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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동칼럼] 관행이 헌법을 앞설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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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초유의 대법관 후보 임명 거부
‘선출권력 우위’ 명분 사법부 겁박
‘코트 패킹’ 막을 대의(大義) 우선
정쟁보다는 제도적 한계 보완 시급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악당 프로크루스테스는 여행자를 붙잡아 자신의 철제 침대에 눕혔다. 사람의 몸이 침대보다 길면 일부를 잘라냈고, 짧으면 억지로 늘렸다. 어떻게든 자신의 기준과 욕구에 따라 잔혹하게 끼워 맞추는 행위를 서슴지 않은 것이다. 자기만이 절대적 기준이다. 우리 사회가 그렇다. 법을 무시하는 일이 일상화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헌법 위에 ‘국민정서법’이 있다는 말처럼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한 정책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청와대가 조희대 대법원장의 대법관 후보 제청에 대한 국회동의 절차를 밟지 않기로 하면서 권력기관 간의 정면충돌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대통령이 대법원장이 제청한 인사를 돌려보낸 건 1987년 개헌 이후 초유의 일이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여당은 아전인수식 해석으로 사법부를 압박하고 있다. 청와대는 ‘절차적 완결성’을 이유로 “후보추천위의 추천 내용을 존중해 신속히 재제청 절차를 진행해 달라”고 요구했다.

김기동 논설실장
김기동 논설실장

더불어민주당도 ‘관행’과 ‘헌법 정신 훼손’을 명분으로 가세했다. 여당이 그럴 자격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2014년 17대 국회부터 제1야당이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맡아오던 관행을 깬 건 여당이다. 상임위원장까지 일방 배분해 놓고도 ‘관행’ 운운하는 건 모순이다. 마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보는 듯하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사법부 장악과 ‘코드인사’다. 과거 켜켜이 쌓여온 정치권과 사법부 간 불신이 트리거가 된 건 분명하다. 문재인정부 시절 사법농단 의혹 당시 출발한 갈등은 이재명정부 들어 ‘선출권력 우위론’까지 등장하며 더욱 커졌다. 법왜곡죄와 재판소원제, 대법관 증원법(법원조직법 개정안) 등 논란이 많은 법도 사법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국회를 통과했다.

대법관 임명을 둘러싼 충돌은 대법관 증원법과 무관치 않다. 2028년 3월부터 해마다 4명씩 2028년부터 매년 4명씩, 3년간 총 12명의 대법관이 늘어난다. 퇴임하는 기존 대법관을 포함하면 전체 26명 가운데 22명을 이재명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다.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 형해화는 대법관 인적 구성을 유리하게 만드는 ‘코트 패킹’(Court Packing·법원 장악)으로 이어진다. 야당이 “대법관 쇼핑”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헌법 제104조 제2항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문장의 함의(含意)는 엄중하다. 헌법기관 세 곳(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의 의견이 한군데로 모여 새로운 대법관이 탄생한다는 얘기다. 법원조직법 41조2는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자를 제청할 때마다 대법관 후보추천위를 구성하고, 후보자를 추천하면 해당 추천위는 해산된 것으로 규정한다. 청와대나 여당이 주장하는 대통령의 ‘제청 거부권’ ‘재제청 요구권’을 명시적으로 부여한 문구는 없다.

삼권분립은 헌법에 명시돼 있다. 하지만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의 권한은 ‘제왕적’이라는 수식어에서 보듯 막강하다. 거대 여당은 거수기 역할에 머물고 있다.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의 유일한 통제수단이 대법원장의 제청권일지도 모른다. 물론 대통령의 임명권 역시 단순한 형식적 역할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그렇다고 대통령의 대법관 거부권으로 ‘입맛에 맞는 후보’가 나올 때까지 무한 제청을 반복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행정권의 과도한 사법 인사 개입은 법원의 중립성을 깨트리고, 피해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당하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관행을 지키지 않은 것이 위헌·위법은 아니다. 관행이 헌법보다 앞설 순 없지 않은가. 오히려 법률에도 없는 관행을 법적 의무처럼 주장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절차와 협의라는 명분이 헌법상 사법부 독립이라는 대의를 넘어설 수는 없는 논리와도 맞닿아 있다. 모든 불행의 시작점은 입법·사법·행정 간 견제와 균형 시스템이 붕괴하는 순간이다. 조 대법원장 스스로 삼권분립의 마지막 끈을 놔버리는 우(愚)를 범해선 안 된다. 정치권도 대법관 인선을 정쟁의 도구로 삼는 일을 그만두고, 제청권과 임명권의 명확한 한계를 제도화해 성숙한 법치주의를 확립하는 게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