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네팔 재난당국 등에 따르면 네팔과 중국 티베트 접경을 덮친 대홍수로 네팔에서만 903명이 숨지고 4247명이 실종된 가운데 건물 잔해에 갇혀 약 60시간을 버틴 6세 소녀가 구조돼 부모와 다시 만났다. 또 물이 학교에 닿기 몇 분 전 비상벨을 울려 학생 1643명을 대피시킨 교장, 아내의 사리를 밧줄로 삼아 진흙에 갇힌 여성들을 끌어올린 순례자 부부의 사연도 함께 전해졌다.
◆ 고양이 울음인 줄 알았는데…잔해 아래 있던 아이
이날 외신에 전해진 ‘생환 기록’을 종합하면 마니샤 마가르는 지난 28일 라수와 지역 티무레의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발견됐다. 홍수가 덮친 지 약 60시간 만이었다.
생존자를 찾던 구조대원들은 잔해 아래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를 처음에는 고양이 울음으로 여겼다. 소리가 난 곳을 따라 흙과 구조물을 걷어내자 머리를 제외한 몸 대부분이 진흙에 묻힌 마니샤가 모습을 드러냈다. 구조에는 약 2시간이 걸렸다.
구조 직후 마니샤는 살아 있었지만 거의 반응하지 못했다. 구조대는 헬리콥터를 요청했으나 날씨가 나빠 곧바로 병원으로 옮기지 못했고, 티무레 국경초소로 데려가 체온을 유지하며 응급처치를 했다.
물을 마신 마니샤는 의식을 되찾았고 구조대는 삶은 쌀을 우린 물을 먹였다. 밤을 보낸 뒤 29일 오후 헬리콥터로 수도 카트만두의 티칭병원 소아응급실에 이송됐다.
마니샤의 부모도 홍수에서 살아남아 같은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고 전했다. 병원 측은 마니샤가 안정적인 상태에서 회복하고 있다고 밝혔다.
◆ 비상벨 울린 교장, 1643명 살리고 동료 둘을 잃었다
누와코트군 트리부반 트리슈울리 중등학교 교장 라젠드라 다와디(47)는 지난 26일 오전 9시20분쯤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마을이 강에 삼켜졌다는 말이었다.
학교는 강보다 약 60m 높은 3층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근처 강철 교량과 높이가 거의 같아 영어 교사이기도 한 다와디 교장 자신도 처음에는 안전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창밖으로 물이 차오르는 것을 확인한 뒤 그는 비상벨을 울렸다.
교사들에게 학생을 교실 밖으로 내보내라고 지시하는 동시에 운행 중이던 통학버스는 한 대를 빼고 모두 회차시켰다. 학생 1643명과 교사들은 학교 뒤 언덕의 보리수나무 아래로 뛰었다. 물이 3층 건물을 지운 것은 그 몇 분 뒤였다.
학생 가운데 숨진 사람은 없었다. 대신 교직원 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회 교사 산토스 파리야르(32)는 아침을 준비하려 강가 셋방으로 돌아갔다가 휩쓸렸고, 학교 관리인 술탄 라마는 학교 문을 닫으러 되돌아간 뒤 돌아오지 못했다.
다와디 교장은 자신의 판단에 대해 “내가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었겠나”라고 찹찹한 심경을 드러냈다.
◆ 사리를 밧줄로, 망고나무를 붙잡고
카일라스산 순례에 나선 인도 타밀나두 출신 순례자 21명은 티무레의 샤브루베시∼케룽 산길에서 급류를 만났다. 물이 차량 1.5m 앞까지 밀려온 순간 이들은 운전석 쪽 문으로 빠져나와 비탈을 기어올랐다.
언덕에 올라선 라트나쿠마르는 아래 진흙탕에 여성들이 갇혀 있는 것을 보고 되돌아 내려갔다. 아내 풍구잘리가 입고 있던 사리를 벗어 매듭을 지어 내리자 그는 그것을 밧줄로 삼아 여성 4∼5명을 차례로 끌어올렸고, 결국 순례단 21명은 모두 살아 지난 29일 밤 귀국했다.
라수와 하류 비두르에서는 24세 노동자 비벡 쿠말이 새로 지은 집 밖에서 깊이 1.5m 화장실 구덩이를 파고 있었다. 쉬익 하는 소리가 들렸고 지상에 있던 동료 네 명이 나와서 달아나라고 소리쳤다. 그가 구덩이를 빠져나왔을 때 동료들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달리기 시작했다. 그때 물의 벽이 지진처럼 우르릉 쏟아졌다”고 그는 말했다. 물살에 이어 큰 돌에 맞아 오른쪽 다리를 다친 그는 눈앞의 망고나무 밑동을 붙잡았다. 자신이 일하던 집이 물에 지워지는 것을 그 자리에서 봤다. 그를 끌어낸 것은 경찰이었다.
