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4차례나 가정폭력을 신고하고 다른 가족의 집으로 피신해 있던 30대 아내를 찾아가 살해한 현직 공무원 남편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 남성은 이혼 소송 서류를 통해 아내의 새 거처를 파악한 것으로 추정돼 개인정보 보호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소송 절차가 보복 범죄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빈번한 만큼, 법원이 소송 당사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나이 어린 딸 앞에서 범행…극단선택 시도 중 검거돼
경기 광주경찰서는 살인 혐의로 A씨를 긴급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1일 밝혔다.
A씨는 이날 오전 7시 17분께 경기 광주시의 한 다세대주택 외부 계단에서 이혼 소송 중이던 아내 B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B씨는 경찰에서 지급받은 스마트워치로 신고한 뒤 출동한 구급대에 의해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A씨는 모자를 눌러쓴 채 오토바이를 타고 현장으로 와 범행한 뒤 곧바로 도주했다.
사건 당시 현장에 B씨와 함께 있던 나이 어린 자녀는 손가락에 찰과상을 입고 응급처치를 받았다. 다만, 딸이 범행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상처를 입게 됐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피해자가 이혼 소송 중이었던 점 등에 미뤄 현직 공무원인 남편 A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했다.
경찰은 CCTV 및 통신 수사를 통해 신고 접수 4시간 20여분 만인 오전 11시 40분께 A씨의 주거지 인근인 수원시 장안구 소재 모텔에서 그를 붙잡았다.
검거 당시 A씨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던 중이었다. 생명에는 큰 이상이 없는 상태이다.
경찰은 A씨를 경기 광주서로 압송해 범행 동기와 이날의 행적, 구체적인 범행 수법 등을 조사하고 있으나, A씨는 수사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정확한 사건의 전말을 확인하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 4차례 폭행·협박 피해 신고…"이혼 과정서 주소 노출" 상담도
B씨는 지난해 3월부터 최근까지 총 4차례에 걸쳐 폭행과 협박 등의 가정폭력을 당했다며 경찰에 신고 및 상담 요청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B씨는 매번 A씨에 대한 처벌은 원치 않는다는 뜻을 밝혔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그러나 경찰은 3차 신고가 있었던 지난 4월 22일 A씨가 B씨를 흉기로 협박한 사건의 경우 반의사불벌죄인 특수협박에 해당해 처벌 불원 의사에도 정식으로 수사를 진행했다.
이어 4차 신고일인 5월 28일에는 A씨가 출동 경찰관에게 물리력을 행사하자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현행범 체포하고 구속영장까지 신청했으나 영장은 기각됐다.
결국 경찰은 3차·4차 신고 사건을 병합해 특수협박과 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으로 A씨를 불구속 입건, 지난 6월 검찰에 송치했다.
아울러 B씨에게는 스마트워치를 지급하고, 재범 우려 피해자 등급을 'A등급'으로 지정해 월 1회 이상 전화 연락 등 모니터링을 지속했다.
B씨는 이후 A씨와 별거를 시작해 경기 광주 소재 다른 가족의 다세대주택에 거주해 왔으며, 지난달부터는 이혼 소송에 들어갔다.
B씨는 이혼 소송을 하면서 법원으로부터 임시보호명령 결정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임시보호명령은 가해자의 피해자에 대한 주거지 격리, 100m 이내 접근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 등이다.
경찰은 지난달 11일 B씨에게 전화해 안전을 확인하던 중 "이혼 소송의 서류 송달 과정에서 주거지 비공개 요청을 하지 않아 남편에게 주소가 노출된 것 같다"는 내용의 상담을 접수했다.
경찰은 임시 숙소에 들어가 있을 것을 권유했지만, B씨는 개인 사정을 이유로 거절했다.
이에 경찰은 기간 종료로 회수했던 스마트워치를 다시 지급하고, 주거지에 대한 맞춤형 순찰(오후 8~10시), 112 피해자 번호 등록 등 안전조치를 했으나, 끔찍한 사건은 막지 못했다.
◇ "소송 절차 통해 상대 주소 파악하는 사례 빈번"…대책 마련 시급
아직 수사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현재로선 A씨가 이혼 소송 과정에서 B씨의 주소를 알게 돼 범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소송 절차를 통해 상대방의 개인정보를 파악해 범죄에 악용한 사례는 계속되고 있다.
앞서 2023년 6월 김포에서 옛 연인을 스토킹한 혐의로 복역한 40대 남성이 출소 후 허위 민사 소송으로 피해자의 주소를 찾아내 보복 협박을 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남성은 피고의 주소가 특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민사소송을 제기하면 법원이 소장 송달을 위해 주소 보정 명령을 내린다는 점을 악용해, 주민센터에서 피해자의 주민등록초본을 발급받아 주소를 확인했다.
지난해 8월 용인에서는 30대 남성이 허위 보험금 청구 소송을 통해 피해자의 집을 알아낸 뒤 직접 찾아가 흉기로 살해한 사건도 발생했다.
피해자가 일하던 가게의 손님이었던 이 남성은 피해자가 자신을 성범죄 혐의로 신고하자 보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유사 사건을 막기 위해서는 법원이 소송 당사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소송 과정에서 주소 공개를 원하는 경우에 한해 소장에 기입하거나, 주소 공개 동의 여부를 사전에 적극적으로 확인하는 등의 절차가 마련돼야 한다"며 "특히 이혼 소송 당사자는 관계성 범죄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법원이 주소와 같은 개인정보의 노출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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