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홍철의 딸’로 불리며 체조계에 이름을 알렸던 한국 여자 기계체조 국가대표 여서정(24·제천시청)이 이제는 대표팀 주장으로 아시안게임 무대에 선다.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서 대표팀 막내로 도마 금메달을 따냈던 그는 8년 사이 한국 여자체조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로 성장했다. 2020 도쿄 올림픽 동메달과 세계선수권 메달을 거쳤고, 2024 파리 올림픽에서는 도마 7위를 기록했다. 올해 아시아선수권에서는 도마 금메달을 따내며 다시 경쟁력을 입증했다. 그 여세를 몰아 다가올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도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여서정은 1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이번 아시안게임과 자카르타 대회의 가장 큰 차이로 책임감을 꼽았다. 당시에는 자신의 경기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후배들과 함께 태극마크를 달고 대표팀을 이끌어야 하는 만큼 주장으로서 짊어져야 할 역할의 무게도 달라졌다. 그는 “2018년에는 막내로 아시안게임에 출전했기 때문에 설렘이 컸고 부담감은 지금보다 적었다”며 “이번에는 주장으로 출전하게 됐고 많은 경험과 성과를 쌓으면서 책임감도 더욱 커졌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같은 도마를 택한 여서정에게 ‘여홍철의 딸’이라는 수식어는 여전히 특별하다. 함께 이름이 불리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면서도 “이제는 제 땀과 노력으로 기억되는 선수이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말했다. 여홍철은 지금도 가장 가까운 조언자다. 기술부터 몸 관리까지 궁금한 것이 있으면 그에게 묻는다. 대회를 앞두고 돌아오는 말은 길지 않다. 여서정은 “아빠가 항상 ‘자신감 있게 잘하고 오라’고 해주신다. 기술적인 부분이나 몸 관리 같은 것도 많이 물어보는 편”이라고 했다.
부녀를 이어준 도마는 높은 난도의 기술과 정확한 실행을 동시에 요구한다.
선수는 길이 95~105㎝, 너비 95㎝, 높이 125㎝의 도마를 향해 달려가 손으로 기구를 밀어낸 뒤 공중에서 회전과 비틀기를 수행한다. 난도가 높을수록 난도점수가 올라가지만 작은 흔들림 하나에도 실행점수를 잃을 수 있다. 착지 때 라인을 벗어나면 0.1~0.3점이 감점된다. 결승에서는 서로 다른 기술군과 비행 동작으로 두 차례 연기를 펼쳐야 한다. 오랜 시간 쌓은 훈련이 몇 초의 움직임으로 압축되는 종목이다.
여서정이 최근 가장 집중하는 부분은 연기의 마지막을 완성하는 착지다. 그는 “최근 훈련에서는 착지 부분을 가장 집중적으로 다듬고 있다”며 “도마는 마지막 순간까지 집중력이 필요한 종목인 만큼 안정적으로 마무리하는 부분에 가장 신경 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2024 파리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겪은 부상은 여서정에게 선수 생활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충분한 훈련을 하지 못한 채 대회를 치르면서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흔들렸고, 도마 7위라는 결과도 받아들여야 했다. 그는 “파리 올림픽을 준비할 때 부상으로 훈련을 충분히 못 하면서 기술에 대한 자신감도 많이 떨어졌다”며 “그때 경험을 통해 경기 당일까지 몸을 잘 만들어가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고 전했다.
8년 전에는 잘 뛰는 것이 먼저였다면, 이제는 잘 뛰기 위해 몸을 지키는 것까지 경기의 일부가 됐다. 선수 생활이 길어지면서 회복 속도에도 변화를 체감한다. 예전에는 자고 일어나면 몸이 자연스럽게 돌아왔지만 이제는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 여서정은 “지금은 확실히 회복하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며 “충분히 쉬어주고 관리에도 더 신경 쓰고 있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올해 아시아선수권 도마 금메달은 파리 올림픽 이후 흔들렸던 자신감을 되찾는 계기가 됐다.
가장 경계하는 선수는 북한의 안창옥이다. 하지만 여서정이 바라보는 승부의 기준은 상대가 아니라 자신에게 있다. “안창옥 선수가 잘하는 선수인 만큼 의식하고 있지만, 결국 내가 준비한 걸 얼마나 정확하게 보여주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자신의 강점으로는 깨끗한 연기를 꼽았다. 여서정에게는 새로운 기록을 향한 욕심보다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연기를 온전히 완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도마 앞에 서는 순간에는 누구도 대신 뛰어줄 수 없다. 도움닫기를 시작해 도마를 힘껏 밀어내고 공중에서 회전과 비틀기를 거쳐 착지하기까지 모든 움직임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단 한 번의 착지에 지나온 모든 시간이 담긴다. “그동안 준비한 만큼 경기에서 후회 없이 보여주고, 안정적인 착지까지 해낸다면 스스로에게 잘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