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의 형편을 알아보려면 먼저 밥상을 보라는 말이 있다. 가정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는 징후가 식탁에서 가장 먼저 드러난다는 뜻이다. 식사는 우리 삶에서 가장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행위이지만, 생활이 팍팍해질 때 가장 먼저 지출을 줄이는 영역이기도 하다.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과 다양한 식문화로 유명한 유럽 대륙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전쟁, 지구온난화 등 영향으로 2020년대 이후 지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생활물가 상승으로 인해 서구 소비자들이 식료품 구매를 위한 지출을 줄이고 있다. 높은 물가 부담과 고착화된 기후변화에 따른 일시적인 변화가 아니라 아예 식문화 전체를 바꾸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영화 등에서 봐왔던 풍성한 서구인들의 식탁이 조금씩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식품물가 급등에 ‘타협’하는 소비자
소비자들은 자신들의 가장 대표적인 식재료를 구매하는 것조차도 망설이고 있다. 5인 가족의 구성원인 가정주부 아다 토레스(60)는 세계적인 쇠고기 산지인 미국 텍사스주에 거주하고 있음에도 매번 쇠고기 구매를 망설인다. 쇠고기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랐기 때문이다.
미국 노동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다진 쇠고기 1파운드(450g)당 가격은 6.82달러(약 9430원)로 2019년 초보다 79%나 상승했다. 미국 내 소 사육두수 감소, 서부 지역의 가뭄, 사료 및 연료비 상승 등이 겹치며 이제 쇠고기는 미국 서민들이 일상적으로 즐길 수 없는 재료가 됐다. 대신 토레스씨는 소시지 등 가공육과 닭고기 등으로 쇠고기를 대체하고 있다. 가공 육류가 가족의 건강에 해로울까 봐 걱정되긴 하지만 팍팍해진 살림살이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됐다.
쇠고기 외에도 2020년대 들어 미국 전체 식료품은 대부분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 7월 기준 미국 노동통계국이 발표한 미국 도시 소비자의 식품물가지수는 350.164에 달했다. 해당 지수는 1982~1984년 식품물가 평균치를 100으로 상정하고 현재 물가수준을 비교한 것인데, 44년 동안 식품물가가 3.5배나 오른 것이다. 특히 이 중 가장 가파른 상승을 보인 시기가 2020년대다. 2020년대 들어 미국 식품물가 상승률은 무려 34%에 달했다. 그보다 앞선 7년간의 상승률은 6.4%에 그쳤다. 자연스럽게 장바구니는 가벼워진다.
풍경은 유럽도 다르지 않다. 유럽 역시 2020년대 이후 식품물가가 빠르게 오르고 있다. 유로존 19개 국가를 대상으로 한 음식 및 비알코올 음료 물가지수는 올해 7월 기준 101.19로, 2020년 1월 75.58에 비해 약 34%나 상승했다. 1996년 이후 30여년간의 추적 데이터에서 최근 그래프의 기울기가 가장 가파르다.
이에 소비자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다채로운 식문화를 즐기는 대표 국가인 프랑스의 국민은 더 이상 와인과 신선채소, 육류가 가득한 식탁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 국립통계연구소(INSEE)가 2025년 10월 소비자들의 실제 영수증 데이터를 분석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식품 가격이 오르자 소비자들은 할인제품이나 저가 브랜드로 눈을 돌렸다. 육류·생선처럼 비싸면서 대체 가능한 식품의 구매 감소도 컸고, 술과 초콜릿 같은 비필수·저장가능 식품도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해 수요가 줄었다. 아예 신선함이라는 가치를 포기하기도 한다.
해당 조사를 이끈 INSEE의 트리스탄 루아젤은 보고서에서 저렴한 가격을 추구하거나 특정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행위가 “가장 건강하거나 품질이 우수한 제품을 희생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로 인해 건강한 식생활에 대한 접근성 불평등을 야기하거나 심화시킬 수 있다”고 결론짓기도 했다.
영국도 지난해 7월 식품물가 상승률이 5.2%까지 치솟으며 소비자들이 비명을 지른 바 있다. 영국 소비자분석업체 월드패널의 소비자 부문 책임자인 프레이저 맥케빗은 당시 “더 저렴한 자체 브랜드 제품이 계속해서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실제로 이 제품군의 매출 성장률이 브랜드 제품을 앞질렀다”고 설명했다. 그는 “식품물가 상승에 대한 대응은 우리가 무엇을 구매하는지뿐만 아니라 음식을 어떻게 준비하는지까지 바꾸고 있다”면서 “이제 사람들은 더 간단한 식사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으며, 저녁 식사 10접시 중 거의 7접시는 6가지 미만의 재료로 구성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유통·공급망 솔루션 기업 릴렉스가 올해 미·영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수행한 여론조사에서 변화의 흐름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응답자의 61%가 식품 구매량에 변화가 있다고 답했고, 세부적으로는 과자 등 간식류나 쇠고기, 주류 등의 구매를 줄였다. 저렴한 자체브랜드와 할인점을 이용하는 소비자도 확대됐으며, 무엇보다 집에서 요리하는 경우가 늘었다는 답변이 71%에 달했다.
◆적응과 함께 바뀌는 식탁
문제는 이런 변화가 지속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부 신선식품을 제외하면 한번 오른 뒤 쉽게 내려오지 않는 식품물가의 특성 때문이다. 게다가 서민들의 임금은 물가 상승 수준에 맞춰 증가하지 않는다. 2020년대 이후 미국의 임금상승률은 27.1%로 식품물가 상승률을 7%포인트가량 밑돌았다. 유로존의 경우 2020~2024년 임금상승률이 22.3%로, 식품물가 상승률보다 10%포인트 이상 낮다. 임금이 오르긴 했지만 식품가격은 더 빠르게 올라 결국 소비자들은 식생활에 타협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임금이 극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아 소비자들의 ‘타협’은 향후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2022년 인플레이션 이후 잠시 잦아들었던 물가상승 압력이 이란전쟁 발발 이후 다시 확대되며 소비자들의 위기감은 더 커지고 있다. 식품 생산국이 아닌 이란에서의 전쟁이지만 중동 위기로 번지며 물류비와 연료비용 등의 상승으로 연결되고, 이는 고스란히 식품물가로 전이되는 중이다.
설상가상으로 기후위기가 굳어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벌써 수년째 폭염과 가뭄, 폭우가 이어지는 이상기후에 시달리고 있다. 건조한 기상상황으로 주요 농산물 산지에 산불도 속출한다. 이에 따라 과거와 같은 생산비용으로 식품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그리스 와인생산자 미할리스 부타리스는 극한 기후에 대응하기 위한 비용은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며 “예전에는 프랑스 남부나 스페인, 그리스에서 저렴한 와인이 생산됐지만 이제는 그곳에서도 찾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예 서구 식문화가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 또한 나오는 상황이다. 한정된 예산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소비자들의 행태가 자리 잡았고, 이 같은 달라진 소비 패턴이 새로운 식생활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영국 최대 슈퍼마켓 체인 테스코의 켄 머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10월 실적 발표 자리에서 “2022년 대규모 인플레이션이 확산했을 때 소비자들의 쇼핑 습관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으며, 이러한 변화는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캐나다 핼리팩스 세인트메리대학교의 데이비드 소비소매센터 라메시 벤카트 소장은 “식료품 가격이 전반적인 물가상승률보다 더 빠르게 오르면서 소비자들이 가치를 파악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면서 “소비자들이 가능한 한 지출을 줄이려는 심리가 강해지면서 이제 브랜드에 구애받지 않고 가족에게 꼭 필요한 식품만을 구매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