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3년간의 베이징 특파원 생활이 끝난다. 이 글은 베이징에서 쓰는 마지막 ‘특파원리포트’다.
그간 이 코너에 칼럼을 몇 편이나 썼나 싶어 찾아보니 모두 47편이었다. 글 중에는 중국의 ‘우주 굴기’가 있었고 휴머노이드 로봇이 있었다. 톈안먼 사태와 신장위구르자치구, 한한령과 한·중 관계도 여러 차례 등장했다. 베이징의 폭우도, 밤 10시 집으로 찾아온 공안도 글감이 됐다.
첫 글은 ‘궈차오(애국 소비)와 아이폰’이었다. 중국에 도착한 첫날, 베이징 시내 쇼핑몰의 화웨이 매장은 당시 출시된 신형 스마트폰 ‘메이트60 프로’를 보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미국의 제재를 뚫고 7나노 공정 반도체를 탑재한 제품이었다. 중국인의 애국소비 열풍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생각이 바뀐 것은 일주일이 지나서였다. 베이징 번화가 싼리툰의 애플스토어에는 아이폰15를 사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건물 밖까지 줄이 이어졌다. 당국이 공무원의 아이폰 사용을 제한한다는 보도가 나오던 때였다. 화웨이 매장의 인파도 중국이었지만 애플 매장의 긴 줄 역시 중국이었다.
사실 지난 3년은 첫 글의 그 장면을 되풀이한 시간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를 알았다고 생각할 때마다 다음 장면이 앞선 판단을 고쳐 쓰게 했다.
분명하게 바뀐 것도 있다. 가장 먼저 체감한 것은 중국 기술과 산업의 속도였다. 중국산 제품을 ‘대륙의 실수’나 값싼 복제품으로 설명하던 말은 빠르게 낡아갔다. 중국 자체 제작 중형 여객기 C919를 타고 항저우에 갔고, 그곳에서 세계를 놀라게 한 딥시크의 본사 건물을 바라봤다.(들어가지는 못했다.)
지난해 하프마라톤에서 자주 넘어지던 중국의 휴머노이드 로봇들은 올해 인간 세계기록보다 빠르게 결승선을 통과했다. 과장과 거품이 섞여 있더라도 제품을 만들고 현장에 넣어 실패의 데이터를 쌓는 속도는 가볍게 볼 수 없었다.
변화는 공장과 연구실에만 있지 않았다. 부임 전에는 베이징이 건조한 곳이니 가습기를 꼭 챙겨가고 보습에 신경 써야 한다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다. 하지만 실제 겪은 베이징의 여름은 달랐다. 지난해 베이징 여름 강수량은 1961년 이후 가장 많았다. 올해도 7월 중순까지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비가 더 많이 내렸다. 이후 누계는 지난해의 기록적 폭우에 미치지 못했지만 ‘건조한 북방의 수도’라는 상식은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최근 네팔·중국 접경에서는 빙하를 낀 고산 사면이 무너지면서 토석류와 급류로 이어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번 사태를 곧바로 기후변화 하나로만 설명할 단계는 아니겠지만 온난화가 빙하와 영구동토, 산사면을 불안정하게 만들어 재해가 일어날 조건을 키운다는 경고가 나온다.
반대로 달라지지 않았거나 더 선명해진 것도 있다. 부임 8개월째이던 어느 금요일 밤 10시, 공안 4명이 집으로 찾아왔다. 톈안먼 사태 35주년을 앞두고 취재 계획을 묻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가짜뉴스 말고 ‘진짜 중국’을 보도해달라고 했다. 공안이 늦은 밤 외신기자의 집을 찾아온 일 역시 내가 겪은 진짜 중국이었다.
신장위구르자치구의 한 광장에서 본 장면도 잊기 어렵다. 시민들은 음악에 맞춰 흥겹게 광장무를 추고 있었다. 그 인파의 주위를 곤봉을 든 경찰이 돌았고 한쪽에는 특수경찰과 경찰견, 장갑차가 배치돼 있었다. 사람들의 춤만 떼어내도, 장갑차만 확대해도 신장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었다.
중국 정치도 비슷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실각설은 사실이 아니었지만 그 설을 키운 정치의 불투명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한한령은 공식적으로 존재한 적이 없다는데 한국 가수의 단독 공연을 가로막는 벽은 현실에 존재했다.
여기서는 중국 이야기를 주로 썼지만 적지 않은 글의 끝은 한국을 향했다. 중국의 기술 발전을 평가절하하면 마음은 잠시 편할 수 있다. 반대로 중국이 곧 모든 분야에서 한국을 앞설 것처럼 부풀리면 공포만 남는다. 필요한 것은 단순한 찬탄이나 폄하가 아니라 중국의 변화를 보며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는 자세일 것이다.
3년간 중국을 취재하면서 아는 것은 조금 늘었지만 중국을 안다고 말하기는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 지금도 중국에 대한 판단은 수정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