쿠말은 “망고나무가 없었다면 나는 휩쓸려 죽었을 것”이라고 했다.
◆ 허리까지 잠긴 남편, 73세 아내는 왼팔을 놓지 않았다
누와코트 트리슈울리 바자르에서 트리슈울리강과 약 300m 떨어진 집에 있던 자리 바르데와(73)와 남편 박타 바하두르 바르데와(69)는 지난 26일 이웃들이 “아요, 아요(온다)”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강바닥에 흙먼지가 일고 물이 밀려왔다. 자리 바르데와는 강이 세상 전체를 삼킬 것처럼 불어났다고 당시를 전했다.
고지대로 달리는 사이 뒤따라오던 남편이 허리까지 진흙에 잠겼다. 자신도 허벅지까지 물이 찬 상태에서 그는 남편의 왼팔을 붙잡고 끌어당겼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모르지만 남편을 살려냈다”고 그는 말했다.
남편은 왼쪽 팔꿈치가 부러지고 왼쪽 다리를 다쳤다. 자리 바르데와는 지난 29일 카트만두의 아들에게 갔고, 살던 곳으로는 무서워서 돌아가지 못하겠다고 했다.
◆ 30∼50구 자리뿐인데 시신 233구가 밀려왔다
한편 살아남은 사람들의 기록이 전해지는 사이 피해 지역의 시신 수습·보관 능력은 한계에 달했다.
홍수 발생 지점에서 약 160㎞ 떨어진 치트완 바라트푸르 강둑까지 시신이 떠내려왔지만 현지 공공·민간 영안실은 약 30∼50구만 보관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국은 정부 시설과 지역 단체 건물 등을 임시 안치소로 바꾸고 냉방시설과 드라이아이스를 확보하고 있다. 안내소를 설치하고 유해 사진도 공개해 실종자 가족의 신원 확인을 돕고 있지만, 물속에 오래 있었던 시신이 몬순 무더위 속에서 빠르게 부패해 육안 확인이 어려운 상황이다.
치트완 당국은 지난 29일까지 수습한 시신 233구 가운데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229구를 대상으로 바라트푸르 광역시 1구역 데브가트 공터에서 임시 매장 절차에 들어갔다.
이 가운데 96구가 이날 먼저 매장됐고 나머지도 신원 확인 자료를 확보한 뒤 순차적으로 묻기로 했다.
치트완 경찰은 향후 유족의 DNA와 일치하면 정확한 매장지를 찾아 유해를 다시 발굴해 장례를 치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네팔 외교부도 국제적 기준에 따라 임시 매장을 진행하며 유족이 확인되면 유해를 인도하겠다고 밝혔다.
◆ 맑은 하늘 아래 무너진 빙하…사망 903명·실종 4247명
네팔 재난당국은 31일 사망자 903명, 실종자 4247명을 집계했다. 실종자 가운데 592명은 외국인이다. 티베트에서는 30일 기준 16명이 숨지고 546명이 실종된 것으로 보고됐다. 수색이 이어지면서 피해 규모는 계속 바뀌고 있다.
이번 홍수는 지난 26일 오전 히말라야 산맥의 네팔 라수와 지역과 티베트 접경 일대를 덮쳤다.
랑탕 리룽 봉 일대에서 폭 약 600m 규모의 빙하와 암반이 약 1200m 아래 렌데 콜라 협곡으로 떨어지며 얼음과 바위, 녹은 물이 한꺼번에 강으로 쏟아진 것으로 분석됐다.
붕괴 충격은 규모 5.2의 지진파로 세계 각국 지진계에 기록됐고 3시간 뒤 규모 4.2의 2차 붕괴가 이어졌다.
사고 당시 현지 날씨는 맑았다. 비 없이 내려온 물살은 초기 22㎞ 구간에서 평균 시속 193㎞로 하류에 닿았다.
생존자 구조의 분기점으로 여겨지는 초기 72시간은 지났지만 네팔군과 경찰, 해외 전문팀은 피해가 집중된 라수와와 누와코트 지역, 수력발전소 터널을 중심으로 수색을 이어가고 있다.
실종자 상당수는 두 지역의 수력발전 11개 현장과 터널에서 일하던 인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