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단독] “에이스들 다 끌려가”… 일선署, 업무 가중에 부실수사 논란 [심층기획-시험대 선 ‘공룡경찰’]

입력 :
폰트 크게 폰트 작게
<1회> ‘민생’보다 ‘특수’

검·경수사권 조정 2021년 이후
각종 전담팀 만들어 존재감 과시

본청·시도청 수사관 34.2% 늘 때
일선서선 9.2% 증가 그쳐 ‘대조’

수사권 조정 때 수사관 ‘대이탈’
보완요구로 업무 늘면 재현 우려

중수청 출범 땐 경쟁 구도 예측
경찰, 하반기 2000명 추가 배치

지난해 서울의 한 경찰서 형사팀에서는 과장이 검·경 합동수사팀에 파견 가면서 ‘비상’이 걸렸다. 직무대리를 맡은 팀장이 과장 일을 겸하자 팀원들 업무량이 폭증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건까지 맡은 팀원들은 “체감상 일이 2배 정도 늘어난 것 같았다”고 토로했다.

경찰청 3대 특검 특별수사본부. 연합뉴스
경찰청 3대 특검 특별수사본부. 연합뉴스

당시 팀장인 A 경감은 “상급자를 대리하게 되면 교육도 없고 권한도 없는데 책임만 늘어난다”며 “사건이 발생했을 때 시작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고 회상했다. 다른 수사관은 “경찰은 계급정년이 있기 때문에 본청이나 시도청 단위 전담수사팀이 꾸려지면 승진을 위해 지원하려 한다”며 “일선서는 최근 인원 증가도 없었기 때문에 야근만 많아지고 새벽에도 불려 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특수수사 집중에 일선서는 인력난

12·3 비상계엄 이후 현직 대통령을 수사할 정도로 경찰의 특수수사 역량이 주목받고 있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경찰 본연의 역할인 민생 치안이 흔들리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찰이 각종 전담수사팀을 만들어 수사역량을 입증하는 사이 일선서에서는 인력난에 시달리며 부실수사 논란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30일 경찰청에 따르면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진 2021년 이후 올해까지 기획수사나 인지수사 위주인 본청 및 시도청 수사관 수는 6993명에서 9385명으로 34.2% 늘었다. 반면 고소·고발 등 민생사건을 주로 처리하는 일선 경찰서 수사관 수는 2만6430명에서 2만8865명으로 9.2% 증가에 그쳤다. 검찰개혁 이후 경찰 조직이 민생수사보다 특수수사에 힘을 싣고 있는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 일선서의 한 경감은 “경찰서에서 일 잘하는 에이스들은 청으로 다 끌려가게 된다”며 “새로운 인력이 오긴 하지만 경험이 없어 막상 업무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강원의 한 경찰도 “업무 부담이 크기 때문에 지방은 수사 기피현상이 심하다”며 “서울에는 경감도 팀장 하기가 힘든데 지방에서는 경위가 팀장을 맡을 정도로 질적 저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일선서는 국민과 밀접한 영역의 수사를 맡는다.

각종 고소·고발 사건을 비롯해 형사·실종 사건, 여성·청소년 사건 등이 1차적으로 다뤄진다. 제주여성 실종 허위종결 사건 등 주요 이슈가 되는 사건이 터지면서 경찰은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일선서는 대책에 맞추기 위해 다시 인력을 짜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한다. 이번 사건도 적은 인력이 하나의 원인이 됐다. 전국 일선서에 설치된 148개 실종전담팀 중 111개팀은 인력난에 따라 야간에 1명씩 당직을 세우고 있는데 1명의 일탈을 시스템이 막지 못한 것이다.

경찰은 당직자가 혼자 허위로 사건을 종결하는 것을 막기 위해 2명 이상 근무를 내걸었지만 현장에서는 “현재 인력으로 불가능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이것도 규모가 큰 1급서의 얘기지 작은 3급서에서는 경찰관 한 명이 실종, 변사, 피싱 사건 등을 도맡아야 하는 실정이다.

12.29 여객기 참사 특별수사단. 연합뉴스
12.29 여객기 참사 특별수사단. 연합뉴스

일선서의 인력 과부하가 심화하자 경찰은 시도청으로 사건을 많이 보내는 추세다.

한 총경 계급 경찰은 “시도청장 입장에서는 주요사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더 민감하기 때문에 사건을 시도청으로 가져오는 것을 아무래도 신뢰할 수 있다”며 “피싱 사건 등은 대부분 시도청으로 넘기는 등 청이 사건을 가져오는 기준이 낮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도청도 각종 전담수사팀과 검경 합동수사본부, 특별검사 파견으로 인력난을 겪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형소법 개정에 수사인력 대탈출 우려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검사의 직접 보완수사가 사라지고 수사 요구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일선서 부담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있었던 2021년에도 일선서의 업무 부담 증가로 3664명의 수사관이 수사 전문 자격인 수사경과를 반납하는 ‘대탈출’ 현상이 나타났다. 보완수사 요구가 오면 경찰은 최대 2개월 안에 이행해야 해 업무량이 늘어나는데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이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경찰 수사인력 이탈은 2021년 265명, 2022년 338명, 2023년 304명, 2024년 373명, 지난해 410명으로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도 5월 기준 75명이 이탈했다.

경찰청은 보완수사 요구에 대비하기 위해 수사 완결성을 높이겠다는 대책을 내놨지만, 현장에선 제시간에 고소·고발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신속성과 완결성을 동시에 가져가기 쉽지 않다고 푸념한다.

장윤기 살인살건 관련 진상규명 특별수사단. 연합뉴스
장윤기 살인살건 관련 진상규명 특별수사단. 연합뉴스

10월2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이 출범하면서 경찰과 주요사건 수사 경쟁 구도가 나타날 우려도 있다.

중수청은 부패, 경제, 마약, 방위사업, 국가보호, 사이버, 법왜곡죄 등 7대 범죄를 다루지만 2874명 규모의 조직이 처리할 수 있는 사건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경찰 국가수사본부와 수사 중복 및 수사력에 대한 경쟁 구도가 발생하면서 특수수사에 경찰 수사인력이 더 투입될 것이란 지적이다.

경찰은 최근 행정안전부에 제주 실종사건 등을 보고하면서 경찰 인력 확충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내부적으로도 하반기 인사에서 기동대 인원 등을 조정해 수사 부서에 2000여명을 추가 배치할 예정이다.

이웅혁 건국대 교수(경찰학)는 내근직 행정 경찰을 일반 공무원으로 돌리고 제복을 입은 경찰들은 민생 치안과 수사 현장에 우선적으로 보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교수는 “미국의 경우 경찰 조직의 30%가 내근하는 일반 공무원”이라며 “한국 경찰의 첫 번째 개혁 과제가 축소 지향적이고 일 안 하고, 숨기는 문제인데 경찰 조직은 현장에서 일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계급도 현재 11개 계급에서 6개 계급으로 낮춰 승진 시험에 몰두하는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도 했다.

이건수 백석대 교수(경찰학)도 현장 경찰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 경찰서에 들어오는 사기 사건이 한 달에 1000건을 넘고, 구속사건은 10일 안에 검찰에 보내야 하는데 보완수사 요구까지 오면 현장의 시간은 빠듯하다”며 “경찰이 일을 할 수 있는 여건과 권한, 책임을 제대로 줬느냐도 따져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