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dak 필름 한 롤 서른여섯 번의 셔터를 누르며 사진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카메라에 표시된 필름 카운터가 25 정도가 되면 고민이 시작됐다. 필름을 새걸로 갈아야 하나 남은 거로 찍어도 될까? 제한된 서른여섯 번의 셔터를 누르는 순간의 신중함과 긴장감, 설렘은 지금의 디지털카메라 시대에는 느낄 수가 없는 감정이다.
사진기자는 본인이 취재했던 사진을 나름의 방식으로 보관한다. 개인의 차이는 있지만 나는 사진의 중요도를 떠나 보관을 많이 하는 사진기자이다. 역사의 중요했던 순간도 있었고, 상황이 기억도 없는 시답지 않은 사진도 있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담은 기념사진도 있고 취재와 출장 중에 보이는 나의 모습도 있다.
아주 먼 옛날의 모습은 아니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열어본 나의 외장하드를 독자들과 같이 꺼내보고 추억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남과 북의 대치가 극한으로 이어지던 1999년 8월 25일 판문점에 침묵의 긴장감이 흐른다. 무표정의 북한군 장병들이 검은 관을 둘러쌌다. 한 북한군 장교가 붉은 천을 펼치고, 흰 가운을 입은 관계자가 맞은편에서 천을 잡았다. 주변의 병사들은 흐트러짐 없이 서 있었다. 화면 한쪽에는 유엔군이 이 모습을 역시 긴장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판문점에 처음 가본 필자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TV에서만 보던 북한군을 평생 처음 눈으로 보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수해에 떠 내려온 북한군 시체 판문점 송환 풀 취재인데 혹시 실수나 하지 않을까 하는 3년 차 신입기자의 걱정도 긴장감을 더 끌어올렸다.
검은 관에 누워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는 북한군 병사였다. 수해로 불어난 물에 휩쓸려 남측으로 떠내려온 시신 한 구가 이날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송환되고 있었다.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이 팽팽하게 맞서던 분단의 상징 판문점에서 시신 인도는 특별한 풍경을 만들었다. 북한군은 인계받은 관을 붉은 천으로 감쌌고, 한 병사는 카메라를 들고 전체 과정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사진 속 군인들의 시선은 모두 관을 향한다. 무표정으로 말없이 진행되는 짧은 절차에는 남북 군사적 긴장과 병사의 죽음에 대한 예우가 함께 묻어난다.
그해 여름 한반도에는 많은 비가 내렸다. 임진강을 비롯한 접경 지역의 강과 하천은 남과 북을 가르며 흐르지만, 불어난 물길에 군사분계선은 아무런 경계가 되지 못했다. 이름 모를 이 병사의 시신 역시 그렇게 남측에 닿았다.
사진이 촬영되기 불과 두 달 전인 1999년 6월 15일에는 서해에서 남북 함정이 충돌한 제1연평해전이 벌어졌다.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높았던 시기였다. 제1연평해전은 우리 해군이 서해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의 기습공격에 맞서 교전 14분 만에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해전이다. 그런 때 판문점에서 남과 북을 이어준 것은 역설적으로 한 병사의 죽음이었다. 살아서는 쉽게 넘을 수 없었던 긴장의 휴전선을 병사는 물길에 떠밀려 안타깝게 넘어왔다. 그리고 주검이 되어 판문점을 통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다.
27년 전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면 당시 판문점의 긴장감 도는 공기까지 남아 있는 듯하다. 반듯하게 도열한 북한군의 어두운 표정, 붉은 띠가 둘러진 군모와 각 잡힌 군복, 그 사이에 놓인 검은 관. 가까이 있지만 서로 다른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한 공간에서 같은 장면을 보고 있다.

