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역사상 최장수 대통령인 프랑수아 미테랑(1996년 별세) 정부의 마지막 총리를 지낸 에두아르 발라뒤르가 9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좌파 미테랑과 우파 발라뒤르의 ‘동거(同居)정부’는 프랑스 안팎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나름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는다.
31일(현지시간) AFP 통신에 따르면 발라뒤르는 이날 파리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유족은 정확한 사인은 공개하지 않은 채 “고인을 위한 추모 행사가 비공개로 열릴 것”이라고만 밝혔다.
발라뒤르는 1929년 튀르키예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조상은 아르메니아계 이민자로 알려져 있다. 1930년대 중반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이주해 마르세유에 정착했다. 귀화를 통해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 그는 최고의 명문 학교로 꼽히는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하고 경제 관료로서 경력을 쌓아 나갔다. 프랑스 구국의 영웅인 샤를 드골 대통령을 존경했던 그는 자연스럽게 ‘드골주의자’로 성장했다.
정계에 입문한 것은 35세이던 1964년의 일이다. 드골 밑에서 ‘2인자’로 국정을 총괄하던 조르주 퐁피두 총리의 보좌관으로 발탁된 것이다. 5년 뒤인 1969년 퐁피두가 드골의 뒤를 이어 프랑스 제5공화국 2대 대통령에 오르며 발라뒤르는 ‘실세’로 부상했다. 대통령실 부실장을 거쳐 실장에 임명돼 국정 전반에 걸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퐁피두가 임기 도중인 1974년 암으로 별세하자 발라뒤르는 권력 심장부에서 멀어졌다.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1974∼1981년 재임) 시절 그는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
프랑스 최초의 좌파 대통령인 미테랑의 사회당은 1986년 총선거에서 자크 시라크(2019년 별세)가 이끄는 우파에 패했다. 원내 과반 의원의 지지를 받는 시라크가 총리로 취임하며 좌파 대통령과 우파 총리가 공존하는 ‘코아비타시옹’(cohabitation·동거정부)이 처음 탄생했다. 이때 시라크는 경제에 밝은 드골주의자인 발라뒤르를 재무부 장관으로 발탁했다. 10년 넘는 야인 생활 끝에 정권의 중심에 우뚝 선 것이다.
미테랑이 1988년 대선에서 시라크를 누르고 연임에 성공하며 프랑스는 다시 좌파 정권으로 회귀했다. 그러나 10년 이상 장기 집권한 미테랑에 대한 국민의 피로감 때문인지 1993년 총선은 다시 우파의 승리로 끝났다. 이번에는 대권 주자인 시라크를 대신해 발라뒤르가 총리를 맡아 두 번째 좌우 동거정부를 이끌게 되었다.
총리 시절 발라뒤르는 대통령으로서 미테랑의 권위를 존중했다. 대통령과 총리의 임무를 적절히 나눠 처리함으로싸 미테랑과의 소모적 대립을 피했다. 대신 국영기업 민영화 등 우파 내각이 반드시 추진해야 할 과제는 모두 실행에 옮겼다.
원래 대권욕이 없었던 발라뒤르는 총리로 재직하며 국민적 인기가 오르자 생각이 바뀌었다. 그 때문에 1995년 대선을 앞두고 우파는 시라크를 지지하는 진영과 발라뒤르를 지지하는 진영으로 분열했다. 좌파는 리오넬 조스팽(2026년 별세)을 중심으로 뭉쳤다. 대선 1차 투표 결과 발라뒤르는 시라크, 조스팽에 이어 3위로 뒤처지며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결국 시라크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우파 분열의 주범’으로 몰려 비판을 받은 발라뒤르는 총리 퇴임 후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다가 2002년 정계를 떠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