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주주들의 압박에 직면한 대기업들이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있다. 각종 리스크와 주가 하락 책임론 등 각 그룹사의 ‘아킬레스건’을 선제적으로 방어하겠다는 움직임이다. 특히 다음 달 시행되는 ‘제2차 상법 개정안’으로 소액주주들의 이사회 입성 가능성이 커지면서 재계 긴장감도 고조되는 분위기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 LG, 한화, 롯데는 이사회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발 빠르게 이사회를 개편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사회 구성원을 10명에서 8명으로 축소해 이사회 내 독립이사 비중을 62.5%까지 끌어올렸다. 금융위원장 출신인 신제윤 이사회 의장을 중심으로 독립이사 5명이 포진하고 있고, 사내이사는 전영현 부회장과 노태문·김용관 사장뿐이다. 지난 4월에는 독립이사로만 구성된 특별위원회를 꾸려 선제적으로 이사회 의사결정의 공정성과 절차적 적정성을 검토하도록 했다.
SK는 최태원 회장의 ‘이사회 중심 경영’ 철학에 따라 주요 계열사 이사회 의장을 독립이사에게 개방하는 ‘이사회 2.0’ 전략을 추진해 왔다. SK하이닉스에선 지난해 3월 한애라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돼 첫 여성 의장이 나왔다. 올해는 고승범 전 금융위원장이 이사회 의장으로 추대됐다. 독립이사들이 최고경영자(CEO)를 검증 및 추천하는 ‘CEO 추천 시스템’도 구축했다. 이날 기준 이사회를 구성한 18개 회사 중 15곳(83.3%)의 이사회 의장이 독립이사다.
LG는 구광모 회장의 이사회 의장 겸직을 해소하고 계열사 이사회 의장을 독립이사로 전면 교체했다. 지주사인 ㈜LG를 비롯해 LG전자, LG화학, LG유플러스, LG CNS 등 11개 상장사의 이사회 의장을 독립이사로 선임하는 ‘독립이사 의장 체제’로 전환했다. 지난 3월엔 강수진 독립이사가 LG전자 이사회 의장으로 올랐다.
최근 승계를 위한 사업재편을 마무리한 한화는 ㈜한화와 한화솔루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계열사 이사회의 50% 이상을 독립이사로 구성했다. 100% 외부 전문가 수혈을 원칙으로 삼고, 공정성을 더하기 위해 6년을 초과하는 장기 재직 독립이사의 연임을 금지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상법상 독립이사 선임 의무가 없는 비상장사인 한화에너지도 독립이사 2인을 이사회에 포함했다.
실적 둔화와 재무 부담 리스크에서 벗어나고 있는 롯데그룹 역시 독립이사가 주도하는 독립이사후보추천위원회와 투명경영위원회, ESG위원회를 통해 독립이사의 권한을 강화했다.
재계가 이처럼 독립이사의 권한을 강화하는 등 이사회 개편에 적극 나선 이유는 상법 개정안으로 이사의 충실의무가 확대되면서 소액주주들로부터 배임이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할 위험이 커졌기 때문이다. 자칫하다 기업 전체로 불길이 번지지 않도록 이사회 결정의 정당성을 법적으로 확보하겠다는 취지다.
다음 달 10일부터 대기업에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제2차 상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소액주주들의 이사회 입성 가능성이 높아진 것도 기업을 긴장하게 하는 대목이다. 집중투표제는 기업이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출할 때, 주식 1주당 선임할 이사 수만큼의 투표권(의결권)을 주주가 원하는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게 한 제도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본부장은 “기업 지배구조의 유연성과 자율성을 지나치게 제약할 경우 자칫 적극적인 경영이나 과감한 투자 결정에 큰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며 “기업 지배구조에는 획일적인 정답이 없는 것이 정답인 만큼 각 기업의 상황에 맞게 유연하고 균형감 있는 제도 설계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