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정부가 옛 식민지 그린란드 주민들에게 과거 저지른 비인도적 행위를 놓고 거듭 고개를 숙였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제껏 덴마크가 그린란드를 위해 해준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을 던지며 덴마크·그린란드 사이를 이간질하는 데 따른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28일(현지시간) AP 통신에 따르면 덴마크령 그린란드 자치정부는 이날 덴마크 보건 당국이 과거 수십년간 그린란드에서 원주민 여성과 소녀들에게 강제 피임을 시행한 사건에 관한 조사 보고서들을 공개했다. 이는 덴마크가 1960∼1970년대 그린란드에서 집중적으로 시행한 강제 피임 정책을 다루고 있다. 지금은 그린란드가 독립국에 준하는 자치권을 누리고 있으나, 당시만 해도 그냥 덴마크의 식민지나 다름없었다.
덴마크는 그린란드 원주민인 이누이트족을 덴마크에 동화시키길 원했다. 그러려면 이누이트족의 높은 출산율부터 낮춰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덴마크 보건 당국은 이누이트족 여성과 소녀들에게 당사자 동의도 없이 강제로 자궁 내 피임 장치(IUD)를 삽입하도록 했다. 덴마크는 “그린란드의 미성년자 출산 비율이 높고, 일부 부모는 양육 능력이 뒤떨어진다”며 이 같은 조치를 정당화했다.
IUD 강제 삽입은 1960년 시작해 1991년까지 시행됐다. 이누이트족 여성과 소녀 약 4500명이 피해자에 해당한다. 이들 가운데 140여명이 지난 2024년 덴마크 정부를 상대로 630만달러(약 87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에서 심리가 진행 중인 가운데 2025년 덴마크는 뜻밖의 위기를 맞았다. 미국 대통령으로서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트럼프가 집권 1기 때보다 훨씬 강력하게 그린란드 영유권 확보를 추진하고 나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2인자’ JD 밴스 부통령이 총대를 멨다. 2025년 3월 부인 우샤 밴스 여사와 함께 그린란드를 방문한 밴스는 주민들을 향해 “그동안 덴마크가 그린란드를 위해 뭘 해준 게 있느냐”고 외쳤다.
이어 “1721년부터 섬을 지배해 온 덴마크와의 관계를 끊으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그린란드 주민들에게 ‘자결권’이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사실상 덴마크로부터의 독립 운동에 나설 것을 선동한 셈인데, 덴마크·그린란드 간 이간질 시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황한 덴마크 정부는 그린란드 주민들 마음 속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게 급선무라고 판단했다. 이에 IUD 강제 삽입 피해자들에 대해 법원 판결과 무관하게 정부가 먼저 고개를 숙이고 선제적 배상 조치도 병행하기로 했다.
2025년 9월 그린란드 수도 누크를 찾은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우리는 피해자들에게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역사의 추악한 이면을 숨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덴마크 정부와 의회는 피해자 1인당 4만6500달러(약 6400만원)의 배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날 그린란드 자치정부의 관련 보고서 채택을 계기로 프레데릭센 총리는 덴마크·그린란드 공동 ‘진실화해위원회’를 구성해 진상을 완전히 규명하고 피해자들의 한(恨)을 달랠 방안도 모색하기로 했다. 그는 “덴마크와 그린란드가 신뢰, 존중, 평등이란 3가지 초석 위에 미래 협력을 위한 공동의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다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