 있다. 

 

◆기업 동의 없이 시행…분담금·배상기준이 관건

 

이번 법정 손해배상 체계와 2022년 사회적 조정과의 가장 큰 차이는 개별 기업의 동의가 제도 출범을 좌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개정법은 국가와 사업자의 책임, 분담금 부과 근거를 법률에 직접 담았다. 옥시나 애경산업이 동의하지 않아도 법은 시행된다. 배상 재원인 피해구제자금에는 사업자 분담금과 국가 출연금이 함께 포함된다.

 

정부가 입법예고한 시행령 개정안에는 원료물질 사업자의 분담금 비율을 가습기살균제 사업자 분담금의 25%에서 45%로 높이는 내용이 담겼다. 체납 시 매일 체납액의 1000분의 1을 가산금으로 부과하고 미납 사업자를 공개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최종 내용은 하위법령 확정 과정에서 달라질 수 있다.

 

개인별 소득과 장해 정도, 장기간 이어진 치료·간병 부담을 어떻게 반영할지는 쟁점으로 남아있다. 학계에서는 인과관계 규명이 여전히 불완전한 만큼 피해자 모두에게 공통 위자료를 지급하는 ‘정부 기본 배상’을 도입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피해자가 심의위원회의 배상 결정을 받아들이면 국가·사업자와 재판상 화해가 성립한 것으로 보는 조항과 관련해서는 추가 분쟁 가능성을 지나치게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정부가 인정한 피해자는 지난 6월 기준 6037명이며, 사망자는 최근 1422명으로 집계됐다. 지금까지 지급된 구제급여와 지원금은 총 2165억원이다.

 

새 제도의 성패는 개인별 배상기준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마련하고, 국가 출연금과 사업자 분담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피해자에게 실제 배상금을 신속히 지급하느냐에 달렸다.

 

업계 관계자는 “4년 전 사회적 조정은 기업들의 동의를 넘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법률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며 “제도가 만들어졌다는 사실보다 피해자에게 실제 배상이 언제, 얼마나 이뤄지는지가 남은 시험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