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미식의 기준 ‘미쉐린(미슐랭) 가이드’와 글로벌 기록의 상징 ‘기네스 세계 기록(기네스북)에는 뜻밖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본업이 식당이나 기록 수집이 아닌 각각 ‘타이어’와 ‘맥주’를 파는 회사라는 점이다. 두 글로벌 기업이 본업을 넘어 어떻게 세상을 사로잡는 표준이 됐는지 반전의 역사를 짚어본다.
◆ 미쉐린 가이드의 탄생과 전환
20세기 들어 미식의 세계적인 기준으로 자리매김한 ‘미쉐린 가이드’는 프랑스 타이어 회사 ‘미쉐린’이 출판하는 가이드북이다.
출발은 운전자를 위한 여행안내서였다. 1889년 앙드레 미쉐린과 에두아르 미쉐린 형제는 프랑스에 자신들의 이름을 딴 타이어 회사를 설립했다. 형제는 상세한 여행 정보를 제공하면 자동차 보급이 늘고 이는 타이어 판매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 판단해 1900년 소책자를 배포했다. 초창기 가이드북은 타이어 관리법, 도로 법규, 주유소 위치 등이 주를 이뤘고 식당 정보는 부차적인 요소에 불과했다.
이러한 정보는 20년간 무료로 제공됐지만, 어느 날 앙드레 미쉐린은 한 타이어 판매점에서 자신이 아끼던 가이드북이 정비소 작업대 받침대로 방치된 광경을 목격했다. 그는 “사람은 돈을 지불한 물건의 가치만 인정한다”는 깨달음을 얻고 1920년 내용을 전면 개편한 가이드북을 7프랑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미쉐린 가이드는 유료 판매로 전환하면서 파리의 호텔·레스토랑 목록 등에 스폰서 광고를 싣지 않겠다는 원칙을 내세웠다. 이후 해당 목록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면서 미쉐린 형제는 비밀 평가단을 선발해 익명으로 레스토랑 음식을 평가하게 했다.
◆ 미쉐린 가이드가 완성한 미식의 기준
오늘날의 ‘미쉐린 스타’ 평가 제도는 1926년 도입됐다. 초기에는 음식이 맛있다고 소문난 호텔에 별을 부여하는 방식이었으나 1931년에는 3등급 체계로 확장하고 1936년에는 별점 평가 등급에 대한 기준을 확립했다. 별 1개는 ‘요리가 훌륭한 식당’, 별 2개는 ‘요리가 훌륭해 멀리 찾아갈 만한 식당’, 별 3개는 ‘요리가 매우 훌륭해서 맛을 보기 위해 특별한 여행을 떠날 가치가 있는 식당’으로 정의했다.
1997년에는 ‘빕 구르망’ 제도도 신설됐다. ‘빕’은 미쉐린 마스코트 비벤덤의 애칭이며 ‘구르망(Gourmand)’은 불어로 미식가를 의미한다. 빕 구르망은 합리적인 가격에 음식이 훌륭한 식당을 소개하는 역할을 한다. 이를 위해 국가 혹은 도시별 물가를 반영한 1인분 가격 상한선을 둔다. 지난 2월 미쉘린 가이드에 따르면 서울과 부산의 기준은 1인분 4만5000원 이하다. 빕 구르망 식당은 별점 대신 비벤덤이 입맛을 다시는 픽토그램으로 표시되는 것이 특징이다.
미쉐린 가이드 공식 사이트에 따르면 흥미롭게도 식당의 인테리어나 주문 방식 등 외부 요인은 평가에 반영되지 않는다. 심지어 주방장이 직접 조리했는지조차 고려 대상이 아니다. 오직 눈앞에 놓인 음식의 완성도를 우선시한다. 평가의 핵심인 일관성을 검증하기 위해 복수의 평가원이 계절과 주중·주말, 시간대 등을 달리해 수차례 방문한 뒤 여럿이서 논의하고 최종 등급을 결정한다.
◆ 술자리 논쟁을 멈추게 한 책, 기네스북
‘기네스 세계 기록(기네스북)’은 지구촌 곳곳에서 수립된 이색적인 최고·최초의 성취를 공식적으로 정리·인증하는 브랜드이자 연감이다. 현재는 별도 법인으로 분리됐으나 기네스북의 뿌리는 흑맥주로 유명한 양조 회사 기네스 맥주에서 비롯됐다.
기네스북 역사의 시초는 195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기네스 창업자의 4대손이자 전무이사였던 휴 비버 경은 아일랜드 웩스포드주의 한 사냥 모임에 참석했다가 주최 측과 ‘유럽에서 가장 빠른 사냥감 새’가 무엇인지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당시 참고할 만한 문헌에서도 정답을 찾을 수 없었다.
비버경은 이 일화를 떠올리며 술집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논쟁을 해결해 줄 정보를 제공해 준다면 이는 곧 훌륭한 맥주 홍보 방법으로 이어질 것이라 판단했다. 그는 곧바로 런던에서 기록 측정과 수집으로 이름을 날리던 쌍둥이 형제 노리스 맥허터와 로스 맥허터에게 각종 사실과 수치를 담은 책의 제작을 의뢰했다.
같은 해 11월30일, 기네스북의 전신인 법인 ‘기네스 슈퍼러티브’가 설립됐고 쌍둥이 형제는 주말과 공휴일을 포함해 주당 90시간씩 13주 반 동안 집필에 매달렸다. 이들은 천체물리학자부터 생리학자, 동물학자 등 각 분야의 지식인들과 여러 차례 서신을 주고받았다. 그 결과 1955년 10월3일 최초의 기네스북인 ‘더 기네스북 오브 레코드’가 출간됐다. 총 198쪽 분량에 수많은 사진과 그림을 수록한 호화 양장본 형태였다. 의외인 점은 ‘세계’ 기록 집계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기네스북의 제작 계기가 된 ‘유럽에서 가장 빠른 사냥감 새’ 답변은 책에 포함되지 않았다.
◆ 기록을 세우는 기네스북
처음에는 술자리 언쟁의 해결 도구나 재미있는 마케팅 상품 정도로 예상했으나 초판 5만부가 한 달 만에 매진되는 등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기네스북에 기네스북이 등재된 사건도 있었다. 1974년에는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저작권 도서로 기네스북이 등록됐고 2000년 ‘기네스 세계 기록 2000’은 컬러 양장본 단일 도서 중 가장 많은 부수를 인쇄하는 기록을 세웠다.
2001년 기네스북의 소유권이 기네스의 소유주였던 디아지오에서 애니메이션 ‘토마스와 친구들’을 제작한 영국의 독립 제작사 ‘걸레인’ 엔터테인먼트로 넘어가면서 맥주 회사와의 인연은 일단락됐다. 분리 이후에도 세계적인 흥행을 이어가며 2025년 기준 누적 판매량은 1억5700만 부를 돌파했고 공식 관리하는 세계 기록은 7만1571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