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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앞둔 프랑스에 번지는 ‘나토 회의론’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제2차 세계대전 초반 나치 독일에 패해 4년간 굴욕적인 점령 통치를 겪은 프랑스는 종전 후 더는 예전과 같은 강대국이 아니었다. 1949년 출범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서 프랑스가 미국·영국에 밀려 존재감이 ‘제로’(0)에 가까웠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1950∼1960년대 미국은 나토의 주요 현안을 다룰 때 프랑스는 쏙 빼고 영국하고만 협의한 뒤 결정을 내리곤 했다. 당시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안보를 미·영에 의존해선 영영 이류국 신세에서 못 벗어난다’는 절박감 아래 핵무기 개발에 전력을 기울였다. 프랑스 핵무장이 사실상 완성된 1966년 드골은 나토 탈퇴를 선언했다.

 

프랑스 제5공화국 초대 대통령 샤를 드골(1890∼1970). 1966년 프랑스의 핵무장을 완성한 뒤 나토 탈퇴를 선언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프랑스 제5공화국 초대 대통령 샤를 드골(1890∼1970). 1966년 프랑스의 핵무장을 완성한 뒤 나토 탈퇴를 선언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1991년 옛 소련 해체와 냉전 종식 후 프랑스는 딜레마에 봉착했다. 서방 공동의 적(소련)이 사라진 마당에 프랑스의 핵무기 등 군사력은 용도가 폐기된 것처럼 보였다. 1992년 프랑스 유력 언론인 조르주 발랑스는 ‘세계의 지배자들’이란 저서를 펴냈다. 국내에는 ‘미국 일본 독일이 세계를 지배한다’(1995)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이 책은 “전쟁의 시대는 이제 영영 끝났다”는 전제 아래 경제 대국인 미국·일본·독일 3국이 국제 질서를 주도하는 가운데 프랑스는 부차적 역할에 머물 것이란 비관적 관측을 내놓았다. 물론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이 같은 전망은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핵무기 보유국으로서 프랑스의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프랑스는 2009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시절 나토에 복귀하는 결정을 내리긴 했다. 다만 40년 넘게 나토 밖에 머물며 프랑스의 리더십은 이미 크게 약화한 뒤였다. 영국, 독일은 물론 국력 면에서 프랑스에 못 미치는 이탈리아, 네덜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등 국가들도 배출한 나토 사무총장이 프랑스에선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한때 나토가 싫다며 뛰쳐나간 나라 국민에게 과연 나토 운영을 맡길 수 있겠느냐’ 하는 반감 때문일 것이다. 2017년 취임한 중도 성향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그나마 나토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토의 맹주’라고 할 미국의 태도가 달라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의 나토 동맹국들이 위협에 처했을 때 미국이 도와줘야 한다는 원칙에 무척 회의적이다.

 

오는 2027년 프랑스 대선에서 격돌할 극우 진영 마린 르펜 후보(왼쪽)와 극좌 성향 장뤼크 멜랑숑 후보. 두 사람 모두 미국 주도의 나토에 적대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로이터연합
오는 2027년 프랑스 대선에서 격돌할 극우 진영 마린 르펜 후보(왼쪽)와 극좌 성향 장뤼크 멜랑숑 후보. 두 사람 모두 미국 주도의 나토에 적대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로이터연합

마크롱은 오는 2027년 5월이면 물러날 예정이다. 대선을 앞두고 프랑스는 극우 진영의 마린 르펜부터 극좌 성향의 장뤼크 멜랑숑까지 좌우를 막론하고 주요 후보들 모두가 미국 주도의 나토에 적대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르펜은 “나토의 통합 군사 지휘 체계에서 프랑스가 빠지길 원한다”고 했다. 멜랑숑은 아예 “프랑스의 나토 탈퇴를 바란다”고 선언했다. 이념을 떠나 미국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한 트럼프에 대한 불만, 그리고 핵무기 보유국으로서 자주 국방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의 발로(發露)일 것이다. 만약 프랑스가 나토를 뛰쳐나간다면 이는 국제사회에서 각자도생(各自圖生)이 일명 ‘뉴노멀’(New Normal)로 자리잡는 결정적 계기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