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누와코트 비두르에 위치한 마이틸리 트리슐리 군사 훈련장 앞에 31일(현지시간) 오전 7시부터 20여명의 사람이 모였다. 오후가 되자 100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사망자와 구조자 명단을 확인했다. 대홍수 6일째 각지에서 수습된 시신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아 일대에선 바람이 불 때마다 부패하는 냄새와 피비린내가 났다. 이 때문에 군인들은 마스크를 서너개씩 착용하고 버티고 있었다. 초소를 지키던 한 군인은 “어제도 조각난 시신 4구가 수습됐다”며 “악취가 심해 시신이 들어오는 대로 카트만두로 보내려고 하지만 헬기 상황이 불가능해 계속 부패한다”고 말했다.
싯다람(46)도 이곳을 찾았다.
그가 경찰에게 요청한 것은 ‘직접 수색하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싯다람은 이번 대홍수로 어머니와 딸, 제수를 잃었다. 그는 “집은 건너편 마을인 트리슐리 바자르(시장) 근처”라며 “거리로는 멀지 않지만 길이 끊겨 수도를 지나 이곳으로 오면서 꼬박 하루가 걸렸다”고 말했다. 집 주변으로 가기 위해서는 헬기를 타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싯다람은 “시신이든 사람이든 집 근처를 수색하면서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고 싶다”고 말했다.
비두르는 수도 카트만두에서 약 56㎞ 떨어진 지역으로 트리슐리 강 중류 마을이다. 빠른 유속과 계곡이 있어 래프팅으로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이번 대홍수 피해가 심했던 곳 중 하나다.
대형 재난이 발생했지만 정부의 인프라와 대응 역량은 역부족이다.
이날 군부대 앞에는 실종자를 찾는 가족들이 명단을 하나씩 확인하며 새로운 소식이 있는지 살폈고, 경찰의 실종자 접수 서류를 작성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두카스 야덥(25)은 “군인인 사촌동생이 연락이 두절됐다”며 “수해가 시작된 라수와 지역에 발령받은 지 4일 만에 대홍수가 일어났다”고 했다. 이곳에서 300㎞ 넘게 떨어진 곳에서 왔다는 그는 “군인이라서 페이스북에도 수소문해보고 신문에도 제보해봤지만 아무런 연락을 받을 수 없었다”며 “근무 지역 인근 캠프이기 때문에 군인들끼리는 연락을 주고받지 않을까”라고 기대했다. 야덥은 “통신이 어려운 지역에서 작업을 하고 있어 연락이 안 되는 건지, 수해로 실종된 건지, 사망한 건지 알 수가 없어 불안하다”고 덧붙였다.
실종자들이 숨진 채 강 하류 지역에서 속속 발견되고 있지만 이를 처리할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고, 병원들도 마비됐다.
카트만두에서 밤부터 스쿠터를 타고 왔다는 로스나 라마(33)는 “어머니가 홍수 때 대피하며 골절상을 입어 폐에 물이 찼는데 병원에서 진료가 안 되고 있다”며 “병원을 가려면 헬기를 타야 해서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응급 환자가 많아서 치료가 안 되는데 어머니가 어제부터 숨이 잘 안 쉬어진다고 말해 마을로 들어가 카트만두로 이송하려고 이곳에 왔다”고 했다.
사고가 발생한 지 5일이 지났지만 네팔의 열악한 전산체계 탓에 가족들은 마을 주변을 전전하며 행방을 찾고 있다.
전날부터 이틀째 이곳을 찾은 람 라자(39)는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헬기가 뜰 수 있어 이틀째 대기하고 있다”며 “군인들이 헬기를 이용할 수 있을 때 선착순으로 사람을 모집하고 있어 무한정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싯다람은 “참사가 발생한 이튿날 바로 실종 신고를 했다”며 “어떻게 수색이 이뤄지는지, 통신이 끊겨서 연락이 안 되는지, 사망한 건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고 여러 병원과 정부 시설을 다니면서 가족들이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뿐”이라고 했다. 생업도 뒤로하고 있다. 용접 일을 하던 싯다람은 “고용주가 있지만 가족들을 찾는 데에 집중하느라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합동 수색대응팀도 한국인 연락두절자 9명에 대한 수색을 이어가고 있다.
네팔 대홍수 현장에서 구조된 두산에너빌리티 현장소장은 전날 오후 “현지에 남아 최대한 수색에 도움이 되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6일 발생한 대홍수로 인해 무너져내린 어퍼트리슐리-1(UT-1) 수력발전소의 현장 관리자였던 그는 깡마른 몸에 지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였으나 ‘수색을 돕겠다’고 3차례나 반복해 말했다. 사고를 당한 한국인의 첫 언론 인터뷰였다.
어두운 표정으로 취재진 앞에 선 소장은 “현재까지 연락이 닿지 않는 직원분들이 있어 심리적으로 비통하고 애통한 마음뿐”이라며 “머릿속에 어떠한 생각도 없고 오로지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수색에 도움될 수 있는 방향으로 지원하려고 한다”고 했다.
소장은 수색이 마무리될 때까지 네팔에 남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현장 여건을 누구보다 제일 많이 안다고 판단해 여기 남아서 수색팀과 정부 관계자들에게 최대한 지원하겠다”며 “하루속히 연락이 닿지 않는 직원들이 가족들 품으로 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참사가 발생하던 당시에 대해 “사고 발생 당시 터널 안에 있어서 현장을 보지는 못했다”며 “상황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밖에 나왔을 때는 이미 사방이 물보라로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범람한 물이 발전소 건설 현장의 오른편을 덮치면서 지대가 높은 일부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피해가 작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소장은 “시간이 나고서야 현장이 보였다”며 “건너편 캠프 동의 상황은 즉시 확인하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사고가 발생하고 3∼4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현장의 모습이 파악된 것이다. 그는 “최선을 다하겠다”며 인사를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참사를 겪은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기자회견은 짧게 진행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