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세로 유럽 최고령 군주인 노르웨이 하랄 5세 국왕 병세가 급격히 악화해 왕실에 비상이 걸렸다. 왕세자와 왕비 등 왕실 가족이 모든 공식 일정을 취소하고 병상을 지키는 가운데 총리와 국회의장도 해외 일정을 중단했다.
노르웨이 왕실은 27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혈액 내 세균 감염으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하랄 5세의 건강 상태가 급격히 악화해 현재 ‘극히 심각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날 외신에 따르면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장남 호콘 왕세자와 소냐 왕비 등 왕실 구성원이 모든 공식 일정을 취소했다. 노르웨이 언론에 따르면 하랄 5세가 입원 중인 오슬로 대학병원에는 호콘 왕세자(53)와 소냐 왕비(88)를 비롯한 왕실 주요 인사들이 속속 도착해 병상을 지키고 있다.
오슬로 왕궁 앞과 주요 도시 중심가에도 시민 수백명이 모였다. 시민들은 국왕의 상태에 관한 추가 소식을 기다리며 꽃을 놓고 쾌유를 기원했다.
요나스 가르 스퇴르 노르웨이 총리는 국왕의 상태를 고려해 이날 예정됐던 독일 방문을 전격 취소했다. 스퇴르 총리는 성명을 통해 “국민 모두와 함께 국왕과 왕실 가족에게 따뜻한 응원을 전한다”고 밝혔다.
마수드 가라크하니 노르웨이 국회의장도 아이슬란드 공식 방문을 중단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한국을 방문 중인 노르웨이 의회 외교·국방위원회 소속 의원들도 조기 귀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용혈성 빈혈을 앓아온 하랄 5세는 코르티손 호르몬 치료에 따른 체액 축적 증상으로 지난 17일부터 오슬로 국립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용혈성 빈혈은 적혈구가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파괴돼 피로와 호흡곤란, 창백함 등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1991년 왕위에 오른 하랄 5세는 최근 수년간 건강 문제로 여러 차례 입원했다. 건강 악화로 공식 활동을 줄이면서도 하랄 5세는 왕위를 내려놓지 않았다. 그는 의회에서 국왕으로서 ‘평생 서약’을 했다며 호콘 왕세자에게 양위할 뜻이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실질적인 정치 권한은 없지만 하랄 5세는 자연재해와 테러 등 국가적 위기가 닥칠 때마다 국민 앞에 나서 위로와 통합의 메시지를 내며 높은 지지를 받아왔다.
최근 노르웨이 왕실은 호콘 왕세자의 부인 메테마리트 왕세자빈이 미국의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틴과 과거 친밀하게 교류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노르웨이에서 군주제에 대한 지지가 여전히 높은 데에는 하랄 5세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5월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 3명 중 2명 가량이 군주제를 지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