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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신라 성인 줄 알았는데…”1600년 충주 장미산성의 정체는?

5세기 백제 첫 축성과 최대 규모 목조 집수지 발견
삼국의 요충지 충주, 백제 중원 경영의 실체 확인

오랫동안 고구려나 신라의 유적으로 알려졌던 충북 충주시 중앙탑면 하구암리에 있는 사적 ‘장미산성’이 실제로는 1600년 전 백제가 처음으로 쌓고 운영한 산성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충북 충주시 중앙탑면 장미산성. 충주시 제공
충북 충주시 중앙탑면 장미산성. 충주시 제공

충주시와 국립중원문화유산연구소는 1일 2022년부터 진행해 온 장미산성 발굴조사 성과를 공개했다. 이번 조사를 통해 장미산성은 기존의 통념을 깨고 5세기 백제 토성임이 확인되었으며 백제 한성기 최대 규모의 지하식 목조 집수시설까지 확인되면서 백제가 중원지역을 전략적으로 경영했던 실체가 윤곽을 드러냈다.

 

장미산성은 그동안 한강을 따라 충주 분지로 진입하는 길목에 위치해 삼국이 첨예하게 대립했던 중원 역사문화권의 대표적 고구려·신라 산성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정밀 조사 결과 기존 석축 성벽보다 선행하여 조성된 5세기 백제 토성이 확인되면서 산성을 최초로 축성한 주역이 백제였음이 역사적 사실로 바로 잡혔다.

충북 충주 장미산성 발굴 유물. 충주시 제공
충북 충주 장미산성 발굴 유물. 충주시 제공

특히 북성벽 계곡부에서 발견된 대규모 목조 집수시설이 눈길을 끌었다. 이 시설은 약 7m 길이의 통나무를 정교하게 다듬어 정방형으로 9단까지 쌓아 올린 지하식 구조로 현재까지 확인된 한성백제기 목조 집수시설 가운데 최대 규모 중 하나로 꼽힌다. 바닥에는 우물 정(井)자 형태의 지지목을 설치해 목재의 뒤틀림을 방지했고 상단에는 돌을 둘러 구조물을 한층 견고하게 보강했다. 연구소 측은 이 집수지가 계곡 물을 모아 성 내부의 생활용수로 공급하고 수량을 조절해 성벽에 가해지는 수압을 분산시키는 다목적 방재·저수 시설이었다고 분석했다.

 

집수시설 내부 퇴적층에 대한 정밀 조사에서는 삼국시대 유적 최초로 자루가 온전한 형태의 철제 도끼가 출토되어 학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외에도 백제 토기뿐만 아니라 고구려와 신라 토기가 함께 출토돼 장미산성이 백제에 의해 처음 축조된 이후 고구려와 신라 등 여러 세력이 차례로 점유·활용하며 삼국 각축의 중심지로 기능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산성 일대에서는 목책성 인근의 3~4세기형 떡시루, 토기, 방추차를 비롯해 철 생산에 필수적인 송풍관과 쇳조각 등이 다수 발견됐다. 이는 당시 이 일대에서 활발한 자급 자족적 기반이 갖춰져 있었음을 보여줬다.

충북 충주 장미산성 목조 집수지 바닥면 유물 출토 모습. 충주시 제공
충북 충주 장미산성 목조 집수지 바닥면 유물 출토 모습. 충주시 제공

연구소는 올해 말까지 연구소 전시실에서 ‘장미산성 출토유물 특별공개전’을 연다. 또 다음 달 1일에는 이번 발굴조사 결과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학술대회도 열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이번 조사의 가장 큰 성과는 장미산성의 첫 얼굴이 1600년 전 백제의 것이었음을 명백히 밝혀낸 쾌거”라며 “유적과 유물을 통해 삼국이 각축을 벌였던 고대 충주의 역사적 실체를 한층 선명하게 되살릴 수 있게 됐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