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신 다음 날을 책임지던 숙취해소제가 ‘연애’에 빠졌다.
숙취 증상을 얼마나 줄여주느냐는 기능성 경쟁을 넘어 썸과 데이트, 친구와의 술자리 같은 2030세대의 일상 속으로 브랜드를 끌어들이는 마케팅이 잇따르고 있다. 제품을 직접 설명하기보다 누군가를 챙겨주고 싶은 순간이나 설레는 만남에 제품을 등장시키는 방식이다.
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삼양사의 숙취해소 브랜드 ‘상쾌환’은 신규 광고 캠페인 ‘우리들의 상쾌환 더 무비’를 공개했다.
이번 광고는 지난해 10월 시작한 ‘우리들의 상쾌환’ 캠페인의 두 번째 시리즈다. 핵심 소재는 숙취가 아닌 ‘연애’다.
광고에서는 술자리와 귀갓길 버스, 대학교 학과 휴게실, 소나기가 내리는 저녁 골목 등 서로 다른 공간에서 남녀가 상쾌환을 건네며 가까워지는 과정이 이어진다. “우리들의 드라마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는 문구를 앞세워 상쾌환을 숙취해소 제품에 그치지 않고 상대방을 챙기는 마음을 보여주는 매개체로 배치했다.
15초짜리 에피소드 4편과 이를 연결한 풀 버전까지 모두 5편이 제작됐다. 에피소드 영상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비롯해 버스·지하철·극장 등에서 공개된다. 풀 버전은 오는 11일 상쾌환 유튜브 채널에 올라간다.
광고를 극장으로도 끌고 간다. 삼양사는 오는 4일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에서 ‘우리들의 상쾌환 더 무비 Talk’를 열고 20~30대 참가자 200명과 영상을 관람한다. 방송인 김원훈과 엄지윤이 진행을 맡아 연애 고민을 주제로 참가자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숙취해소 브랜드가 연애를 마케팅 전면에 내세운 것은 상쾌환만이 아니다.
시장 1위 브랜드인 HK이노엔의 ‘컨디션’은 올해 3월 아예 인기 연애 예능 출연자들을 광고에 등장시켰다.
넷플릭스 ‘솔로지옥’ 출연자 김민지·최혜선·윤하정과 티빙 ‘환승연애’ 출연자 곽민경·이유정 등 5명이 참여한 ‘제로 슈거 캠페인’이다.
콘셉트 역시 ‘봄날 데이트 필수템’이었다. 브랜드 필름과 화보, 토크형 웹예능을 제작하고 출연자들이 데이트를 앞두고 설레는 순간에 컨디션 제품을 이용하는 모습을 담았다. HK이노엔은 당시 컨디션이 “설레는 만남 속 사랑의 매개체로 자연스럽게 다가가길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불과 두 달 뒤인 5월에는 방향을 ‘연애’에서 ‘친구들과 노는 밤’으로 넓혔다.
컨디션은 에스파 카리나와 장기하, 카더가든, 설운도, 유병재 등을 내세워 ‘챙기자 같이 놀 컨디션’ 캠페인을 선보였다. 온라인에서 유행한 ‘장카설유’를 ‘장난도 치고, 까불기도 하고, 썰도 푸는, 유의미한 오늘 밤’으로 재해석했다.
숙취가 심한 다음 날 제품을 찾도록 하는 기존 접근 대신, 술자리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컨디션을 떠올리게 만드는 전략이다. 회사는 숙취해소 제품이 과음할 때만 필요한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넘어 즐거운 음주 문화의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 잡도록 하겠다는 의도를 밝혔다.
지난해에는 갓 스무 살이 된 대학 신입생을 정조준했다. 걸그룹 엔믹스 해원을 등장시켜 새내기들의 첫 음주와 숙취를 소재로 광고를 제작하고 대학 OT와 MT 시즌에 맞춰 대학가 옥외광고를 집행했다. ‘인생 첫 숙취해소제’를 선점해 장기 고객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이었다.
주류업계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난다.
롯데칠성음료의 제로슈거 소주 ‘새로’는 올해 2월 공개한 광고에서 브랜드 캐릭터인 남구미와 여구미를 연인으로 설정했다.
질투로 시작된 두 캐릭터의 다툼과 해명에 이어 남구미의 깜짝 프러포즈와 화해까지 이어지는 이야기에 새로의 도수 변화와 쌀 증류주 첨가, 라벨 디자인 변경 같은 제품 정보를 녹였다. 단순히 제품을 들고 마시는 광고가 아니라 연애 이야기를 따라가다 자연스럽게 제품 특징을 접하도록 한 셈이다.
새로는 이미 브랜드 자체를 하나의 콘텐츠로 만드는 전략을 적극 활용해왔다.
연예인 모델 대신 ‘새로구미’를 브랜드 캐릭터로 내세워 애니메이션 형태의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공개했다. 롯데칠성음료에 따르면 지난해 8월까지 유튜브에 공개된 새로의 동영상 콘텐츠는 43편, 누적 조회수는 약 8600만회에 달했다.
광고를 영화처럼 상영하는 방식도 상쾌환보다 앞서 시도했다. 롯데칠성은 2024년 10월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에서 애니메이션 광고 ‘새로구미뎐: 산 257’ 시사회를 열고 소비자 약 150명을 초청했다. 광고 내레이션에 참여한 배우들이 무대 인사까지 진행했다.
업체들이 젊은 소비자의 술자리와 연애, 데이트 같은 상황을 파고드는 배경에는 숙취해소 시장의 경쟁 심화도 자리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컨디션 매출은 2023년 620억원에서 2024년 593억원, 지난해 521억원으로 3년 연속 감소했다. 동아제약 모닝케어 매출도 2024년 101억원에서 지난해 100억원으로 소폭 줄었다.
반면 상쾌환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보다 6% 증가했다. 특히 젤리형 스틱 제품 매출이 24% 늘었다. 환과 젤리 등 비음료 숙취해소 제품 시장에서 상쾌환이 절반에 가까운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장 환경도 달라졌다.
지난해 1월부터 일반식품에 ‘숙취해소’ 표시·광고를 하려면 인체적용시험이나 관련 시험에 대한 체계적 문헌고찰 등 과학적 실증자료를 갖춰야 한다. 광고 역시 자율심의를 거쳐야 한다. 효능을 자극적인 문구로 경쟁하기 어려워진 만큼 브랜드 이미지와 소비 상황을 선점하려는 마케팅 경쟁이 더 중요해진 셈이다.
여명808은 다른 길을 택하고 있다. 그래미는 대학 신입생 OT 등에서 대규모 시음 행사를 진행하고 대학생 광고 공모전을 여는 등 제품을 직접 경험하게 하는 체험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다. 올해도 전국 대학 행사 등을 통해 젊은 소비자와의 접점을 확대하고 있다.
결국 숙취해소 브랜드의 경쟁 무대가 ‘술 마신 다음 날’에서 ‘술을 마시는 순간’으로 앞당겨지는 모습이다. 상쾌환은 썸 타는 남녀가 서로를 챙기는 순간을, 컨디션은 데이트와 친구들의 술자리를, 여명808은 대학가 체험을 공략한다.
비슷한 숙취해소 기능을 갖춘 제품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2030세대에게 어떤 ‘상황’과 함께 기억되느냐가 새로운 브랜드 경쟁력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