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이재명정부 1기 경제정책을 이끈 지 15개월 만에 물러난 데는 악화한 부동산·증시 민심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와 부동산 세제 개편 등을 둘러싼 비판이 국정 지지율 하락의 한 요인으로 지목된 가운데, 지난달 30일 개각에서도 경제정책 컨트롤타워인 김 실장이 유임되자 쇄신 의지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결국 개각 하루 뒤 김 실장이 스스로 물러나면서 이재명정부 1기 경제정책에 대한 책임을 지는 모양새가 됐다.
김 실장은 정부 출범과 함께 대미 통상협상과 반도체·인공지능(AI) 산업 육성, 자본시장 활성화와 부동산 정책을 두루 조율했다. 정통 경제관료 출신인 그는 한·미 관세협상에서 미국 측 핵심 당국자들과 직접 접촉하고 삼성전자·SK하이닉스·현대자동차 등 주요 기업과 소통하며 대미투자 협상을 이끌었다. 반도체와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를 축으로 한 ‘3대 메가프로젝트’의 밑그림을 만드는 데도 관여했다. 통상과 첨단산업 분야에서는 이 대통령의 신임 속에 정책 추진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자본시장과 부동산 정책에서는 거센 역풍을 맞았다. 김 실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내걸고 금융규제 혁신을 추진했지만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도입 이후 증시 변동성이 커지자 책임론에 휩싸였다. 그는 앞서 국내에서도 미국처럼 다양한 레버리지 상품과 개별주식 ETF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금융당국에 검토를 주문한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후 개인투자자 손실이 커지면서 야권은 물론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비판이 확산됐다.
부동산에서도 김 실장은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한도 제한과 공급대책, 규제지역 확대 등 주요 정책을 물밑에서 조율해 왔다. 지난 6월에는 “닥치고 지어야 한다”며 공급 확대 기조를 강조했지만 초고가·비거주 주택의 종합부동산세 강화 등 세제개편안이 반발을 부르면서 당정이 일부 수정에 나서야 했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개편과 이른바 ‘주가 누르기 방지법안’도 투자자 반발을 샀고 이 대통령이 재검토를 지시했다. 조국혁신당은 김 실장 사퇴만으로 끝낼 일이 아니라며 이억원 금융위원장의 동반 퇴진까지 요구했다.
사퇴 형식과 시점도 눈에 띈다. 김 실장은 지난달 29일까지만 해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향후 경제정책 구상을 밝히며 업무 의지를 드러냈다. 하루 뒤 발표된 개각 인사에서도 교체 대상에서 빠졌다. 하지만 재경부와 국토부 장관을 바꾸고도 김 실장을 남겨둔 데 대한 비판이 이어진 뒤 31일 먼저 사의를 표명했고 이 대통령은 하루 만에 이를 수리했다. 전격 경질보다는 스스로 물러나는 모양새를 취한 셈이다. 김 실장이 세제개편안과 내년도 예산안 작업을 일단락한 시점이라는 점도 사퇴 결단에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이 나온다.
청와대는 문책성 인사라는 해석에는 선을 그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 참모의 평균 재임 기간이 1년2개월에서 1년6개월 정도”라며 “정책 집행에 원활한 동력을 제공하기 위한 일종의 참모진 교체”라고 설명했다. 이번 인적 개편 역시 “2기 경제정책라인 활성화 및 가속화를 위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정책 기조가 대대적으로 바뀔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새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모두 기존 정책을 함께 추진해 온 현직 차관 출신이기 때문이다. 부동산 공급과 세제, 자본시장 정책의 큰 틀은 유지하되 민심에 대한 반응 속도와 정책 집행력을 높이는 쪽에 무게가 실릴 가능성이 있다.
향후 변화의 폭은 후임 정책실장 인선에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과 관가에서는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 이억원 금융위원장과 이호승 전 청와대 정책실장, 윤창렬 전 국무조정실장 등의 이름이 거론된다. 청와대가 관료 출신을 다시 기용할지, 학계·민간 인사를 발탁해 쇄신 메시지를 강화할지도 변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